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일본 외무상은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 사도(佐渡)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실현을 위해 "한국과의 사이에서도 계속 성실하고 부단하게, 정중한 논의를 실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40123_0002602493

日외무상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위해 韓과 정중 논의할 것"

[서울=뉴시스] 김예진 기자 =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일본 외무상은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 사도(佐渡)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실현을 위해 "한국과의 사이에서도 계속 성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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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강제징용해 일을시켰던 나가사키현 하시마섬(일명 군함도)과 니이가타현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분주하다. 세계유산을 신청하면서 조선인 징용의 피해역사를 지우고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의 유산으로 전쟁범죄가 아닌 세계유산으로 국제적 인정받으려는 외교정책의 일환이다.

근데 그게 하필 윤석열인거지.

군함도의 경우, 조선인 강제노역을 숨긴데 대하여 알릴 조처가 충분하지 않고, 기리기 위한 전시사 없다고 지적하며 반려당했라. 그러나 하시마가 아닌 신주쿠 산업유산정보센터에 조선인 희생자 정보를 QR로 접속하면 확인하도록 숨겨놨는데 긍정평가를 했다. 일본외교의 승리였다. 관련국과 대화하라며 진전 상황을 24년 12월까지 제출하라고 한 상태. 하필 이럴때...

사도광산의 역시 니이가타에서 조선인 을 광부일 시키며 노동착취를 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구리, 철등을 캐던 강제징용의 본거지를 지우고 사도광산 등재를 위한 기간을 에도시대(1703-1863)까지로 한정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2024년 등재를 목표로하고 있다는 일본. 하필 이럴때 윤석열 정부라니




일본에 대해 저자세인 윤정부라서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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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 vs 최배달

기록 2024. 1. 23. 10:23

둘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가라데 챱 레슬링과 극진가라대로 전후시대를 풍미함. 역도산이 70년대 레슬링 신드롬의 원조였다니... 김일이 사사받았다함. 둘다 그시절출생이라 일본어는 잘하고 둘다 한국처와 일본처를 두었다. 역도산 아들은 조선인인줄 몰랐다고하니 별로 조선얘기를 안했나봄. 일본인 지인중에 여러 정황을 봐서 한국인으로 의심되는데 부모가 명확히 얘기를 안해줬다(현재 운명하심), 귀화하고는 아예 처음부터 몰라도 된다고 일절 얘기 안해주거나 중고등학교 민감한 나이되어서 말통한다고 생각해서 공개하는 경우가 있음. 재일교포임을 공개하는걸 '커밍아웃'이라 할정도로 밝히기 꺼려함. 차별도 심하고 일본매체에서 한국인의 범죄에 국적보도 강조하고 정치적으로 일제의 전쟁범죄를 미화 하고 원폭맞은 일본이 피해자고 한국이 나쁘다는 식의 여론공작이 심하기 때문. 한일관계가 나쁘면 더 두들겨 맞음. 그들이 일본 살면서 한국국적 유지하라 우리가 왈가왈부 하기는 욕심이고 월권임. 갖고있으면 감사한거고 귀화했어도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마음만 가져주면 된거임.

암튼 역도산은 스모하다가 레슬러로 전향하면서 사업을 한게 대박나서 전국민적인 인기를 끌었으니 60년대에 이미 2층집에서 살고 차고에 차가 한두대가 아니다. 다큐에 아들이 차가 취미였다는 역도산은 북한가서 김일성한테도 차 한대를 사줬을 정도라고 하니. 시야가 탁 트인 사람이라 그시절에 미국도 가보고 샌프란시스코,  하와이 가서 새로운 문물도 보고, 레슬링을 사업모델로 하면서 과감히 투자함. 아까 읽은 초가집수준의 북한간 사람들 생각하면 얼마나 호화로운지.


샌프란시스코에 간 역도산
미국 마트 브이로그
역도산 2층 자택
12월 28일쯤 새해맞이 떡메치기가 연중행사였다고
당시 집 정원
정원의 오픈카, 46년생 차남이 어린걸로 보아 50년대 초반 추정
차남왈 자동차를 좋아했다는 역도산은 고급차를 몇대나 갖고 있었고 자주 드라이브를 했다고 한다
프로레슬링 월드리그 개최(61년)


극진가라데의 최배달은 그유명한 도장깨기의 장본인. 소를 맨손으로 때려잡는데 북한에선 병으로 죽은 소고기 판매했다고  총살당했는데 2023년에 1950년대에 소 교살하는걸 신문사랑 방송사 대동하고 오락적으로 소비함.

1964년 치바현 칸야마시
최배달 173kg 체중 82kg
소나이 5세, 체중 450kg, 뿔두께 9cm 뿔길이 40kg
맨손으로 소때려잡는 최배달 뿔에 찔려 위험한 순간도 있었으나 소뿔도 뽑음



역도산 역시 제2차세계대전 패망하고 미국인에 패배한 열등감을 거구(실제 176이지만 뻥튀기 180)역도산이 힘으로 손날로 가격하는 상대인 미국인이 나자빠지는 레슬링에 감정이입을 함으로서 쇼와의 영웅으로 추대됐다. 온 일본인의 열렬한 인기를 한몸에 받은만큼 정치계 거물과도 연이 닿았다.

왼쪽부터
-사회당서기관 아사누마 이네지로우
-국민당 부총재 오오노 반보쿠
-자민당 위원 카와지마 쇼우지로우
-역도산
오른쪽
-후쿠다 야스오 총리
-나카가와 이치로우 농림수산대신
-역도산
-스즈키 무네오 내각부장관

사실 지금 보면 실제라기 보다도 쇼적인 측면이 강하게 들지만, 어려우면 강력한 카리스마를 갈구하게 되는듯. 난세에 영웅 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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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후 240만이었던 재일교포는 몇차례 귀국선을 타고 조선에 귀국함.

그리고 한국전쟁이 터지고 조선은 한국과 북한으로 갈라짐.

한국전쟁후 한국에서 먹고 살기 바쁠 때 북한에선 재일교포를 귀환하는 배를 보내 냉전시대에 공산주의를 선전하고자 재일교포의 귀환하도록 하였는데 마침 강제징용징병 등으로 일본거주하며 군국주의와 민족주의 차별 희생자의 생존자들이 떡하니 살아있으니 빨리 없애버리고 싶었던 일본이 옳다쿠나 대대적으로 홍보해서 59년부터 80년대까지 수십차례 귀국선을 보내 60만 재일교포 중 9만여명이 귀국함. 집도 일자리도 다 보장되는 낙원이라고 해서 조국으로 향한 재일교포는 북한의 낙후되고 가난한 실상에 속고마는데...

이 책을 보기전에 해당사실을 간략하게만 알고 책을 봤는데 북한사정 가난한거야 잘알려져서 놀랍진 않은데 개개인의 실화기반 소설이다 보니 새삼 인간군상 이해와 국가와 개인의 상관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잘살지도 않으면서 국가적으로 더 잘사는 재일교포를 왜 끌여들었을까? 나는 책을 보기전까진 한민족의식이라 생각했다. 또한 일본에서 엘리트를 받아들여 기술발전을 도모하는 것. 나는 너무 순진했던 것이었던건지 당시의 김일성이 나보다 멍청했던건지... 재일교포를 고작 노동착취하려고 불러들인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 굳이 노동착취보다 기부금앵벌이가 낫지않나 싶다. 북한은 위안부나 전쟁배상금도 받지 않았다. 일본한테 먼저 배상금이나 악착같이 받지ㅉㅉ SOC나 미래자본, 기간산업 같은 미래 전략이 전무하고 도토리, 살구씨 같은 물자 주워 수출할 1차원적인 생각을 하다니 암담하다.
뭐 그땐 김일성-모택동 시절이니 지도자로서 어떤 산업을 일으켜야 주민들이 벌어먹고 살지 혜안 보다 그저 찬양받고싶을 뿐인 돼지에 불과한데 지도자의 역량이 떨어지니 모든 개인이 궁휼하고 당에 찬양과 충성으로 출세가 갈림. 모든 발전이 멈춰있고 가능성은 닫혀있으며 자유주의를 경험했던 엘리트나 사업가들은 학습된 무기력에 좌절함.


오일쇼크 이후 공산주의 의 침체가 참패로 확실시되고 80년대 플라자 협의 전 세계최대 경제적호황을 맞은 일본과 격차가 크게 벌어지자 일본에서의 친지 방문도 허용하고 일본돈도 쓸수 있게되었다. 물론 귀국했던 재일교포가 일본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20억엔 기부한 재일교포 귀국자 부친상에도 출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쯤에서 부터는 북한은 통행과 이동의 자유가 없어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고 통행증을 지니고 다녀야한다.

•조선시대 이후 한국에서 소멸된 신분제를 하고 있는 북한
재일교포는 출세길이 막혀있어 아무도 결혼하지 않으려함
일본에서 연고가 있어 물자와 돈을 받을 수 있으면 근근히 먹고 살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하위 삶을 살아야하는데 오사카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북한에서 돼지 여물로도 안먹던거 먹고 사는 집안 보고 배급을 킬로수만 맞으면 쌀이든 여물급 곡식이든 같이 취급하는게 북한주민도 안먹는거 먹고 자란 집이 너무 안타까웠다.

•여자들이 기지를 보였던 부분들이 인상적
-어머니의 기지로 술을 팔아 부수입을 만들고 당간부와 친해진것
-일본에서 친했던 지인이 80년대 3만엔을 줬는데 옥수수를 쌀때 샀다가 보릿고개때 넉넉히 먹으려고 1.8톤 사려했던 영민함(당간부가 지가 쳐먹으려고 그거 몰수시켜 충격먹고 허망하게 죽음)
-부당함에 꼿꼿한 아빠 진정시키고 상황에 대비하고 모면한 모면한 딸의 처세

•국가에서 인력양성할 체계도 없으면서 엘리트 홀대
-김일성대학은 공부 잘해서 가는게 아니고 당간부 또는 공로자 자녀면 멍청해도 가는곳
-일반 대학생도 무기술자 취급하고 공장보냄
-무역회사원 출신도 농촌이나 공장
-유일하게 연구를 좋아했던 수학과 대학생은 연구해도 일용직노동자 수준의 박봉에 자기가 쓴 논문의 업적 강탈당함
-의대생을 무면허 의사로 앉혀서 시골진료소 보냄(주민들은 의료인에 환영하면서도 그러면서 엮이면 인생 고달파서 교류는 안함)
>>선진국의 체계를 북한에 이식하는게 아니라, 일부 기술직이나 조총련 간부를 제외하면 북한주민들도 꺼려하는 3D직업에 보내려고 취업사기 시킴. 더 이해안가는 것은 풍족하지 않은데 일본에서의 짐과 먹을거리 다 버리라고 유도 해서 바다에 버렸다는 것임. 아마 북한 사회 주민들이 배운것과 다르게 일본이 잘 산다는걸 알고 공산체제 동요될까봐 아까워도 버리게시킨게 아닐까함. 비슷한 이유로 개성공단에 초코파이 주는것도 금지시켰으니. 주민들 기아 해결보다 체제유지가 중요한 미친곳.

•한국인의 공부에 대한 열망은 DNA에 새겨짐.일본에서 리츠메이칸 다니다 재일교포라 김일성대학 못가고 그냥 대학갔는데도 열심히 공부. 사상세뇌 시험보는데 결과 안좋으면 퇴학인데 끌려가기 때문에 열공.
•지금 한국은 잃어버린 한국인의 정
-아내가 북한가니까 조선인 마을에서 홀아비 식사초대나 빨래를 이웃 주민(아마도 아녀자)들이 해주는 인심
-북한이 찢어지게 가난한데도 어디 부탁할때나 답례는 꼭꼭함.
-북한가더니 2살차이인데 30년은 더늙은 이웃보고는 일본음식과 80년대에 3만엔을 쥐어준 이웃(본인 아들도 일본에서 귀국하여 겸사겸사 만남)
ㄴ아들이 조문가서 쫄쫄굶고 돼지 여물수준의 끼니보고 수중에 있는돈 교통비랑 식비 빼고 털어서줌
ㄴ그집안 딸은 자기집에 특식인 고구마 챙겨서 가는길에 드시락고 싸서보냄
-엄청난 수익이 나지 않음에도 후학 양성에 힘쓰는 일본의 조선학교
-조선인들 일본에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학교설립 등 한국이나 북한에 기부한 자수성가 재일교포
•양심
-자신이 주도하고 지원했던 북한귀국을 도모했던 사람이 북한의 실상을 보고 자신을 믿고 따라준 사람들이 처할 생활수준에 책임감을 느끼고 괴로워함
-오자고 했던 사람 다 미안해서 어쩔줄 모름
-근데 초반엔 몰랐다해도 80년대 이후는 교류가 있어 모를리 없을텐데 조총련이 50년대 말부터 60년대 말까지 입단속 시킨게 가증스러움
-의대생 출신 무면허의사가 아내의 권유에도 이런나라에선 씨앗한톨 남길수 없다고 애 안낳은게 애주렁주렁 낳던 그시절에 ㄷㄷ

•개죽음
-내성적이고 수려한외모에 연예계 스카웃도 고사했던 조선고 프린스 수학자. 논문강탈 당하고도 먹고살기 막막한데 일본 지인한테 구걸할 수 없어서 쫄쫄굶고 도토리 줍는거 할당 있어서 마지막 에너지 쥐어짜서 일하다 아사(굶어서 돌아가심).
-수학자 대학생 부친이 일본에서 사업해서 크게 벌었는데 아들이 북한에 있어 80년대전에는 북한에 가볼 수 없어 외동아들이 절절해 잘있는줄알고 조총련에 전재산 다 기부하고 오는 바람에 정작 북한에서 일용노동자 취급당하고 일만하다 죽음ㅜ
정작 납치당한 일본인 마유민가 뭔가는 재일교포는 시골에서 밥굶고 다니는데 도시에서 끼니걱정없이 훨씬 나은 삶 산다라...

•부패 : 한국은 욕심과 책임회피때문에 부실공사, 북한은 전문건설기술자 양성보다 공짜 노동력 착취 때문에 부실공사 양쪽으로 한심함
•위암 : 작품상에서나 실제로도 사망원인 1위라 제대로된 밥을 못먹어서라고 추측하는데 영양 과잉인 한국에서도 1위라

•삼베옷
작품중 술도박폭력마약하는 개시발롬이 유배로 광부 여자랑 바람나는 부분에서 하려다가 상대가 뻣뻣한 삼베속옷을 입은걸보고 아!하고 자기도 모르게 놀라고 식어서 상대도 뭔진 모르지만 분위길봐서 바지섶을 채웠다는데 그 개시ㅏㄹ롬도 일부러 그런건 아니더라도 상대한테 상처를 준거같아 돈을 줬다. 삼베는 수의옷으로 쓰는데 속옷으로 입은걸 처음봐서 놀란걸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걸까. 여기에 설명이 없어서 선뜻 이해가 안갔다.

•옥에티
일본어를 한국어(역자가 재일교포)로 번역한데다 북한식 표현을 써서 번역한 특이한 방식이다. 어휘라든가 표현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있다.
-특히 일본위주의 어색한 표현을 수정하지 않아 거북함 日朝>조일, 일본해>현해탄, 주인>남편
-본문은 북한을 이나라라고 쓰고, 작가의 말에선 공화국으로 쓰는게 이유가 있는걸까?

•오사카 말고도 요코하마에도 조선인 마을이 있음. 한국인이 많은 유리공장이 있었다함. 요코하마는 카나가와현의 시이다. 공교롭게도 작가의 성씨인 카와사키도 항구로 재일교포가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명이기도 하다.
•식민지 때 한일을 오가는 배 이름이 키미가요마루(그 군국주의 찬양가이자 국가에 마루(동그라미, 배의 안녕 기원해 붙이는게 습관)를 붙임)

•일본은 재일교포 귀국 장려를 위해 영화도 두세편 제작하는데 내용은 재일교포를 멸시하며 놀리다가 자신이 교포임을 알고 조국에 간다고 귀국선에 지원하는 내용이다. 이걸보고 지원한 대학생 재일교포가 많았다고 한다.

•같은일을 해도 재일교포는 일본인 월급의 반밖에 안주는 차별을 겪었다. 소득이 적으니 판자촌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돕고 살았다. 일본인 사는 구역에 비해 행색은 초라하지만 한국말이 통하고 정을 느껴 이주한 사람도 있었다.

•싸튀충 불가, 아이를 책임지는 수단으로 결혼안하면 유배

•여자가 원하면 바로 이혼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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