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유일하게 외국에서 살아본적도 없는, 자국에서 공부한 외국인을 '순수외국인'으로 외국인 전형을 적용하는 외국인 역차별 특혜입시는 화교의 엘리트화를 대대손손 누리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참고로 국회의원 등 고위직은 자격이 한국국적이기 때문에 자녀는 무조건 재외국민전형(외국사는 한국인)이며 외국거주조건(3년/12년)이 있다.




외국거주요건 : 전세계대학 다 있음 VS 한국대학만 없음
-미국 : 외국인전형 자체가 없음
-중국 : 외국거주요건O
-대만 : 외국거주요건O. 평생 단 1회 외국인전형으로 입학가능.
-일본 : 외국거주요건O. 외국에서 일본어로 가르치는 학교 불가.
-한국 : 외국거주요건X. 지원횟수 무제한. 국내에서 한국어로 가르치는 학교는 TOPIK(한국어능력시험) 조건 면제.
https://insweet.tistory.com/852

한미중대일 대학 외국인특례입학 비교 - 화교는 공부안해도 명문대•의대 무한지원특혜! 세계유

미국[하버드대학교]https://college.harvard.edu/admissions/apply/international-applicants International ApplicantsWe welcome applications from all over the world. Our admissions processes are the same for all applicants regardless of nationality or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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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는 이중국적이다? 화교는 대만•중국국적자!
화교=외국 거주 중국인.


중국 VS 한국 외국인전형
<외국국적 취득시기>
-중국 : 출생시 외국국적 일것
-한국 : 초등학교 입학전까지 외국국적 취득
*위장이혼 신공 : 한중부부 2세로 이중국적이어도 취학전 한국국적 포기+위장이혼하면 외국인전형 지원가능하다며 화교사회에 만연한 꿀팁
https://insweet.tistory.com/684

국적내놔, 외국인 전형 특례 취하고 한국 타도해야한다는 화교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302100044 중국계 한국인 ‘한국 화교’ 연구중국계 한국인 ‘한국 화교’ 연구m.monthly.chosun.com “한국 국적법은 한국에서 태어나도 아버지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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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5등급도 의대간다? 화교는 아예 수능없이 의대감
왜냐하면 지원조건에 수능이 없기 때문. 의치한약도 토픽5급이 전부. 서울대학교도 토픽3급 조건이다.



외국인전형 유일한 입학요건 토픽, 한국 학교 다니면 토픽마저 불필요= 화교 명문대 세습수단
12년 피터지게 공부하는 한국인과 출발선이 다르게 토픽(한국어시험)하나로 명문대 뚫는 화교. 그런데 그 토픽마저도 면제해 주는 대학들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명문대 입학 무제한 지원횟수+N수 수험공부없이 대학환승 무제한

서울대학교 지원요강(외국인전형 횟수 제한 없는건 전대학공통)

재외국민전형(외국거주 한국인)이 6회 제한 인것과 다르게 지원횟수 무제한.
대만의 경우 외국인전형으로 평생 1회만 입학할 수 있는데 반해 한국은 올해도 내년도 후년도 다니다가도 몇번이든 대학을 갈아탈 수 있다.



한국인과 같이 수업받고 졸업을 했으니 외국인전형도 같은 실력이다?
각 대학마다 졸업요건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 학점
2. 졸업논문/졸업시험/졸업작품
3. 외국어성적
4. IT자격증
5. 대학별 인증자격사항
을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라도 빠지면 졸업이 아닌 수료다.


그러나 외국인전형으로 들어오면 졸업요건도 외국인전형 을 적용받는다.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한양대

입학요건도 토픽, 졸업요건도 토픽이다.


성균관대

다른 졸업인증도 외국인이라 면제!!!







같은 수업 들었으니 같은 실력 아니냐? 외국인전형 졸업 학점 요건

고려대학교 외국인 졸업요건


전공필수가 0학점이다.
대학때 꼭들어가야 하는 전공 필수가 0이면 4학년이 학점따기좋은 저학년 대상 전공 과목으로만 채우면 졸업하면 된다.



연세대는 아예 외국인전형자를 글로벌인재대학이라는 단과대학을 별도 운영하고 글로벌인재대학에서 자율전공으로 전공을 일반학과로 선택할 수 있다. 졸업요건은 역시 외국인기준으로 적용받는다. [일반선택]항목은 전공 또는 타과전공 듣게하도록 교양으로 인정학점제한을 두는데 연세대의 경우 제한없이 전부 교양으로 채울 수 있다. 아예 선택교양으로 썼네.





외국에서 초중고 다닌 진짜 외국인을 한국에서 유학하라고 만든 전형이기 때문에 내국인보다 졸업요건이 매우매우 쉽다. 그걸 전세계 유일하게 한국만 자국거주 외국인한테 주는건 명백히 역차별이고 공정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사회병폐다. 고려대 내부에서는 외국인전형으로 들어온 찐외국인의 학업성취도에 대해 개탄하는 학보가 기사화 됐을 정도. 한국말도 못하는 외국인도 졸업하는데 한국에서살며 한국어 능숙한 화교가 졸업을 못할리가.
http://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21440

문턱 낮은 외국인 특별전형, 학업능력 담보 못해 - 고대신문

대학교육에서 국제화가 중요해지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국인 유학생 수를 2015년 8만 9천명에서 2017년까지 10만8천명으로 확대할 계획을 발표했고, 대표적인 대학평가를 실

www.kunews.ac.kr




앗 한국 명문대 학위 거저다 거저

중국인 자녀는 100% 명문대 보장이라는 광고




정원외입학이라 상관 없다? 취업과 커리어에는 정원외가 없다!
아무 노력없이 명문대 입학하는 불공정 제도 논하는데 논점이탈이다. 취업엔 정원외입학이 없다. 정원내입학이든 정원외입학이든 입시는 특정층에 명문대 특권을 주기위한 제도로 전락해선 안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공정해야할 대학 입시를 단지 외국국적을 이유로 역차별 특혜를 주고, 명문대 세습수단으로써 대대로 이어지고 있는게 뿌리깊은 문제다. 정원외입학이라 몇명이 입학하든 우리와 경쟁을 안하니 문제가 아니라는 화교입장 옹호하는데, 공정한 경쟁을 아예 하지 않아서 문제인거다. 화교입시특혜가 상관 없으면 시험이란 공정한 경쟁없이 입사한 낙하산도 사회문제가 아니다.



외국에 살아본적도 없어도
명문대 입학도 졸업도 쉽게하고
독립운동가 자손도 못받는 혜택을 화교는 받는다
화교가 대한민국 특권 치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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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의 경우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징병만 100만  일본이 한국에 귀국선을 보내고 폭파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남한과 북한에 여러차례 보내고도 일본내 28여만명이 있다. (해방후 재일교포가 그대로는 아니나 대략적인 인구수를 말함) 1980년대 까지도 꾸준히 본국송환을 했다.


일본인의 경우,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에는 4,356명, 청일 전쟁이 일어난 1894년에는 9,354명이 되었다. 러일 전쟁 후 일제가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어 통감부를 두고 각지에 이사청을 설치한 뒤부터 일본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1905년 말 42,460명, 1906년 말 83,315명이었고, 강점 직후인 1910년 말에는 171,543명으로 늘어났다. 이후 재조일본인은 1919년에는 346,619명, 일본이 패전한 1945년에는 약 80만 명에 달했다.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g/view.do?levelId=tg_004_1910

교과서 용어해설 | 우리역사넷

[내용] 1876년(고종 13) 조일 수호 조규(朝日修好條規, 일명 강화도 조약) 이후 1945년 일본의 패전 때까지 한반도에는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거주했다. 1876년 개항 당시 부산에 있던 일본인은 54명에

contents.history.go.kr


물론 해방직후 세간살이 처분하고 일본귀국이 활발했던건 맞지만 80만명 전원이 했다고 보긴 어렵다. 왜냐면 귀국선도 돈인데 대체 누가 보냈단 말인가? 일본이 한국/북한으로 보냈던 귀국선은 일본정부 또는 적십자사가 보냈다. 국제사회의 전쟁범죄에 대한 피해자 구제 질타를 의식했기 때문이고 한국에선 그럴 이유도 돈도 없었다. 표적이 될만한 일본인들은 밀항도 많이했다. 그 많은 80만을 수용할만한 귀국선이 운행되었다 보긴 어렵다.

잔류일본인에 관한 연구가 없다시피 한것도 매우 아쉽다. 임진왜란때 끌려간 조선인도 다시 조선으로 송환을 도모했던 기록이 있는데 왜, 어디로 증발된걸까.



그래서 이명박은 일본인일까?
아님. 일본인 가문이었으면 조부가 부친이름을 덕쇠라고 이름짓지도 않음 덕천이었으면 혹했을지도 모르나 일본인의 작명감각과 아주 동떨어짐. 너무나도 한국인 이름. 오사카는 원래 재일교포가 많은 동네고 해방이 되었는데 일본인이 조선을 왜오나?? 바본가. 한국살던 일본인도 조선어를 배웠는데 일본살다 언어의 장벽이 있는데 패망후 뭘 위해서 식민지였던 땅에 정착할 발상을 하나. 그것도 호적세탁을 하면서까지. 조선에 일가족 이끌고 간다는 자체가 큰 결심이고 조국을 그리워하는 한국인 다운 발상이다. 일본에 이미 일가족이 출산 양육하고 기반이 잡혔으니 일본인으로 눌러사는게 훨씬 쉽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명박 일본성이 月山츠키야마인데 창씨개명 할때 원래 성이랑 발음을 비슷하게 하거나, 한자를 비슷하게 하거나, 뜻을 비슷하게 하는 방식인데 이명박 일가는 2번에 해당한다. 이명박은 경주이씨로 경주의 옛이름은 月城월성이므로 월성이씨 라고도 한다. 여기서 月월을 따온 것으로 경주이씨중에 츠키야마로 창씨개명한 재일 교포들이 많다. 이명박의 경우 1940년도에 조부가 츠키야마로 창씨개명하였다고 한다.

츠키야마 성씨 : 대한민국 경상도 경주(다른이름 월성)시 발원


https://name-power.net/fn/%E6%9C%88%E5%B1%B1.html



명패를 '오다 요시타카'라고 쓴건 이명박 형 이상은이 10대 중반까지 일본살며 유년시절의 향수가 있고 청소년기까지 세월이 있으니 정신적 일본인일 수도 있지만, 내곡동 특검 압수수색 당시 검찰 따돌리기 위장용으로 시간을 벌었던 도구였음.

맨 오른쪽이 시마다목장 공장장이자 이명박 부친 이덕쇠, 이명박 없음
사진속 첫째딸 귀선을 안고있는 사람이 덕쇠(부친), 이명박 없음

이명박 호불호를 떠나 친일성향일순 있어도 일본인은 아님.

노부히로(68·島田伸宏) 일본 시마다목장(현 게이항우유) 사장의 고모인 에이코(84·英子)는 이씨가 1935년 오사카 시마다목장에서 일했을 때 동료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재일동포 2세 김득수(63, 2008년 당시 나이)씨를 통해 본지에 공개했다.

김씨는 "에이코씨가 '다른 사람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충우씨(여자 아이를 안고 앉아 있는 사람)가 시마다목장 공장장이어서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라고 전했다.
(중략)
한편 히라노구 주민자치회는 다음 달 3일 이명박 대통령 기념비 건립 기공식을 갖기로 했다. 자치회는 3월 말 혹은 4월 초 첫 삽을 뜨기로 했지만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고, 또 재일동포들과 협의 하에 기념비를 건립키 위해 기공시일을 늦췄다.
https://isplus.com/article/view/isp200804200026

[단독] ‘이명박 대통령’ 부친 이충우 옹 사진 발견 - 일간스포츠

이명박 대통령 부친 이충우씨(1981년 작고)가 일본 오사카에서 생활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처음 발견됐다. 이 대통령 가족은 1945년 일본이 2차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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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는 일본인이라서X 재일교포라서O

교포 김득수(63)씨는 "이명박 대통령 가족과 시마다목장 간의 인연은 뗄래야 뗄 수가 없다. 만약 시마다목장이 없었다면 이 대통령이 출생할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시마다목장은 이 대통령 출생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https://www.jbnews.com/bbs/view.html?idxno=4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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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왜* 후손 우록마을
*임진왜란때 투항한 왜인 (약 1만여명)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 안쪽으로 들판과 마을이 숨어 있었다. 김충선을 시조로 한 '사성(賜姓) 김씨' 집성촌이다. 마을 입구에 황금색 복고양이 상(像)과 함께 '한일우호관'이 서있다. 문을 연 지 3년이 됐다.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일본 정계와 학계 인사들의 필수 방문코스다.

"작년에만 일본에서 3천여 명이 다녀갔다. 여기 오는 일본인들을 무조건 '친한파'로 만들어버린다. 일본 정계 거물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총무회장은 여러 번 방문했다. 지난 2월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도 일본 정계와 관광업계 인사 1400명을 이끌고 여기까지 내려왔다."
(중략)
―여기 우록마을에 들어오는 순간 산에 둘러싸여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형적으로 좁은 입구만 막으면 누구도 못 들어오게 돼 있다. 자연 요새였던 셈이다. 지금은 40가호쯤 산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200가호가 넘었다. 자급자족한 집성촌이었다. 바깥세상에서 호롱불을 쓸 때 우리는 물레방아로 전기를 만들어 썼다. 초가지붕을 이을 때 우리 동네만 기와를 덮었고. 마을 자체적으로 초등학교를 세울 만큼 교육열도 높았다."

―본인이 일본 핏줄과 연결돼 있는 사실을 언제 처음 알게 됐나?
"집성촌이라 어릴 때부터 들어왔다."

-학교에 진학하면서 '왜놈 후손'이라는 놀림을 받지 않았나?
"왜 안 그랬겠나. '쪽발이 후손'이라고 핍박과 놀림을 많이 받고 살았다. 가끔은 참지 못해 싸우기도 했고."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09/2015080902153.html

[최보식이 만난 사람] "어릴 때 '쪽발이 후손' 놀림 받았지만… 훌륭한 始祖에 대해 자부심 있어"

최보식이 만난 사람 어릴 때 쪽발이 후손 놀림 받았지만 훌륭한 始祖에 대해 자부심 있어 임진왜란 때 일본에 등 돌린 왜장 사야카 金忠善 후손 김상보 종친회장 김충선은 한때는 역적 이젠 명

www.chosun.com


임진왜란이 6년인데
일제강점기 35년동안 일본인 마을, 정착한 일본인이 없을리가
60년대만 해도 집성촌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경남 의령이다?
그럴수도 있지만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일단 주장이 밑도끝도 없다.
1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사건(1982) : 의령 주민 90명을 연속으로 살해 혹은 부상을 입히고 자살. 공식적인 살해동기는 주사. 그러나 아무 증거도 없이 일본인 마을의 실체를 알게되어 난사했다는 게... 소설은 스토리라도 있지.
2 삼성 이병철,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 효성그룹 조홍제 회장, 삼영화학 이종환 회장은 1조를 쾌척하기도 했다.

세 명 모두 태어난 곳이 의령 입구 남강변에 있는 부자 기운을 준다는 솥바위(정암)에서 남, 북, 서 방향 20리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병철과 구인회는 지수초등학교에서 한 학기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 동기이자 사돈관계이다. 또 구인회와 조홍제는 오랜 친구이자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2학년까지 함께 다닌 동기이다. 조홍제와 이병철은 삼성물산을 설립한 동업관계이다.
https://m.knnews.co.kr/mView.php?idxno=1401564

경남 출신 창업주 성공비결은?

도서출판 청 미디어가 ‘부자 氣 받기 시리즈’ 총 3권을 출간(사진)했다. 책은 제1권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기록- 또 하나의 가족’, 제2권 ‘구인회 LG그룹 회장, 기록-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m.knnews.co.kr

-이병철(1910) 선친 이찬우(1874)가 1900년대 전후 독립협회와 기독교청년회 활동했고 이승만(1875)이랑 친분있음. 이완용이랑 연결고리X
-구인회는 독립운동가 자금 보탬.
-이병철 회장이 어린 시절 매형인 GS 허순구 집에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머물렀다는데 허씨는 이미 만석꾼 집안으로 유명한 집이다. 창업주 선친 허만정의 차남 허학구는 경기고 재학시절에 일본인 형사를 두들겨패서 퇴학당함.

이건희는 이맹희가 제사 참여 안했다고 카메라에다 대고 역정내던 전형적인 한국인 맞음. 일본은 제사문화가 없다.
이재용 와세다대학 경영대학원 석사 보낸건 맞고 정용진도 신혼생활 일본에서 보냄. 이건희도 반도체 시장 공부나 차세대 산업동력을 일본서적으로 탐독했었음. 그도 그럴게 이건희가 젊을 땐 일본전성기였고 80년대 일본시총이 미국을 앞섰었기에 산업 동향과 전망을 읽으려면 당연함.
함부로 음모론에 심취하는건 경계해야한다.
이재용은 하버드 케네디스쿨과 비즈니스스쿨에서 박사 수료함. 정용진은 학부가 아이비 리그 대학중 하나인 브라운대학임.



그런데
비상계엄으로 나라가 뒤집혔는데 일본으로 단체출장을 가네??
https://www.ytn.co.kr/_cs/_ln_0103_202412101748077473_005.html

"비상시국에 해외 출장?"…단체로 일본 간 의령군의원들 논란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정국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비상 체제를 가동한 가운데, 경남 의령군의회 소속 군의원들이 외유성 해외 출장을 떠나 논란이다.지난 9...

www.ytn.co.kr



정신빠졌구나
소도시라 자기네들끼리 다 해쳐먹어서 그런가


[경남의 맛 - 향토음식] 의령의 명물 ‘의령소바’

일제강점기 ‘메밀국수’보다 ‘소바’로 통칭
‘의령소바’라 하면 일본에서 유래한 음식 같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음식이라는 것이 국가 간, 지역 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일본에서 왔다고 보는 것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중략)
의령은 일제강점기 당시 금 채굴 광산이 발견돼 일본인들의 출입이 잦았기 때문에 메밀국수라는 말보다 ‘소바’라는 말이 더 많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광복 이후 이를 바로잡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https://monthly.k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

[경남의 맛 - 향토음식] 의령의 명물 ‘의령소바’ - 월간경남

7월, 이 계절에 가슴이 탁 트이게 시원한 맛을 전할 음식은 의령의 명물 ‘의령소바’입니다.의령은 ‘소바’와 함께 소고기국밥, 망개떡 등 유명한 먹을거리가 많은 고장입니다.특히 의령은 서

monthly.knnews.co.kr




의령 명물이라면서 의령 '(메밀)국수'도 아니고 의령 '소바'라는 것도 희한한데 그러면서 일본음식이 아니란다.
그런데 금광으로 일본인이 많이 살았었던 곳은 맞음.




그렇다면 의령은 일본인 마을?


임진왜란 당시 의령에서의 의병활동-곽재우
임진왜란 시기의 의병 조직은 전기와 후기로 변화하였는데, 그것은 의병운동의 성격 변화와 연관되어 있다.
정인홍 군은 5월경부터 초기 의병 조직이 갖추어졌다. 이때부터 향촌사회의 강력한 통제력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국가의 의병 장려와 통제책에 따라 관직이 주어져도 나아가지 않았다. 때문에 정유재란 때에도 유일하게 경상우도에서 향병장이 되었다. 정인홍군의 초기 의병 조직은 학연으로 결합된 문인들이 다수였으며, 합천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인사였다. 그러나 의병 하층부에는 관군에서 편입된 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김면 군은 1592년 5월경 초기 의병 조직이 편성되었다. 이후 김면이 경상우도 의병도대장과 경상우병사가 되면서 의병을 총괄하고, 관군화되었다. 이것이 김면 군의 후기 의병 조직이다. 여기에는 경상우도와 좌도의 유력한 의병장들도 편제되어 있는데, 이들은 의병 초기에는 독자적인 향병이나 의병을 주도하다가 후기에는 유력 의병장에게 편입되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국가의 의병 통제책과 연관되어 있었다. 때문에 김면 군의 후기 의병 조직에는 경상도 전역의 의병과 관군이 참여하고 있다.
http://www.xn--6e0bn8r18lba99azxo02acrr.kr/bbs/board.php?bo_table=sub4_5&wr_id=5

의령홍의장군축제

경남 의령군에서 개최하는 제49회 의령홍의장군축제

xn--6e0bn8r18lba99azxo02acrr.kr




노노재팬 참여했던 의령군의회
http://www.gn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14251

의령군의회, 일본 경제보복 규탄 캠페인 참여 - 경남도민신문

의령군의회(의장 손태영)는 지난 26일 의령읍 중앙 사거리에서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을 규탄하는 캠페인을 실시했다. 손태영 의장은 “일본 정부는 일제시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정당한 피해

www.gndomin.com



오염수방류 규탄한 의령소방서장
http://www.uri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26

조강래 의령소방서장,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규탄 챌린지’동참 - 의령인터넷뉴스

조강래 의령소방서장은 2일 일본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결정을 규탄하고 철회를 촉구하는 릴레이 챌린지에 동참했다고 밝혔다.이번 챌린지는 일본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www.urinnews.com








https://insweet.tistory.com/879

일본에서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 -카와사키 에이코

2차세계대전후 240만이었던 재일교포는 몇차례 귀국선을 타고 조선에 귀국함. 그리고 한국전쟁이 터지고 조선은 한국과 북한으로 갈라짐. 한국전쟁후 한국에서 먹고 살기 바쁠 때 북한에선 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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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자장면 억지를 비롯해 국립국어원의 억지 우격다짐은 한두번이 아니지만 황당한 일을 발견했다. '허나, 헌데 는 당연히 '그러나, 그런데'의 문어적 표현쯤으로 느껴왔다.

그런데 '허나, 헌데'와 일본어 ほな에 대해 비교하려고 알아보니, 뭐 표준어사전에 없다고 해서 틀렸다는 둥
허나, 헌데가 아예 비표준어인데다가 아예 허나의 으뜸꼴이 '하다'이므로 허나는 '하나'여야하고 헌데는 '한데'라는 괴상한 국립국어원의 입장을 보노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https://www.newsro.kr/article243/473946/

[우리말] 유명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 부사 ‘허나’, 바람직한 표기는? | 뉴스로

오래도록 노래방 인기 곡으로 손꼽히는 밴드 'izi'의 '응급실' 가사 중 일부이다. '날 찾길 바랬어 허나 며칠이 지나도 아무 소식조차 없어' 이때 '허나'보다 더욱 바람직한 표준어가 있다. 바로 '

www.newsro.kr


허나, 헌데는 하루아침에 문법을 무시하고 생긴 조어도 아니거니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앞의 문장을 반대되는 접속사 역할을 해왔고 앞문장이 없이도 단독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으뜸꼴이 동사 '하다'인 한데, 하나와는 결이 다르다.


1920년 동아일보 허나


'거시기'도 표준어인 세상에 100년된 비표준어도 있나? 교양있는 서울민이 두루 쓰는 표준어라는 규격도 너무 편협하기 짝이없다.


그리고 국립국어원이 주장하는 '하다'설도 틀린것으로 보이는게

1923년 조선일보 4째줄 '그헌데'


4째줄에 보면 '그런데'가 아닌 '그헌데'로 기록돼 있다. 으뜸꼴을 '하다'로 볼게 아니라 '그런데'가 '그헌데'의 연음을 하면서 생긴 변형이고 '헌데, 허나' 자체를 으뜸꼴로 보아야 한다.


ほな호나 일본어 관서방언
그렇다면 그럼이란 뜻의 접속사
뜻은 다르지만 비슷한 발음의 접속사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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