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와 저, 겸양어가 주는 인상
생각
2015. 11. 19. 16:59
우리나라에서 본인을 지칭하는건 나를 보통으로 쓰지만 여러사람앞이나, 윗사람에게는 저를 쓰는게 예의다.
요즘은 저 대신 나를 많이사용하는데, 많은 사람 앞에서도 나라고 하는 사람을 보면 말하는 예의가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한중일 대학 총장 심포지엄 일본어 통역할 때 든 생각이 한국이면 고개 뻣뻣하게 들고 권위주의 심하게 부릴 위치인데-뭐 교수임용된시점에서 교수 어깨에 잔뜩 힘이 실리지만-일본교수의 인상은 달랐다. 단적으로 대부분의 교수들이 와타시/와타쿠시를 썼다.
귀빈이라 실수할까 긴장하고있었는데 내가 통역 담당했던 옛 제국대학 총장님은 담당자로 소개하자마자 첫마디가 "와타시데 요로시이데스까.(저로 괜찮습니까)"라고 말했던게 기억에 남는다. 그게 인사치레인지 진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자기 학교 학생이 아닌 남에게도 교수대접받고 싶어하는 한국과 달리 정중하고 비즈니스 매너도 탁월해 본받을 점이 많았다.
여러 총장과 학장들 대부분이 내가 학생인걸 알면서도 그런 내게 명함 건네주면서도 공손하게 두손으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었고 존경어와 겸양어를 썼다. 그전까지 거추장스럽게만 느꼈던 겸양어였는데 품위있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말하던중에 "요즘 젊은애들은..."이런 얘긴 한일 공통이었지만.
수학교육과였다며 수학 모르는거 있으면 연락달라던 학장님이나, 진로 상담해주셨던 총장님. 서랍 한켠에 그분들 명함이 있어 꺼내볼 때마다 생각하곤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요즘은 저 대신 나를 많이사용하는데, 많은 사람 앞에서도 나라고 하는 사람을 보면 말하는 예의가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한중일 대학 총장 심포지엄 일본어 통역할 때 든 생각이 한국이면 고개 뻣뻣하게 들고 권위주의 심하게 부릴 위치인데-뭐 교수임용된시점에서 교수 어깨에 잔뜩 힘이 실리지만-일본교수의 인상은 달랐다. 단적으로 대부분의 교수들이 와타시/와타쿠시를 썼다.
귀빈이라 실수할까 긴장하고있었는데 내가 통역 담당했던 옛 제국대학 총장님은 담당자로 소개하자마자 첫마디가 "와타시데 요로시이데스까.(저로 괜찮습니까)"라고 말했던게 기억에 남는다. 그게 인사치레인지 진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자기 학교 학생이 아닌 남에게도 교수대접받고 싶어하는 한국과 달리 정중하고 비즈니스 매너도 탁월해 본받을 점이 많았다.
여러 총장과 학장들 대부분이 내가 학생인걸 알면서도 그런 내게 명함 건네주면서도 공손하게 두손으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었고 존경어와 겸양어를 썼다. 그전까지 거추장스럽게만 느꼈던 겸양어였는데 품위있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말하던중에 "요즘 젊은애들은..."이런 얘긴 한일 공통이었지만.
수학교육과였다며 수학 모르는거 있으면 연락달라던 학장님이나, 진로 상담해주셨던 총장님. 서랍 한켠에 그분들 명함이 있어 꺼내볼 때마다 생각하곤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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