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정복전쟁은 유목민이 비옥한 땅을 차지하려는 게 강하고(고구려) 등따시고 배부르고 자본을 축적하면 문명이 발전하기 마련이다. 기호학파의 경우, 전라도가 평야가 많고 따라서 풍부한 농업 자원을 가졌으니 자연스럽게 학문탐구와 정계진출에 대한 열망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경상도는 현재 공업단지가 많지만 옛날에는 농경사회였으니 농사를 지었겠지만 산맥이 있어서 전라도 만큼 평야가 많은 인상은 아닌데 뭘로 벌어먹고 살았을까.

조선 전기의 선진 농업 지역, 경상도
14세기 중・후반부터 16세기 중・후반에 이르는 200여 년 동안 경상도는 조선왕조에서 가장 발달한 농업 기술력을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인구 비중, 선진적 문물 및 문화의 보유, 주목할 만한 인재의 배출 등 다방면에서 선진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경상도 수전 농업에 대한 이해는 조선왕조 전체의 농업 발달 수준을 가늠하는 풍향계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이 시기 경상도는 농경지의 상경화 추이, 저수지를 중심으로 한 수리시설의 설비, 수경직파법 및 이앙법 등 농업경제상의 각종 지표에서 가장 선진적인 농업지대였다. 15세기 초반 경상도에서 실험되던 수경직파법이 경기도 남부 지방에 도달한 것은 15세기 후반이었다. 15세기 중・후반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경상도의 이앙법이 충청도에 이른 시기는 17세기 전반, 경기도는 17세기 중반이었다. 경상도는 이러한 눈부신 수전 농업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17세기 초반 수전 중심 농업 지대로 편입되었다. 그런데 농업 경제상에서의 경상도의 독보적 지위는 임진왜란 이후 여타 지역이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위협받게 되었다.
『조선시대 경상도의 권력중심이동』 p41~42, 태학사, 김성우

역시나 토지지형의 단점을 선진 농업기술로 상쇄시켜 안정적인 농작물생산으로 일찌감치 농업경제의 우위를 차지했다.

4c경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이 소수임에도 그대로 일본의 귀족계층이 될 수 있었던건 수로를 대는등의 선진 농업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우 귀하게 대우받았고 환영을 받았다. 웃어른 말씀에 '기술'배우라는 거 틀린거 하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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