한국의 나이권력

생각 2017. 4. 8. 07:46

일본에서 좋은나이는 먹을만큼 먹은 나이를 의미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팔청춘을 의미한다. 한국만큼 노인공경이 강조되는 나라도 없다. 경로사상은 조선시대부터 삼강오륜의 훌륭한 덕목으로 그 문화가 이어져 왔지만, 과연 공자시절의 유교가 21세기에도 유효한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는가.

사실 나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위아래가 없고, '반말'을 사용한다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존댓말-반말 체제가 가치있는것일까. 일단 전제부터가 틀렸다. 영어는 반말이 아니라 평어다. you도 한국어로는 '너'로 번역하긴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있던 시절에는 you는 존칭어였다. 2인칭 평어는 thou였고 you가 범람하면서 thou가 잠식당한후 소멸했다. 통신시대 이후 '님'이란 극존칭의 범람은 2인칭 존칭이었던 '씨'를 연상에게 쓰기 건방진 지경까지 밀려난 지금의 한국어와 비슷하다.

평어는 민주사회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언어다. 한국어의 반말은 하대하기 위한 언어이다. 100년전 한국 아니 조선시대만해도 신분제 사회였고 반말의 존재와 발생은 사회적 배경으로써 수긍가능한 부분이다. 같은 신분끼리는 존중했다. 나이차이가 10살까지도 친구를 먹었고, 양반계급은 하인들이나 아랫 신분에게는 반말하지만 부모자식뻘인 20살 넘는 차이가 나도 양반계급끼리는 존댓말을 사용해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상대를 존중했다. 아무리 뛰어나고 잘난 사람이라도 천인이면 양반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존댓말을 해야하고 아무리 보잘것 없는 양반이라도 존대받아야 했다. 조선 후기의 양반계급의 문란은 능력있는 마름과 몰락한 양반이 경제적으로는 지위가 역전했으나 신분제로는 계급이 역전을 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만석꾼은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위해 족보를 사고, 양반은 족보를 팔아 조금이라도 연명했으며 원래 양반은 노동하는 계급이 아닌데도 생계를 위해 일하는 양반은 양인이하의 계급들에게 업신당하면서 살면서 굴욕을 겪었다.

그러다 민주주의를 앞세웠고 계몽주의와 평등사상까지 수입한 개화를 거치면서 계급에서 나이로 하대의 대상이 바뀌었다. 유능한 사람이더라도 처음보는 사람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초면에 대뜸 '반말'을 한다거나, 다짜고짜 욕을하는 노인에게도 젊은이는 욕을 하면 안된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나이 많다는 이유로 연소자는 무조건 존중을 강요받고, 연장자는 존중받지 못하면 굴욕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게 단순히 '반말'이 초래하는 사회적 갈등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뉴스에서는 이런 강요적인 언어관계를 프레임화시켜 확대 재생산에 일조한다. 예를들어 성인 둘의 다툼을 보도한다고 가정해보자. A와 B는 도심 한복판에서 격투전을 벌였고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의 미디어는 20대 남성 A, 아버지뻘 50대와 격투 벌여. 전혀 하등 상관없는 타인에 '아버지뻘'이라는 가족호칭을 끌어들여 감정적 호소 프레임으로 보도한다.

한국에서 나이가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초면에 보자마자 나이를 공개하길 요구하고, 보자마자 서열을 정리하고 단 1살차이도 '형'호칭을 듣기위해 빠른년생 논란은 웹상에서 주기적인 논쟁거리다. 동등하고 싶거나 대우받고 싶다는 욕구, 대우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폭발해 폭행사건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사회적 갈등관계를 촉발시키는데 존댓말/반말의 구분은 사회적 통합의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일례로 나이 어린 사람이 '갑질'하는 대표적인 것이 반말이다. 손님으로 오더라도 나이많은 손님은 반말해도 되지만, 나이적은 손님이 반말하는 것은 공분을 살일이다. 모 기업에서도 대리점을 관리하는 본사직원이 20살 연상쯤되는 대리점주에게 발주강요가 논란이 된데에 사회적 관심이 폭발한것은 반말과 욕설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존의 연장자의 기득권을 무시하게 된다면 좌절감과 굴욕감을 느끼고 특히 공적인 자리에서는 사회적 명예가 훼손됐다고 느낀다. 그래서 일부러 관리직은 노티나게 입는 것도 다 무시 안당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하니 한국의 나이로 인한 위계가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어린 상사에 대해 열패감을 느끼고, 신입사원도 나이가 많으면 입사할 수 없다. 어린 상급자가 부하에게 마음편히 시키지 못하고 불편해하기 때문에.

만약, 우리나라가 오늘부터 존댓말이 없고 반말이 하대의 뉘양스가 아닌 평어의 지위로서 언어생활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프랜차이즈나 편의점 알바에 중장년층 고용률이 상승할 것이다. 지시하기에 존댓말은 상하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에 존대말없다면 자유롭게 지시할 수 있다. 나이의 위계를 직장내 상하관계와 충돌할 경우 고용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신입입사 시기의 마지노선은 서른이고 이후 관리직으로 이직을 할 수 없으면 퇴사한 중년은 할일이 없다. 즉 한국에서는 중장년을 부릴수 있는 피고용인으로 보지 않는다. 또 그나이에 알바한다는 시선도 당사자에겐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치킨집이나 우후죽순 프랜차이즈가 성행하는 이유도 은퇴한 시니어가 경제생활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청소나 막노동을 제외한 마지막 수단이 창업 뿐이기 때문이다.

지역갈등 보다 세대갈등이 더 문제인 것은 지역은 지역이동하여 가정을 꾸리면 출신지는 희석되지만 나이를 기준한 세대는 고정된다. 더욱이 한국은 인구문제와 결부된 세대갈등 요소가 있는데 바로 한국전쟁 직후의 베이비부머세대 이후로는 한국은 인구감소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세대간 인구수가 베이비부머세대가 압도적이고, 이후 X세대 N세대 등은 절대 베이비부머세대 보다 인구에서 밀린다. 소비성과 생산성을 보는 경제적 타겟상에서 베이비부머세대는 이제 유효한 타겟층에서 밀려났지만, 정책이나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는 선거에서는 그들의 의사가 유효하다.
그러니까 실제 사회에서 관계하는 데에서도 일방적인 존중을 받으면서도, 정치적 정책적으로도 장년층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며 개개인의 1표의 가치는 모두 평등하므로. 바꿔말하면 세대갈등적인 의견차가 발생했을 때 지금의 20대30대가 100% 투표한다고 해도 절대 5060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요컨대 선거에서, 매번 청년층은 사표(낙선한 후보자에게 던져진 표) 컴플렉스가 생기는 구조다.

한편 언제나 공경해마지않을 것을 교과서 신문 TV 한국인이 사는 모든것에서 강조하는 경로우대 관념을 뒤집는 단어가 등장했다. 시쳇말로 이른바 '틀딱(틀니 딱딱)'이란 멸칭은 당연히 배격해야할 일이지만, 한국의 불평등하고 일방적인 나이위계로 발생하는 권력관계에 대한 실제적 타파가 불가능한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
미국은 어린이 보호가 한국입장에서 보자면 유난이지만, 한국에서는 어린이 시절부터 중년이전까지 하대로 억압돼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름모르는 아이에게 꼬마라고 부르거나 성인에게 대뜸 중장년층이 반말부터 하는 사람은 존중받지 못한 상황이지만 상대가 단지 나이가 많으니 존중해야 하는 무례한 상황에 지적이 봉쇄된 불평등한 예의가 굳어져있다. 그런 사회에서는 당연하게도 건설적인 의견조차  묵살당한다. 반론을 제기하는 순간 당돌하고, 건방진 '나이어린 것들'로 나이로 짓누른다. 상당히 일방적이고 강요적이며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당연히 해야할 '상호존중'은 아무데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임에도 개인존중과 인격권이 연장자로부터 침해되어왔다. 그럼에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나이가 변하고 강요당했던 체제는 강요하는 세대로 기득권을 취하도록 바뀌어 오기 때문에 순응이 쉬운 함정이 내재돼있다.

상기 언급했듯 조선시대만해도 같은 계급내에서는 같은 언어를 썼다. 양반끼리는 존댓말을 썼고 평민들은 하오체를 썼다. 얼핏보기에도 나이차가 나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다. 서울말에서 해요체가 득세한 이후 하오체는 거의 고어화 돼버렸다. 심지어 해요체는 비격식체고 하오체는 격식체에 예사높임이지만 기세는 이미 해요체에 잠식당했다. 표준어 구사자가 지방에 갔을 때 반말처럼 오해하는 ~우 ~노 ~제 ~여 ~나 등은 하오체가 남아있는 것이었는데 표준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지방에서도 해요체가 부상했다. 한국의 언어체계가 더욱 복잡해졌고 한국인은 높임말에 대한 집착이 더욱 더 강해졌다.

사실 한국이 오늘날같이 나이 서열에 집착한건 불과 5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일례로 베이비부머세대에서도 예닐곱살은 친구를 먹었지만, 지금은 1살차이어도 친구가 될 수 없다. 한국사회는 사적관계문화가 얼마나 경직되고 폐쇄적으로 변화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같은 나이가 아니면 체면 유지를 위해 한두살 위 선배가 금전부담을 한다든가, 편하게 터놓을 수 있는 친구의 범위는 동갑뿐이므로 새로운 집단에서 또래가 아니면 맏이노릇도 부담스럽고 막내노릇은 피곤하다. 연장자가 경제력이나 능력이 있지 못하고 연소자와  어울리게되면 나이와 권위가 일치하지 않은 관계로 연장자 대우는 못받는다. 양반이 평민들에 섞여 일할때 동등한게 아니라 업신당했다고 여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존대를 못받았다는 데에서 당사자는 좌절감을 느낀다.

한국인은 소위 '나이값'으로 얽매여 있다. 경로우대사상이 사회전반의 미덕인 나라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양로원 지원도 포함해 부모부양은 커녕 절연으로 자식이 있으면서 독거노인이 된 비율이 OECD 가입국중에 하위권인 점은 연장자로서의 권위로 억압과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관계의 장벽이라는 한국에서의 나이체제의 모순에 대해 제고해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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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blink 

생각 2017. 4. 6. 07:34
아이폰7 광고 한국인이 번역한걸 애플코리아 공식채널에 올라옴. 광고비 지급했겠지?

근데 보니까 옛날에 제일기획 수상작이 떠올랐다. 그때가 벌써 몇년전이야... 생각해보면 그당시에도 획기적이었으니 대상도 받고 텍스트를 보여주는 방식이 세련됨. 솔까 나온지 백만년된 LG 옵티머스 2x와 흡사했다. 최대 빠른 비트에 쉴새없는 영상공격. 만약 아이폰 광고후 엘지가 했다면 따라쟁이 카피캣소리 듣기 십상이었을듯. 아이패드 이전에 엘지가 패드를 내놨으나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아이패드 이후 출시하기도 했는데 유명세와 그 파급력이란 격차에서 오는 씁쓸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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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에 맞춰가는 성격, 타인의 얘기에 공감하기 좋아한다
-내 주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적없다
-팔랑귀다 곧잘 충동구매를 한다
-TV 홈쇼핑에서 구매경험이 많다
-나만의 징크스가 5개 이상이다
-쉽게 상처받고 소심하다
-내 주장을 타인에 설득시키기 보다 타인의 주장을 받아 들이는게 편하다
-세세하게 기억력이 좋다
-거절을 하기 어렵다
-친하면 돈을 빌려줄 수 있다
-대화를 리드하는데 부담을 느낀다
-우유부단하다
-잘아는건 잘알지만 솔직히 세상물정 모른다
-이야기 중에 자주 멍때린다

여기에 해당하는게 5개 이상이면 심심풀이 인터넷 점만 보고 절대 점집은 전화통화는 물론 발길도 들이지 말것.

일단 무속인/철학관은 어떤 자격증으로 검증해서 가게를 내는게 아니라 그 능력은 철저히 개인의 주관(감성의 영역)이 가장 큰 함정임.
그러니까 얼마나 사주 공부를 했는지 용한신이 내렸는지 알게 뭐야.
무속인이 아니더라도 콜드리딩과 핫리딩을 통해 넘겨짚기를 할 수 있고, 인간은 기본적으로 어떤 명제에 동조하려는 바넘효과 다시말해 공감능력이 있기 때문에 예를들어 '나는 알고보면 여리다'라는 아주 보편적인 감성 명제에 98%는 동의하게 되어있는 동물임.

그런데 주관도 없고 팔랑귀가 제발로 상담하러왔다? 일부 정상적인 점집이라면 과거맞히기에서 능력을 과시한후 비전제시를 한후 끝나겠지만, 일부 비정상적인 무속인에겐 좋은 타겟감이됨. 이미 신상명세를 일방적으로 까발려진 상태에서 헬조선의 고민거리는 뻔함. 취업 결혼 자식임. 삼재라는 불운으로 공포심을 줘서 액운을 막는 부적이나 굿을하라고 권함. 강한 카리스마와 얼렁뚱땅 진행하는 분위기에 휘둘리기 십상임. 사주만보는 철학관이라해도 패가망신수니 살수가 꼈느니 내인생에 악재가 꼈다고 하면 상담받고 나오는 뒤부터 신경 쓰이고 뭘 해도 그 때 그 사주가 찝찝해서 마음에 걸림.

따라서 용하다고, 일이 안풀리다고 점으로 인생비전을 알아보러갔다가 되려 호구잡히거나 평생의 찜찜한 혹을 달 수 있으니 마음약한 사람은 가볍게 드나들 곳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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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끄러운 보육원 피자헛글을 짤로 접했다. 그들도 인간인데 단순히 허기채움이 아닌 동경하는 사치재의 갈망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보육원 나이키나 패딩글도 보면서 사회취약계층의 빈자로서의 프레임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단순하게 옳고 그름으로 나누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는게 단순히 자기만족인 일부도  있겠지만 작은 도움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되도록하는 사회통념적인 기부적 성향을 띈다.
미디어에서는 기본적인 의식주의 결핍과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조차 제한당하는 극빈층을 조명하므로 금전적 지원으로나마 결핍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원하는 차원이 대다수. 미디어는 한푼이라도 더 모금하기위해 대상자의 가난과 고난을 과장해서 쥐어짜서라도 팔아댔다. 보는 이로 하여금 측은지심이 들지 않으면 지갑은 열리지 않았고 그렇게 대중적인  소구점은 극빈자의 빈곤탈출에 대한 지원이었다. 자연스레 의식주라는 기본욕구충족이 된다면 피복비는 그 다음이고 물품의 브랜드 가치는 더더욱 차순위에 해당한다.

여기서 상기해볼 점은 기부자도 과연 풍족해서 기부하는 것인가에 대한 전제이다. 기부자의 연수익이 5천이상이라서, 가구 소득이 1억이 넘어서 기부하는 계층은 오히려 많지 않다. 한국은 일단 재벌을 비롯해 부유층이 각종 독과점과 투기등을 독식하여 부정축재로 재산증식을 해왔고 재벌들이 자산보유고를 늘릴동안 일반서민의 실질가처분소득은 줄었으며 계약직 비중도 해가갈수록 늘고 있다. 다시말하면 위로는 부정한 재산축재한 재벌들에 대한 억울함과 동시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커녕 기부도 소극적이고 기부재단 설립도 상속수단으로 써먹는 실정에서 다수의 서민이 주머니에서 극빈자를 위한 감정이 동해 기부하는 형국이다.
우선 극빈자의 복지는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책임져야하지만 복지국가는 못되고 개인에 호소한다. 물가상승률을 못 쫓아가는 임금상승률 속에서 십시일반 모금해 돕는다. 개인부채비율이나 평균부채금액 등으로 보면 imf이래 줄곧 불황의 그늘에서 살아왔다. 그런 관계로 지출을 결심하는 것조차 한국은 인색하고 기부금도 녹록치 않다.
아이들이 연말 생일 선물에 손꼽아 나이키 신발을 신는게 뭐가 나쁘냐는 말에 인간의 욕망은 당연한 것이고 도움받는 이의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그러나 연봉 2천에 실수령 170만원의 기부자가 금액때문에 비싸서 못신고 타브랜드를 신어온 사람이라면 도움받는이가 기본적 욕구충족이상으로 초과해 사치재를 소비할 여력이 있는것으로 여길 수 있다. 사치재의 소비는 결핍과 등치되지 않기 때문에, 나이키를 구매할 여유가 부족한 자신의 소비여력과 비교하여 결핍의 부등호를 결론짓는다.

만약 연봉 7천의 소득자였다면 가처분소득이 늘어나 나이키를 선뜻 살 수 있는 확률은 수직 상승할 것이고, 가난 비교에서도 훨씬 여유로울 것이며, 기부받는자의 나이키 구매에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기부는 의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며  사치품 구매에 반대한다든가의 이유든 그냥 싫든 대중적 판단에 기반하지 않으며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 차라리 기부를 안하는 것이 논쟁을 피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기부자'라는 프레이밍도 기부독려와 배치되는 언행이며 설사 해당된다해도 기부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지, 치열하게 가난을 비교하는 판단에 적극적이지 않다. 성급히 결핍자의 불행에 행복을 느끼는 간사함으로 치부하기엔 상당히 이분법적이며,  구두로써 기부자를 비난하며 막상 기부에 소극적인 제3자들로 인해 인식 개선보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던 기부자 감소가 더욱 타격을 입힐 우려가 있다.

화두 자체는 생각해봄직한 토론거리임은 분명하다. 다만 염두해야할 것은 경제행위에는 복합적 이해관계와 의미가 숨겨져있다는 것. 표면적으로 옳고그름이 명확해보이는 사안으로 비춰지지만 흑백논리로 판단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인식개선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비난은 수단이 목적을 그르칠 수 있으니 유의하는 자세를 견지하는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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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생각 2016. 11. 10. 08:44
# 어차피 대통령은 힐러리
트럼프의 지지율이 심상치 않다느니, 힐러리의 건강이상설 등이 터져나오며 지지율 적신호란 요란을 떨 때도 어차피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텐데 기우라고 치부할만큼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트럼프는 정치초짜에 재벌 편의적이고, 백인 우월주의의 누가봐도 오답이었기에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배출한 미국시민에 대한 합리성을 택할거란 믿음이 컸다. CNN 예측발표에서도 91%:9%로 무난히 힐러리였다. 접전이란 호들갑도 보는 재미를 위한 첨가어로 흘려듣고 아주 느긋하게 관망했다. 129석으로 트럼프가 선거인단수를 뒤집은 순간 설마했지만 NYT가 당선확률 80퍼센트를 넘기고 선거인단수가 16*대를 넘기면서 TV를 껐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미국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오하이오 주의 선택이 곧 대통령이란 설은 유효했다. 신기한게 힐러리 우세일 땐 오하이오도 우세이다가 역전한 이후 오하이오 주도 뒤집지 못했다는 거.

#엘 고어
 미국 정치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던 건 조지W부시 VS 앨 고어 때 부터였던 거 같다. 당시 정책비교 같은건 다 휘발되고 하버드 출신 모범생 앨 고어와 세습 입학으로 예일대 나온 장난꾸러기(?) 부시의 비교기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미국 시민권은 없지만 난 앨 고어파였고, 아주 팽팽한 대결 끝에 득표수는 앨 고어가 더 많았는데 승자독식제로  패했다. 그 때 이후로는 오바마 시대였으니 지지의 결과가 반반인셈인데 앨 고어 때 보다 정신적 타격은 훨씬 심하다. 벌써 메인뉴스에 트럼프 당선 관련 4꼭지 정도 다루던데, 뉴스 보기가 싫다.

#브렉시트-트럼프 쇼크
당연히 정의이고 정답이 보였던, 전세계인의 예상과 지지를 철저히 빗나갔다. 출구조사/여론조사가 판이하게 달랐던것은 숨은 목소리가 아니라, 타인에게 투표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선택이란걸 인지해 투표장에서만 은밀하게 의사를 표했기 때문이다. 백인우월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트럼프의  '이민자의 나라'의 금기였다는 걸 누구보다 잘알고 있고 지지자 인터뷰에서도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으로 말머리를 꺼내는 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브리메인-힐러리 였건만 인간의 본의는 이상적인 정의가 아니라 탐욕을 좇았다. 세계정세나 세계경제 개나주고 이민자 쫓고 다시한번 슈퍼그레이트했던 영광으로 부흥하길 원했다. 됐고 경제나 살리자는 마인드의 기시감이. 영국인들 일부는 투표한 스스로에 후회하기도 했는데 미국인은 과연?
당연히 주가며 외화는 요동을 치겠고 당선자가 당장 한국과 일본에서 미군을 철수한다고하고, '부자나라'에서 부담해야 한다는데 어떡하지...

# 특보
미 대선 특보방송은 처음으로 봤다. 그전까지는 학교다 뭐다 어느 선거 때부터 해왔는 지는 알 수 없지만 공중파 방송 삼사가 일제히 특별방송으로 예의주시하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게 역시 신하의 나라 다운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쯤 해서 삼사의 진행능력과 꼭지 등을 비교해가며 볼 수 있었는데 평소 보는 뉴스 보다 읽는 뉴스를 선호하는 게, 앵커들의 장단음 파괴와 인위적이고 제멋대로 끊어읽기가 너무 거슬린다. 특히 SBS 메인뉴스 남자앵커의 경상도 사투리톤이 거북해서 잘 보지 않는데 이번 낮 특보에 SBS는 그분이 나오셨다.
KBS에는 대형 스크린 앞에서 나와서 기본적인 브리핑 조차 버거운 듯 심하게 버벅거리고 학부 조별발표 PT도 저정돈 아니겠다 싶었다. 지가 뭔소리하는줄 자각하고 말하는지 의심스럽게 횡설수설. 그냥 테이블에서 원고보면서하라고 쥐어주고 싶던데 도대체 아나운스 교육을 하는건지 함량미달을 어떻게 생방송 특보 세울 생각했는지 베테랑 아나운서들 다 비번인가.
MBC 앵커가 제일 깔끔하고 막힘없이 듣기 좋았다. 쓸데 없이 전문가랍시고 앉혀놓고 어쭙잖게 씨부리는 거 없어서 더욱 간결했다.

#질투의 정서
플로리다는 많은 선거인단의 걸려있는데다 박빙일 때 500여 표차로 갈린적이 있어서 표심의 향방이 중요한 지역이다. 플로리다 주가 95%개표였고 1%대 차이였고, 트럼프가 선거인단수 약 30여석을 앞지르던 상황, NYT가 5*%에서 당선확률을 더 높이 조정해서 발표하던 때. 윤곽이 차츰 드러나던 차였지만 KBS는 앵커가 반복적으로 '흥미진진'하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이었고, MBC는 접전이라며 확언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는데 SBS는 유독 트럼프의 승리를 일찍 확신했다. 왼쪽 자리의 전문가가 플로리다 주가 2%대 였을 때부터 격차를 뒤집기 힘들다고 할 때부터 심상치 않아 채널을 딴데로 돌린 후 다시 틀었는데  아예 트럼프가 당선 확실시한것 처럼 제쳐두고 힐러리 험담을 하고 있었다.

힐러리는 너무 잘났다
대략 이런내용이었다. 똑똑하고 재력있고 남편은 대통령이고 다 가졌는데 르윈스키 사건이 터졌지 않냐, 그 때 다들 괜찮냐고 할 때 그를 이해한다고 해놓고 나중에 클린턴 코를 뭉갠 일이 있었다. 대중 앞에 완벽한 모습, 인간미가 부족하지 않았나.

순간 내 귀를 의심했는데 옆에 앵커가 그 쇼 자기도 봤다고 거드는데 종편인줄 알았다. 무슨 노가리 타임도 아니고 잘나고 완벽하면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시기와 질투어린 정서. 미국도 질투의 감정은 있지만 튀는건 개성이고 잘난건 인정하고 드센건 멋져하는게 미국이다. 미국인들의 특징할 때 어김없이 나오는게 자신감이 넘친다는 점이다. 해외에서조차 '나대지' 않으려고하는 강제 shy해지는 민족과 극명하게 다르다.

그건 분석이라기 보다 지극히 한국이니까 가능한 정서적 전개였다. 역사적으로 이순신, 김정호 등 예제는 많다. 모 증권 CF에 CEO의 부인이자 톱배우가 남편에게 위로의 노래를 불러준다는 콘티가 온에어 된지 얼마안돼 내렸는데 사유가 완벽한 그녀가 노래불러준다고 해서 위로 보다도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며. 단지 그 사람의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는 게 유감이지만 자랑스런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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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20

생각 2016. 10. 20. 19:21
#
뇌라는건 정말 신기해서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 뇌가 기억한다.

#
피부는 방치하면 더욱 더 최악으로 나빠진다.
좋아지는데는 그의 몇배를 더 투자해야하는데 물론 전과 같지 않다.
그러나 좋아질 수 있다.

#
좋은사람이란 뭘까.
왜 간파했다는 듯이 타인을 멋대로 규정하지?
이제는 그말을 들어도 기쁘지 않다.

#
本音と建前を判別できるかに落ち過ぎて
けっきょく、自分の心の行方まで忘れてしま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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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벤츠 유형

2016. 10. 1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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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방지법

생각 2016. 10. 10. 14:48

부패방지법이라는 명칭이 있는데도 언론에선 김ㅇ란법으로 부르고 있다. 부패방지법 때문에 (기자들 공짜밥 못먹어)울상이란 제목과 김ㅇ란법 때문에 울상이란 제목은 독자들에게 직관성을 한 껏 떨어뜨리기 때문.

#
조중동 + 매한경제지 + 자매 주간지 + 자매 월간지까지 구독하는건 아주 기본이다. 뭣모르던 시절 우리나라 신문사가 이렇게 많은 지는 처음 알았다. 문화한겨레서울 같은 곳은 유명신문사다. 정말 듣도보도 못한 신문을 구독하고 매일 신문쓰레기는 차곡차곡모아 폐기하는 것도 일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안보는 신문 구독중지하면 안되는 거냐고 정말 해맑게 물었다.

#
그들을 버러지같다고 느낀건 심심하면 순회하시는 분들이 약속없이 찾아와 팀장을 부르는데 워낙 바쁜분이라 몇번 물리다가 응대를 하면서 아연실색 했다. 광고유치도 아니고 하라고 통보하러 온 것. 그것도모르고 연결시켜드리려고 했었다. 예정된 광고선전비가 찼을 때도 어김없이 각설이처럼 찾아와 맡겨둔 곶감 내놓으라는 듯이 철판깔고 요구를 한다. 그러나 거부한 적은 없었다. 그럴 수가 없다. 불문율이다.

#
그나마 사정이 나은편으로 그들에게 굽신거리는 회사실무자들에 반말로 툭툭하면서 기선을 제압한답시고 기고만장한 부류도 상당하고, 모 회사에서는 멀쩡하게 n년 쓴걸 결함이 생겼다고 깽판쳐서 그 기천만원짜리를 새걸로 바꾸어드렸단다. 그 회사는 심지어 외국계회사였다.

#
법인카드를 무한대처럼 빨대 꽂는 유형은 물론 법카도 바치라고 하는 갑질도. 메이저 신문사 연봉이 6천이라는데 알파는 무궁무진하다. 어느정도냐면 관례적으로 관리비가 판검사 보다 많다. 영감님들 깜짝놀랄지도.

#
선배 하나가 문화부인데 우리과 출신 연예인 씹으면서 하는 말이 선배대접과 걔네회사의 대접안한다고. 그곳의 알파는 문화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다. 다만 군대급으로 악습이 남아 보상심리가 남아 있었다. 사회부도 아닌데 웬일이냐 싶은 것도 나쁜건 더 빨리 습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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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

생각 2016. 9. 30. 08:07
#
다년간의 삶에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외모보단 아우라다. 외모는 생각보다 옷차림 머리모양으로 상쇄가능하다. 문제는 아우라는 흉내낼 수가 없다.
아우라는 그사람의 타고난 특유의 눈빛, 분위기, 몸짓에서 발산되는 영적인 것의 총체를 의미한다. 목소리만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눈빛으로 압도하는 것. 비단 카리스마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연애관계에서도 굉장한 영향력을 미친다.
외모가 전부였다면 전국의 김태희, 전국의 전지현은 아니 최소 제2의 김태희 전지현이라도 버금가는 명성을 누렸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외모는 흉내낼 수 있어도 고유의 아우라는 흉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코마츠 나나 볼때마다 코미디언 이승환 닮았지만 인형같은외모로 칭송받고있음. 만약 하찮고 여배우 아우라가 아니였다면 지금과같은 인기는 없었겠지.

# 태도
인간관계에서 매력적인 아우라가 있는 사람은 태도에서 분위기를 그린다. 자신을 겸손해하지만 비하하지 않는다.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다. 생기 있으며 집중할 때는 집중력을 발휘한다. 부정적으로 투덜거리지 않는다.

# 눈빛
상대를 교감의 시작은 눈빛교환, 눈빛으로 사람과 참거짓을 판단한다고 할만큼 중요하다. 상대에게 호의적 표시할 때 지그시 눈빛을 취하면 시선에서 알파파가 나오기 마련. '나 너 좋아해'라는 마음으로 상대를 정면에서 바라보는게 때로는 고백보다 효과적으로 마음을 전달 할 수 있다.

#목소리/향기
화룡점정은 목소리다. 목소리가 좋지않아도 아우라는 존재한다. 그러나 청각으로 아우를 수 있는건 분위기에 걸맞는 목소리. 향수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나를 잊어도 내 향기는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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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에 관하여

생각 2016. 9. 25. 17:38
한국에서는 연상의 남자에게 여자는 오빠, 남자는 형이라 호칭한다. 대개 여자는 연인으로 관계진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오빠라는 말에 듣는 남자로 하여금 섹슈얼리티를 느끼게 하는 뉘양스도 갖게되었다. 우리나라가 발화자의 성별과 대상자의 성별을 고려해 언니/오빠/누나/형 호칭으로 복잡하게 부르게 된 게 과연 전통이었을까 한다면 정답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친구의 범위가 위로 10살, 아래로 10살이었다. 하여 일찍 장가가 아들을 낳아 아빠와 아들을 둘다 지기로 삼은 일례도 있다. 조선은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에 동갑이어도 신분에 따라 친구먹는 범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머슴이 야너 ㅇㅇ야 할수 있나, 도련님이지.

한국은 언제부터 나이에 따른 서열이 되었을까. 소학교 보통학교 시절만해도 기초교육은 모든 어린이가 응당받을 수 있지 않았다. 형편이 좋지 않은 빈곤층의 자식은 무학으로 돈벌이에 나섰고, 지방에서는 서당교육이 존재했다. 애초에 정규교육은 커녕 정식기관을 구분해야할 당위성조차 없던 시절이니. 의무교육이 제정된건 46년 9월 국민학교 부터. 가정형편 또는 서당교육에서 편입하는 등의 이유로 입학연령도 다양했다. 서너살 차이는 기본이었고 나이에 관계없이 학년동기끼리 친구였다. 점점 이 세대를 지나 정규교육의 정착이 두드러지고 고등학교 이후 병역징집으로 나이=연공서열화 되기 고착화 시작했는데 60년대 쯤부터로 추정된다.
이 배경에는 산업화이전이었고, 성씨촌이 상당한 비율이었고 집안내에서 엄격한 출산시기별 서열이 학교로 그대로 옮겨져 확장한 것도 한 몫한다. 다시말해 가정에서나 쓰던 위아래 서열호칭이 나란히 학교입학하면서 선후배 호칭 까지 대신하게 된 것.

놀라운 사실은 형호칭은 우리 고유의 호칭이 아니다. 드라마 [추노]에서도 나온 바 있는데 우리는 연상을 발화자의 성별에 관계없이 '언니'로 호칭해왔다. 50~60년대까지만해도 언중이 활발하게 쓰였으나 한자호칭 맏[형]이 급격히 남성 발화자-남자 대상자 호칭으로 독점하게 된다.

연상호칭-그중에서도 특히 오빠호칭-은 연인관계나 결혼관계에서도 지속돼 의미에 혼란주며 본의를 퇴색시킨다고 지적받곤한다. 본디 오빠는 '친오빠'를 의미하는데 결혼해서도 습관적으로 오빠호칭을 못버리는 잘못된 언어습관 사례로 교과서에서도 등장한다. 그러니까 '오빠'라고 해서는 1친오빠인지 2연상의 남자인지 3연상의 남자연인인지 알 수 없게되는 헤프닝이 일어난다. 한국의 독특한 호칭체계는 2번의 관계에서 특별한 관계성을 부각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즉 내 '오빠'가 친여동생과도, 다른 연하의 여자에게도 같은호칭이라는 것, 연인관계에서 갈구하는 배타적독점관계를 위배한다.

일본은 발화자의 관계없이 남자 연상은 '兄아니'고 누나는 '姉아네'인데 존경접두어 'お오'를 붙이면 오니-상 오네-상이라고 부른다. '언니' 발음과 비슷하지 않은가. 결혼하면 배우자의 호칭에 따라 같이한다. 삼촌도 숙부도 'おじさん오지상' 이모고모 숙모도 'おばさん오바상'인데, 복잡다단한 조선의 호칭 이전 고려시대에는 남자는 '아자비' 여자는 '아자미'로 통일했다. 남부지방에서는 아재/아주매라고 하니 전통을 잘 보존된 방언의 역사성과 중요성을 새삼 상기시킨다.

다시 배타적 독점관계에 입각한 연인 호칭 얘길 이어가자면, 일본에서도 선후배 관계 확실하고 부하가 존대하는 등 한국과 비슷한데, 연인관계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선배, 직급 호칭은 하지 않는다. 예를들어 선배 기무라 이치로랑 사귀기로 했다면 그전까진 '선배'또는 '기무라 선배'라고 부르다가도 바로 경칭 생략하고 '이치로'란 이름만 호칭한다. 일본은 성으로 호칭하기가 기본이고 친분관계에 따라 이름으로 호칭하는데서 특별하게 여긴다. 만약 선생님이랑 사귄다해도 사적인 호칭은 '센세-'가 아니라 '이치로'라고 부른다. 경칭보다 이름을 부르는데서 한국과 가장 문화충격을 일으키는 지점이다. 습관처럼 직함이 튀어나오면 이름으로 바로잡는 것도 로맨틱한 클리쉐로 묘사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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