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가'의 침투

기록 2022. 4. 24. 06:32

문법적으로 '네가'지만 언중사이에서 '니가'가 통용돼왔었던 2인칭.
사실 00년대에도 서울에서는 썼었다. 아마 서울에는 영미권 경험자들로 인해 nigga로 오해를 회피하기 위해 문법에 맞지 않다는 걸알면서도 진작에 '너가'를 택했을 걸로 보인다. 서울애들도 그땐 사람에 따라서 쓰는 사람도 있고 안쓰는 사람도 있고 쓰는 친구들도 있었고... 나에겐 이질적이었으나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10대들 사이에서 '너가'가 확대된건 어느정도 알았지만, 확 체감했던건 2019년 어쩌다 발견한 하루라는 드라마에서 주연들이 너가를 쓰면서다. 이것도 고등학생 주인공 배경이라서 현실반영이라하면 수긍할 수 있긴하지만 어쨌든 웹드도 아니고 공중파 드라마에서 '너가'가 나올줄은 몰랐다. 그 때 이후로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보이고... 예능에서 연식있는 방송인들이 '너가'쓸때마다 뭔가 묘하다.

내가사는 동네도 어린애들은 '너가'를 거부감없이 쓴다. 솔직히 나는 '너가'를 쓰는데 여전히 반감이 커서 쓰지 않는다. 외려 젊어보이려고 하는 연배있는 사람이나 서울말 쓰려는 사투리 화자들이 저항없이 '너가'를 잘쓰는거 같아 은근 충격이다. 약간 나한테는 평생해온 발화의 근간이 무너지는 느낌이라 싫다. 같은 맥락으로 '저가'도 꼴보기 싫다.

'니'라는 말 자체를 비꼼으로 쓰려는 사람도 간간히 포착된다. 사실 남부권이 아닌 지방에서는, '니는'이라는 말은 비꼬는 뉘양스를 담고있다. 그걸 '니가'까지 부정적 뉘양스를 확장시키려는 화자들을 볼때면 짜증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갈등을 피하기 위해 '너가'를 쓸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영어의 2인칭이 you라는 반말밖에 없다고 알지도 못하면서 단정짓는다. 원래 thou라는 2인칭이 있었고 you는 상대을 올려주는 존대 2인칭이었다. 그러나 you가 범람하면서 thou가 하대조로 느껴지면서 thou는 소멸하고 you만 남았다. 2000년대 웹상에서 '님'이 득세하면서 2010년대는 '님'이 오프라인에서도 정착되었으며 이젠 '씨'는 손아래사람이 부르기 무례한 지경에 이르른것에 필적하는 급격한 침투력이다.


심심해서 라인 연어하다가 일본인 친구가 한국어로 쓴 축하글. 분명 어딘가 복붙했을텐데 구글링해보면 연관검색어에 '니가 너무 좋아'로 뜰정도로 아직 네가/니가가 견고한데 어디서 복붙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새삼 '너가'의 침투를 한번 정리해야할 것같아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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