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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22.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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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리치 2013년 7월호]

 

중국인 마음 속의 “친구의 등급”

 

 전병서

경희대 중국경영학과 객원교수

                                                                     

유럽사태로 경기가 나빠지자 중국시장공략이 기업들의 절대절명의 과제다. 중국시장 공략의 핵심은 무엇일까? “동양의 성경”이라고 일컷는 논어의 첫 구절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로 시작된다. 2000년 전에 살았던 공자가 알려준 중국공략의 핵심은 바로 배움과 친구다. 요즘 중국 CEO들 사이에는 수업료만 1억원 대에 이르는 명문대 EMBA과정이 인기다. 최고급의 배움을 통한 친구 맺기 열풍에 빠진 것이다. 관시(关系) 사회라는 중국에서는 친구를 통하면 안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 마음 속의 “친구의 등급”

 

13억의 인구가 치고 받고 하다 보면 무슨 일이든 치열한 경쟁이다. 그래서 “힘있는 사람을 아는 것”이 경쟁력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아는 사람, 친구는 크게 두 부류다. 형님 아우 하는 유비와 관우 장비와의 관계인 같이 권력을 나누는 “정치 친구”가 있고, 돈을 서로 나누어 쓰는 “사업 친구”가 있다.

 

중국상인들과 사업친구, 펑요우(친구) 맺기를 했지만 여전히 비즈니스가 더디다. 왜 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의 등급과 중국인들 마음속 친구의 등급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구라고 하면 대체로 그 개념이 한가지로 통일되지만 중국인의 마음속에는 여러 종류 친구가 있다.

 

이런 친구의 등급 중 최말단이 이해관계를 위해 서로에게 술과 고기를 먹이는 친구(酒肉之交) 다. 배움과 진실된 정보를 공유하는 친구(学校之交)가 다음이고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친구는 절대 돈으로는 살수 없는,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知心之交)다. 그리고 친구의 최고봉은 그가 연주하는 악기의 음만 들어도 그의 마음을 아는 친구(知音之交)다. 이런 친구에게는 돈이 아니라 목숨을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게 중국인들이다.

 

비즈니스로 중국을 갔을 때 공항에서 벤츠차로 영접하고 으리으리한 식당에서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음식이 나오고, 52도짜리 백주로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건배하고 가라오케까지 일사천리로 가는 것이 주육친구(酒肉朋友)다. 무협지에서 보면, 같은 스승에게 배운 제자들 중 막내가 잡혀가면 피한 방울 안 섞인 관계지만 사형, 사제가 목숨을 버려가면서 막내를 구하는 것이 동문수학한 친구(学校朋友)관계다. 지금 중국의 권력 실세인 후진타오 주석의 모교인 칭화대 동문을 일컷는 칭화방이 그 한 예다.

 

그러나 지심친구(知心朋友), 지음친구(知音朋友)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지심친구(知心朋友), 지음친구(知音朋友)에게는 절대 회사가 준 접대비 카드 평펑 쓰면서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는다. 한 끼의 식사도, 한 모금의 차도 고르고 또 고른다. 친구를 위해서 전통과 스토리가 있는 오래 된 집(老字号)을 고른다. 그런 집은 수 대에 걸쳐 전통 비법이 내려온 집이고 그 집의 음식과 서비스는 밥이 아니라 그 자체가 문화고 아트다.

 

중국인들과 비즈니스에서 상대방이 나를 어떤 식당에서 밥을 사주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왜 중국사업이 진도가 잘나가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상대방이 나를 단순히 외국에서 온 “한국인 친구”로 생각한 것인지 돈도, 마음도, 목숨까지도 나눌 수 있는 “지고지선의 친구”로 생각했는지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K-Pop(?)의 원조는 한국인 정률성

 

중국이 1949년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면서 처음 북경에 입성했을 때 목청 터져라 불렀고, 2009년 중국 건국 60주년 기념식장인 천안문광장에 대대적으로 울려 퍼졌던 곡이 바로 “인민해방군 군가”다. 그런데 그 군가의 작곡가가 바로 한국인 정률성이다. 이 곡은 1988년 중국의 절대권력자였던 등소평에 의해 중국군대의 군가로 지정되었고 중국의 중요행사 때면 중국의 국가 다음에 흘러나오는 곡이다.

 

정률성은 전라도 광주출신 음악가다.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했고 중국에서 ‘신 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 선정될 정도로 음악을 통해 신 중국건설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은 중국 3대 현대음악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정률성은 중국의 국립묘지 격인 베이징 시내 빠바오산(八寶山) 혁명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정률성의 중국진출 이후 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 한국 가수들의 음악이 중국 젊은이들에게 인기다. 행진곡풍의 군대 박자에 물든 나라에 한국의 댄스와 발랄함이 중국인들에게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정률성과 K-Pop의 사례에서 보면 옛날부터 중국이 한국 음악 좋아하는 것은 내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한국인은 중국과 서로 이웃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중국인의 마음을 읽는 눈이 있었고 음악으로 그들을 감동시키고 친구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한류 관광, 중국인 마음속의 비밀코드 읽어야 대박

 

못 살면 “혁명”이고, 잘 살면 “쇼핑”이다. 미국의 경제심장부 월가는 가난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점령에 노심초사인데 서울은 중국관광객들의 쇼핑인파에 점령되었다. 제주도에서도 중국 관광객이 면세점을 싹쓸이 하고 있다.

 

왜 중국인들은 한국관광에 열광할까? 미국과 유럽보다는 만만해 보이고 비행기 표가 싸서 그런 건 아닐까? 더 많은 소득이 생기면 한국이 아니라 예술의 향기 넘치는 명품의 본고장 유럽으로 가버리면 어떡하나. 부동산, 무역으로 갑자기 졸부가 된 이들이 떼로 명품가방 사러 왔다고 한국의 “한류관광 르네상스”를 부르짖기는 이르다.

 

철새는 아무리 멀어도 자기 집을 찾아가는 것은 향수 때문이 아니라 철새의 머리에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작은 자석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쇼핑관광에서 한국이 오랫동안 돈 버는 방법은 무엇일까? 중국인의 머리 속에는 어떤 자석이 들어 있는지를 봐야 한다. 중국인들 마음속의 비밀 코드를 읽어야 한류관광에 성공한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정말 궁핍하게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돈 가방이 넘친다. 시커먼 얼굴, 절구통만한 허리에 명품이 어울릴까 만은 개미허리, 손바닥만한 하얀 얼굴의 미인만 있으면 명품장사는 모두 굶어 죽는다. 중국인들의 명품 싹쓸이 쇼핑은 지나간 가난함에 대한 "콤플렉스"가 한 요인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이 보여줄 것이 루이비통, 구찌 등 명품매장이라면 그건 오래 못 간다. 명품쇼핑 외에 한국이 중국관광객을 끌어 당기는 강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한국이 중국인들의 한류관광에서 오래 호황을 누리려면 한국에 중국인의 마음을 알아주는 진짜 친구, “지심친구"가 많아야 한다. 중국인들이 “마음의 바이오리듬을 읽어주는 친구”가 있는 한국을 갔다 왔다고 자랑할 만한 “지음친구”와 정률성과 K-Pop에 버금가는 “문화상품”이 더 많아야 한류관광의 호황이 오래 갈수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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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

2019. 10. 24.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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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 구하기 꿀팁

저장 2019. 10. 22. 12:25

팁/노하우
자유게시판에서 이전] 원룸 구하는 팁 (내용추가)
 
근 5년간 원룸이사만 10번넘게 했습니다 (실질적 이사는 12번) 

개인적견해가 다량 함유된 글입니다) 

아마 대학교 입학예정이신분들에게 나름 도움이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순서는 의식의흐름순이라 약간 뒤죽박죽이어도 양해바랍니다 
중간중간 성향별 추가옵션도 달아두엇습니다 


 방가격은 따로 다루지않앗습니다 지역차가크므로 주변방이랑 비교해보시면 됩니다  
제경우는 구하는방 주변 제일 비싼방과 제일싼방의 중간을 평균치로잡고 +-3~5만원 보고 정합니다 

 (싸고 좋은방은 없다) 

1.부동산계약/주인 직접계약 
방을 보러가면 가장먼저 많이 마주하는 글귀입니다. 

부동산계약 -> 집주인이 부동산중계인을 끼고 중계인이 대신 소개 및 계약 을 책임져줍니다 ( 중계수수료가 발생할수있음 제주변기준 0~10만원) 
0은 집주인한테만 받는경우 입니다. 

주인계약 -> 주인이 주로 근처살경우 있는 계약입니다. 수수료가 없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부동산계약시 확인할것 
  중계인자격증유무(없으면 신고하시면 됩니다.걸리면 가만안둡니다) 
  계약시 건물관련 서류 다주는지(안주면 거르시면 됩니다) 
  보통 원룸계약시  중계인정보1+계약서1+토지(건물)관련서류2~3장 해서 
    4~5장받는게 정상입니다. 안주는경우는 그부분에대해 걸리는게 있어서 
안주는겁니다. 제경우 두번째집이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버리더군요 ^^ 

++부동산은 여러군데 가보시고 만약 같은건물이 서로다른 부동산에 분포해잇는경우에는 고민을 해보셔야합니다.(잘 안나가는 집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 계약은 가능하면 짧은게좋습니다 가능하면 6개월 평균 1년 잡습니다. 


2.방 
이제 방을 보러갑니다. 
성향별) 잠이많다.늦잠이잦은타입 : 도보 15분이내 도주 5분이내거리. 
낮은층수 
      
              예민하다.소음에민감하다.취침시간이 늦다(꼭대기층):내 피지컬이 허용가능 수치에서 최대한 번화가(학교.학원.상가)에서 먼곳 .꼭대기층 
++주변 쏘카&주차장잇으면 피해주세요 새벽소음유발 비오는날은 고막어택가능 
              애주가.홈파티메이커 : 가장가깝고 가장낮은층 (+사람없는 건물이면 더좋습니다)    /반지하 가시는분은 없죠? 

0)성향별) 
    짐이많다 파티메이커 패셔니스트  ) 넓은방 . 
    옷방이있는방(팁: 술취한 친구 감금가능 휴지만 넣어줘도잘잠) 

    집돌이 집순이 침대와 물아일체의경지) 작은방 최소한의이동경로 
      
    화장실에 들어가면 최소30분 ) 비데잇는집 겨울 엉따가능 
    
    요리킹조리킹 마스터쉐프원룸  제2의 백종원.이연복쉐프님 ) 주방분리형  
      및 인덕션이 아닌방 (개별 가스레인지로 대체가능) 
    
    
1)가장먼저 시간대입니다  저는 방볼때 두번갑니다. 
오전일찍 7~8시 /  12~2시    

오전에 가는이유는 물쓰는 시간이 몰릴때 우리집 수압을 보기위해서입니다. 
보통 학생들이 8시쯤 씻습니다. (9시등교 1교시) 그때 사람이몰렷을경우 
정말 수압이 무지막지하게 감소하는 집이 있습니다. 

오후는 채광량을 보기위해서입니다. 적정 채광량은 창문 다닫앗을때 
어느정도 방중간근처까지오면 됩니다. 

++)벽도 두들겨봐서 통통통 나무판자소리나면 피하는게 좋습니다. 
방음이 안좋습니다. 파손위험이 많습니다 성인남성 주먹한방이면 웜홀가능할듯 합니다. 
++) 가구뒷면 곰팡이여부도 확인해주면 좋습니다 

추가로 개별난방인지 확인해주세요 ^-^ 


2)배수 누수 
가장 방먼저보러가면 물을 세면대 가득틉니다 그러면서 변기물을 내리면서 
줄어드는 수압확인해봅니다 (온수도 확인해줍니다) 

가득차면 내려서 배수도확인해줍니다. 

이부분에서 문제가생기면 매우고생합니다.(이부분은 수리해도 재발가능성이 매우높습니다 수리비 개인사비로 40들여서 고쳐봣지만 재발했습니다) 

+이때 변기한번 보세요 은근 앉을때 다리공간안나오는데 많습니다. 

3)냄새 
집에 들어갔을때 하수구냄새가 심하게난다-> 거르세요 
냄새가 심하게나네요 물어봣자  "사람이 안살아서 그래요 살고이러면 다 빠져요" 거짓말입니다 안빠집니다. 

해석)살다보면 빠져요 : 너가적응되서 모르게될거야 

창문도 열어보시고 바깥공기한번 맡아주세요 냄새나는곳이면 피하세요 
그런곳에서 환기하면 오히려 독이됩니다. 

++ 방 상단에 환풍구 같은거있으면 최대한 걸러주세요  냄새요인이됩니다 
++화장실에는 창문잇는게 환기나 모든면에서 좋습니다. 

특히 하수구냄새는  가스냄새입니다 (무언가 부페하고 썩으면서 나오는 가스) 이런냄새 장시간 장기간 노출시 건강에 무지 해로우니 피하세요 

4)인터넷 
    인터넷은 무조건 통신3사 가 좋습니다. 
 만약 지역케이블(ex cmboombastic)  경우 인터넷+티비 결합으로 들어오는경우가 많은데 가격이싸서 원룸에 자주있는데 저녁시간에 사람몰리면 
인터넷속도 개차반납니다. 

특히 게임하시는분이라면 "절대 통신3사해" 

5)기타 옵션 
 옵션으로 주는것들이 있습니다 . tv 냉장고 세탁기 인덕션 등등 
이때 하자있는건 계약시 계약조항으로 넣어달라합니다. 
추가로 초기상태 사진이나 영상찍어두는게 좋습니다. 
집나갈때 수리비청구하는경우도 있습니다. 
ex) 입주일까지 침대수리를 해준다 / 의자를 새것으로 교체해준다 / 방충망 을 교체해준다 
혹은 
 ex)tv현상태(액정상단 스크래치)에 관해서 추후 수리비를 청구하지않는다. 
만약 꺼려한다면 나중에 다른 하자발생시도 수리안해주거나 달달볶아야 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추가로) 하자보수는 어떻게 해주는지 물어봅니다 
대부분 두가지경우입니다 
집주인/중계인 직접수리 -> 시행이되면 빠르게 해주지만 성격차를 탑니다 
주택관리등 관리업체 -> 부를때마다 오긴하지만 대충해주거나 의견전달이 안될때가 많아 2번 3번 올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집주인/중계인 직접수리가 편햇습니다. 
(저녁때도 전화해서 가능) 


------------------------------------------ 
생활용품 및 팁 

[실내건조 빨래냄새 잡기] 
알아두셔야 할것이 빨래냄새는 세균냄새입니다. 
냄새나는 빨래를 널엇다 -> 세균을 널엇다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세제 및 섬유유연제 : 다필요없고 실내건조용 세제및 섬유유연제 쓰시는게 
괜찮습니다 

제습기 or 선풍기 : 빨래 꺼내고 빠르게말려야 냄새가안납니다. 

냄새가 한번난 옷은 개별로 삶아보시고(식초 반~한스푼)세탁해서 맡아보신뒤 
그래도나면 섬유에 균이 정착해버린것으로 그냥 버리시는게 나아요 소생불가일 가능성이 많고 추후에 냄새가 다시날경우도있습니다. 

빨래바구니 하나 구비하셔서 젖은수건은 따로보관하시고 따로빠시는게 좋습니다. [삶음 한번하시고 표준돌리는거 추천] 


[건조대] 
수평형이아닌 수직형을 사셔야 편합니다 인터넷에서 사세요! 
쉽게말하면 일반마트에서 파는 그 건조대말고 위로높은걸 사셔야 편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빨래는 널널하게 널으셔야합니다 빨래가 겹치면 냄새가납니다  옷감이 두꺼운것은 2~3칸씩 쓰시는게맞습니다 

아니면 다이소가서 본드녹여붙이는 고리사셔서  책꽂이 측면상단/옷장 상단/ 창문상단/ 등에 붙이시고 옷걸이에 걸어말리시면됩니다. 

그리고 코인세탁소 애용하세요 시간 금액대비 저렴하고 뽀송뽀송합니다.
저도 주말엔 코인세탁소 자주갑니다 가서 돌려놓고 유튜브 보거나
할일 합니다! 아니면 마트장보러갓다오던가....

[방충] 
여름에 벌레가 집에 자주들어오는데요 특히 방충망밑 물빠짐라인쪽으로 많이들어옵니다. 다이x 가면 이부분막는 스티커잇는데 사서막으시면 좋습니다. 

[음식물] 
음식물 많이 먹지도않아서 얼마안되는데 음식물봉투 아깝습니다. 
바로바로 버리셔도되지만 얼리면 좋습니다 특히여름에 
먹은거랑 붙는게 싫으시면 다이x 가서 플라스틱통 사서 따로담으시면 됩니다. 

[와이파이] 
어차피 원룸은 왠만하면... 100m인터넷 이므로 저렴한 공유기 사서 쓰시면 방안은 커버가능합니다. 

[생활냄새] 
일명 홀애비냄새라고하죠.... 어쩔수없이 생기더라구요 
환기자주하시고 빨래는 2일~3일안에 해주고 
저는 캔들이랑 워머사서 저녁에 돌려주고있습니다. 

[식] 
밥은 솔직히 밥솥사지마시고 햇반이 시간절약 및 다방면에서 편한것 같습니다. 
라면포트 사지마세요 제발..... 이거 은근 모르고 사시는분 많은데 고장도 잘나고 설거지때 엄청불편합니다. 제주변에 이거 반년넘게 쓰는분 못봣습니다. 

라면빨리끓이시고싶으면 커피포트로 물끓이고 그거를 냄비에 넣고 끓이는게 나을겁니다 ^^ 




***하자보수***** 
후에 하자발생햇는데 집주인이 안고쳐준다면 안타깝지만
법의 도움을 받아야합니다 


1)계속 수리요구한것을 전부수집한다.(문자 카톡 전화녹음) 
2)해당내용을 문자로 보낸다 
민법 제623조(임대인의 의무)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존속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 

이거두방이면 왠만한 집주인이 해결 해주고 

협박이라하고 협박죄 고소하겟다하시면 

정당한권리행사는 성사안된다고 따지시면됩니다 
(왠만하면 1.2번이면 해줍니다.) 

그렇다고 상식적으로 안되는것에 들이미시면 안됩니다...
임시로 거처가는곳이지 평상시 부모님이랑 살던 등따신곳을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여기 까지밖에 생각이안나네요 ㅠㅠ 긴글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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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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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    G.skill Royal Silver 3600 CL18 (16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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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 40개

 QwertyMe   신고
자유게시판에 잇으면 글이 사라진다하여 이전하엿습니다 ㅠㅠ
1
 
 휴이   신고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0
 
 QwertyMe   신고
[@휴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백사아크   신고
이런글은 읽어두면 도움이 되는데.. 즐찾해두고 나중에 읽어야 겠군요.
0
 
 QwertyMe   신고
[@백사아크] 나름 몇번 이사를 해봐서 경험치가 쌓엿네요 ㅠㅠ 다른분들은 손해보시지 말라고 적어봣습니다.
0
  부정   신고
추천합니다. 엄청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0
 
 QwertyMe   신고
[@부정] 감사합니다 ^^
1
 
 Garam   신고
섬유유연제는 냄새를 덮어버리지 냄새를 잡아주진 않습니다
구연산이 최고봉이에요..
0
 
 QwertyMe   신고
[@Garam] 저기 위에 두제품은 냄새의 원인인 세균증식을 억제하는 성분이 들어간거라 추천드린겁니다 ^^

구연산은 스포츠웨어에는....안좋은걸로 알고있습니다 ㅠㅠ
0
 
 싼타페DM   신고
감사합니다.
0
 
 QwertyMe   신고
[@싼타페DM] 감사합니다!
0
 
 Lave   신고
깨알같은 꿀팁이 많군요. 추천 드리고 갑니다 :)
0
 
 QwertyMe   신고
[@Lave] 감사합니다 ^^
0
  10월의닉네임   신고
나중에 보도록 하겠습니다. 꿀팁 감사합니다.
0
 
 QwertyMe   신고
[@10월의닉네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심네온   신고
유용하군요
0
 
 QwertyMe   신고
[@심네온] 감사합니다!
0
 
 Kapulainen   신고
다 읽어 봤습니다
저도 자취를 20년 가까이 하지만
알아두면 좋은것들이 정말 많군요 ^^
0
 
 QwertyMe   신고
[@Kapulainen] 감사합니다 ^^!
0
  옷삔   신고
음식물 쓰레기는 얼리는게 굉장히 안좋다구 들었습니다 ㅠㅠ 돈 들더라도 째깍 배출하거나... 아니면 남김없이 호로록 하는수밖에는..
0
 
 QwertyMe   신고
소량은 버리기 애매할때가 많은데 얼리는것도 나쁘지않고 락앤락통 같은거 따로 구비해서 쓰시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물론 안남기거나 바로버리는것이 최고지요
개인의 선택이라고 봅니다 ㅠㅠ 제 생활적 요소가 들어간거같네요 ㅎㅎ..
1
  mungcom   신고
저는 반대로 화장실 창문 있는곳은 기피 합니다
더럽게 환기 안되고 곰팡이도 잘 생겨서 청소하기 빡세더군요. 게다가 겨울엔 너무 추워요
그냥 현관 옆 환풍기 잘되어 있는게 모든면에서 편리하더군요
0
 
 카론   신고
내년에 자취하게 되는데 덕분에 좋은 정보 얻고 갑니다.
0
  Shilll   신고
.토지대장, 건물대장은 별개니 소유주와 담보여부 각각 확인하시고, 만약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 시세의 약 60% 선에서 판매가 되니 보증금 돌려받는 우선순위 잘 따져보세요. 지자체에서 보증금 일정금액 보장해주는 곳도 있습니다.
.천연재질의 음식물쓰레기봉투가 있습니다. 음식물쓰레기와 함께 배출이 가능해서 위생적이죠.
.여유 되시면 1.5룸 하시는게 생활만족도는 2배 이상입니다.
.에어컨 청소상태 꼭 보시고, 원룸에서 가장 중요한건 곰팡이입니다. 건물외벽이 얇거나 창문이 작거나 밀폐가 잘 안되는 형태면 겨울에 습기차고 곰팡이가 피는데 한번 피면 그 방은 끝입니다.
0
 
 KiKu   신고
회원님의 인생사가 담긴 글이네요. 잘읽고갑니다!
0
  권사도   신고
잘 읽고갑니다!~
0
  권사도   신고
잘 읽고갑니다!~
0
 
 BONGDOO   신고
오!?
실내건조용 세제와 섬유유연제가 따로 있었군요!
그리고 방충망 아래 구멍이 있다는것도 이번에 알았네요.
나방이랑 모기가 어디서 들어오나 했더니...

0
 
 최나무   신고
선귤 드리고 정독합니다
0
 
 퀘이사이거샤   신고
++주변 쏘카&주차장잇으면 피해주세요 새벽소음유발 비오는날은 고막어택가능
이거 정말 공감합니다 이사가서 3년 살았는데 2년살고 집뒤에 밭이 쏘카로 바뀜---------새벽에 정말 경적 울리는 소리 사람들 떠드는소리와 거기서 담배피는거 까지 그리고 새벽에 정비하러 오는 사람이 또 개념이 없어서 라디오 크게 틀어놓고 작업함 ㅋㅋ 시끄러워서 이사나왔네요
여름에 완전 시끄럽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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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윤   신고
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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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ppe   신고
좋은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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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주단지   신고
이런 꿀팁에 이마를 탁! 아래를 탁! 치고

위아래로 울면서 스크랩해갑니다.....

정말 꿀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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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wertyMe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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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내용
맨투맨 같은 보풀이 잘일어나는 옷은 뒤집어서 빨아주세요.... 세탁마찰로 생기는 보풀을 안쪽부분에 생기게되서 상대적으로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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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윙그   신고
타커뮤 돌다가 퀘존나와서 깜짝놀랐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가 스크랩한건진 몰라도 반응 오지게 폭팔적입니다 ㄷㄷ
https://theqoo.net/index.php?mid=square&filter_mode=normal&page=8&document_srl=123317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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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케   신고
공인중개사인데 정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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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KEI   신고
방구해야했는데 고맙스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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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wertyMe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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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부분들이 있으신거같아서 적어드립니다.
Q1. 5년간 10번이사면 계약마다 6개월씩 마다 이사한것이냐?
A.아닙니다. 보통 1년 계약을 합니다. 그러나 제글에서도 알 수 있겟지만
경매에 넘어가는경우 , 집에 누수가 생긴경우 , 등등 하자발생으로 짧게는 1~2개월 등 계약기간을 못채우고
이사한 경우가 있어서 10번입니다.

Q1-2 그럼 실질적 이사 12번은 뭐냐?
A. 그건 같은건물에서 제가 원하는 위치로 방이나왔을때 옮겨서 이사하라기도 애매하고 ..... 같은건물에서 이사라 보시면
될것같습니다.(1번은 누수로인해 강제이사 , 1번은 3층 A방에서 B방으로 옮겨서 그렇습니다 ㅎㅎ...)

Q2. 그럼 이사할때마다 이사는 어떻게하냐?
A2. 음...원룸이라서 짐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 보통은 택배로 붙일수 있는것은 택배로 붙이고(안깨지는 옷이나 책 등등 방문 택배 신청하시면 편해요) 크고 무거운것은 부모님 차나 차있는 지인을 이용합니다(지인찬스시 밥값 생각하셔야...큼.)

Q3.매번 똥통같은 집 구한거냐?
A3. 예....고의는 아니엇는데 어쩌다보니 매번 구하는 집마다 하자가 있엇습니다.그냥 집나와서 사는게 좋아서 마냥 싱글벙글하면서 집 구했습니다. 특히 사회초년생 이제막 자취시작한 사람 마음이 그런것 같습니다 ㅠㅠ 혼자 나와 산다는 설레임 그리고 자취로망등등.... 그래서 글을 쓴 이유도 있습니다. (현재는 좋은집구햇습니다 아마 이전집이 그냥커피라면 이집은 Top....)

추가로 궁금한거 있으면 댓글달아주세요! 성심껏 답변하겟습니다 ㅠㅠ 한분한분 댓글 못달아드려서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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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천의 가치투자

저장 2019. 8. 26. 22:57
 
[에셋플러스 투자자문(주) 姜芳天 전무]



 1년 10개월 만에 1억을 주식에 투자해 1백56억을 벌어들인 사람이 있다. 믿기 어려운 수익률을 기록한 에셋플러스 투자자문(주) 姜芳天 전무는 그 비결을 가치투자라고 말한다. 펀드매니저 6년 경력의 강씨는 주식을 살 때 자신이 세운 기준에 맞추어 수없이 생각한 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수개월간 꼼꼼히 지켜보다가 최적기에 매입한다. 1백56배의 수익을 올려 투자자문회사를 차린 마이다스의 손 姜芳天 씨는 자신의 회사를 키워 3년 후 2천5백억원의 수익을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姜芳千식 주식투자 성공법 알아본다.



 1억으로 53억, 1억으로 1백40억 벌었다는 기사가 나면서부터 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그동안 얼마나 더 벌었는지 그것부터 궁금해한다. 또다시 내게 재산이 얼마나 불어났느냐고 묻는다면 1백56억원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일부 주식을 처분해 지난 7월14일에 문을 연 에셋플러스 투자자문주식회사에 16억을 투자하고 1백40억 정도의 주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재산이 그렇게 많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묻는 사람도 많다. 정작 나는 돈이 얼마나 더 불어났는지 크게 관심이 없으며 엄청난 돈 때문에 기분이 들떠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나는 가치투자를 통해 장기간 보유하기 때문에 돈이 쌓이는 일에 민감한 편이 아니다. 시세차익을 노리고 주식을 사고 파는 사람과는 아무래도 느끼는 감정이 다를 것이다.

 다만 지난 7월 14일 내가 오랫동안 염원해왔던 투자자문주식회사를 차린 것 때문에 요즘 기분이 한껏 鼓舞(고무)되어 있고, 회사에 들어설 때면 주식 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것이 새삼 실감나곤 한다.

 현재 나의 직함은 전무이사이다. 에셋플러스 투자자문회사 주식의 53%를 갖고 있지만 나 자신이 리더십이나 조직관리 보다는 자산운용과 유가증권 분석업무에 더 어울린다는 판단아래 전무이사를 자청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내가 1억원을 투자한 시기가 1997년 12월이었으니 1년 10개월만에 1백56배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비결은 단 하나, 가치투자에 있다. 끊임없이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가장 가치있는 곳에 투자한 것이 많은 수익을 낸 비결이다. 내가 그렇게 말해도 사람들은 무슨 책을 참고하느냐, 어떤 신문을 보느냐고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경우가 많은데 책이나 신문, 방송보도를 참고는 할지언정 결코 내 판단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가치를 찾는 기준은 상식이다. 세상 일은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저절로 해답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도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를 대비해서 내가 마련한 대답은 충분히 잠을 자라는 것이다. 가치 투자를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려면 정신이 맑아야 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면 피곤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잠을 자는 게 중요하다.

 가치투자, 가치를 찾는 법, 가치를 찾기 위해 상식을 끌어들이는 과정, 이런 것은 설명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내가 주식을 사기까지 어떤 생각을 하는가를 加減(가감)없이 얘기하는 것이 가치투자 방법을 쉽게 알리는 길이 될 것 같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증권회사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가끔 그때 증권회사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곤 한다.

 1987년 6월, 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정보학과를 조기 졸업했다. 성적이 4.5만점에 4.43으로 전체수석이었다. 학교의 추천으로 코리아제록스에 시험을 봤는데 3차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다시 추천받은 회사가 증권회사였다. 1987년 6월 동방증권(현 SK증권)에 취직이 되어 전산실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전산실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2년만에 그만두었다.



 1989년에 다시 취직한 곳이 쌍용증권(현 굿모닝 증권)이다. 경력사원으로 입사하여 신설동 지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불공정 거래같은 편법에는 눈돌리지 않고 전망있는 기업을 찾아 철저히 가치 투자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신규 상장종목만 연구했다. 신규 상장종목은 장이 떨어지면 다른 종목보다 더 떨어지는 위험부담이 있는 반면, 제대로만 하면 엄청난 이익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학 때 남들은 재미없다는 회계학에 유독 관심이 많아 회계학 공부를 많이 했는데, 그것이 기업 재무제표 분석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당시 나는 회계학을 다시 꼼꼼히 공부하면서 주식들을 하나하나 살펴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기업분석 방법은 첫째 기존회사에서 제공하는 재무제표를 샅샅이 해석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재무제표는 불투명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익을 조작하는 粉飾(분식) 가능성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재무제표를 수정해서 보면서 재해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기존 재무제표가 제공하지 못하는 경영자의 자질, 조직의 인재 구성, 브랜드 이미지, 기술력 등을 따져봐야 한다. 이러한 분석능력은 철저히 본인의 능력에 달려있는데 조그만 부지런하면 그런 것도 알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매장을 찾아가 보고 납품업자들을 만나서 얘기해보면 그 회사가 얼마나 좋은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네 번째 진입의 장벽이 있는 지도 살펴봐야 한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한국이동통신(現 SK텔레콤)의 경우 독점사업이었다. 코카콜라 같은 회사는 독특한 음료맛을 따라 가기가 힘들다. 다른 회사가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진입하는데 장벽이 있으므로 이런 회사는 당연히 가치가 높다. 이런 것이 바로 계량화할 수 없는 기업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따져보는 것이 기업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巨視的(거시적)으로, 또 微視的(미시적)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따져봐야 하는데 거시적인 요인으로 환율, 금리, 인건비가 있고 미시적인 요인으로는 회사, 제품가격, 원재료 가격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예상되는 기대수익률이 얼마나 될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주식회사는 미래의 생명체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미래예측이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주식은 인간들의 삶에서 해답을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삶을 예측하면 주식투자의 해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어떤 기업이 좋아질까. 당연히 효용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좋아진다. 1989년도에 나는 쌍용투자증권 신설동 지점 경력사원이었는데 당시 휴대폰은 큰 회사의 사장쯤 되어야 가질 수 있는 물건이었다. 비싸서 살 수 없을 뿐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물건이었다. 효용이 있다는 얘기이다. 한국이동통신(現 SK 텔레콤)의 기업내용을 분석해본 결과 투자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섰다. 상장되자마자 6만주를 매입했는데 당시 주가는 2만 1천원이었다. 당시 한국이동통신의 매출실적은 그리 높지 않아서인지 다른 직원들에게 추천했을 때 다들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이동통신의 주식을 파는 시기는 내가 휴대폰을 살 때쯤으로 잡았다. 나 정도되는 사람이 살 정도면 누구나 다 쓴다는 생각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 1995년도에 한국이동통신 주가는 76만원으로 올랐다. 그때를 매도시기로 잡았다. 그 후에도 한국이동통신의 주가는 계속 올라 최근 1백76만원을 기록했지만 適時(적시)에 팔았다고 생각한다. 1만원짜리 주식이 3만원으로 오르기는 쉬워도 75만원 짜리가 3배 오르기는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93년 7월 태영주를 사들일 때만 해도 태영의 기업내용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子會社(자회사)인 서울방송이 적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주식시장에서는 자회사 개념이 없었다. 어떤 기업의 자회사까지 일일이 분석해서 투자하기란 벅찬 일이다. 하지만 투자의 요소를 철저히 따지는 것은 투자자의 몫이다. 자회사도 결국 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신문에서 정부 주도하에 자회사의 경영실적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연결회계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것이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되었다. 자회사까지 투명한 기업분석을 공개하는 연결회계 제도가 도입되면 태영이 주목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1993년에 태영의 자회사인 서울방송을 철저히 분석한 결과 조만간 흑자전환이 가능할거라는 판단이 섰다. 바로 이듬해 서울방송은 흑자로 돌아섰고 모회사인 태영 주가는 2만원에서 7만6천원으로 올랐다. 27만주를 매입해 총 2백억원의 수익을 얻은 것이다. 나는 쌍용증권에 다닐 때 4년동안 수익률이 업계 최고라는 명목으로 쌍용그룹 회장상을 받아 온가족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주식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사고 파는 시기를 잘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시기를 선택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동부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후 삼성전자와 포철, 현대자동차 등 주로 우량주를 공략했다. 7만원에 매입한 삼성전자 주가는 14만원까지 올라갔다. 어떻게 주가가 오를 것을 아는가? 대답은 역시 똑같다. 모든 해답은 주변에서 나온다. 신문기사를 볼 때 단순하게 기사 그 자체로만 봐서는 안 된다. 기사 내용을 소화하고 그 내용이 어떤 현상을 야기할 것인가를 추론해야 한다. 또 광고 하나를 보더라도 「혹시 주식시장과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하는 것을 따져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정보를 찾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정보를 재해석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 더욱더 중요하다. 재해석 능력을 기르려면 상식에 비추어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광고를 보고 수익을 낸 예를 들어보자. 1995년 1월 동부증권 펀드매니저 시절 공익광고협의회에서 제공하는 공익광고를 보고 나는 무릎을 쳤다. 당시 경찰청과 도로교통안전협회에서 「음주운전을 예방하자」는 공익광고를 했는데, 그 광고를 통해 음주운전이 줄 것이고 음주운전이 줄어들면 보험회사의 지출이 줄어 수익이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고 가 나간 뒤 신문에는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는 차가 늘고 있으며, 손해보험사의 손해율도 하락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다각도로 조사를 해보니 기사 내용이 사실이었다.

 1995년 1월부터 4월까지 제일화재 19만주를 2만원에 사서 8월에 3만6천원에 팔았다. 쌍용화재는 13만주를 1만2천원에 사서 2만8천원, 신동아화재 7만주를 1만8천에 사서 3만1천에 팔았다. 1995년에 3개 회사의 주식을 사서 평균 두 배 이상의 수익을 낸 것이다.

세 군데 보험주를 팔아 삼성화재주 4만주를 21만원에 매입했다. 1995년 12월에 매도할 때 삼성화재주는 43만원이었다.

 또한 보험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1995년 8월, 47만원인 한국이동통신주 3만주를 샀다. 95년 10월부터 이동통신이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방식인 CDMA(코드분할다중방식)로 변환된다는 보도가 나왔던 것이다. 디지털은 기존의 아날로그보다 10-20배의 가입자를 수용할 수 있어 당연히 주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보험주로 벌어들인 수익을 갖고 매입한 또 하나의 종목이 바로 삼천리 주식이다. 삼천리 주식은 생활주변에서 가치를 찾아서 수익을 낸 경우이다. 그 즈음 나는 도시가스가 설치되지 않은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도시가스를 설치하려면 가입자가 설치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몇십 만원 정도 되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돈이 어디로 가는가 조사해봤더니 도시가스 회사로 고스란히 귀속되었다. 재무제표를 살펴봐도 수익으로 잡혀있지 않았고 손익계산서에도 이 돈이 나와있지 않았다. 대신 대차대조표의 자본잉여금으로 직접 計上(계상)되어 손익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기업가치가 증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주주의 이익이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삼천리는 도시가스와 함께 연탄도 취급했는데 연탄 사업자는 국가에서 국고보조금을 주게 되어 있다.   그 돈도 주주의 몫으로 귀속되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3만6천원에 17만주를 샀다. 두 종류의 주식을 사놓고 동부증권을 그만두었는데 한국이동통신은 잘 알다시피 1백75만원까지 올라갔고 삼천리는 8만원까지 올랐다. 회사에서 어느 시점에 매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이득을 보았을 것이다.

 보험주와 한국이동통신주, 삼천리주의 경우 아주 간단한 생각에서 출발해 큰 수익을 남긴 경우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지나치지 말고 가치를 찾고 재해석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 그게 바로 주식투자의 성공 비결이다.

 나는 증권회사에 다닐 때 회사의 자산운용을 담당했는데 일반 투자자들에게 투자 자문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꿈을 안고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함께 일하던 동료 셋과 뜻을 같이했으나 투자자문회사를 차리려면 10억원의 돈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다.

 우리 넷은 투자자문회사 대신 이강파이낸셜서비스라는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기업컨설팅과 금융컨설팅을 담당하는 회사였다.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주식에 투자한 것은 딱 한번이다. 1995년 11월 대성자원 주를 2천주를 2만3백원에 샀는데 1996년 5월에 12만7천원까지 올랐을 때 팔았다. 대성자원 주식은 이후 19만원까지 올랐는데, 나는 원래 8만원대에 팔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큰 아쉬움은 없었다. 그때 얻은 수익으로 아파트 잔금을 치를 수 있었다. 그후로는 기업컨설팅을 하면서 외부에서 맡기는 돈을 투자하느라 시간이 없어 내 개인 투자는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진 돈이 없었다.

왜 이름도 생소한 대성자원을 선택했는가? 대성자원은 시가 총액이 54억원에 불과하지만 대단한 우량회사였다. 대성자원은 현금을 80억원 보유하고 있었고 대구도시가스와 대성산소라는 우량기업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었다. 게다가 석회석광산을 갖고 있었고 탄광지역에 5백만평의 땅을 갖고 있었다. 또 영업이익이 개선되고 있는 추세였다.

 나는 대성자원의 이러한 우량성을 보고 투자했는데 엉뚱한 이유에서 주가가 상승했다. 탄광지역 카지노 사업자 선정 문제가 나오자 그쪽에 땅을 많이 갖고 있는 대성자원의 주가가 급등한 것이다. 조금 빨리 주가가 오르긴 했지만 그러한 건수가 없었어도 대성자원은 주가가 충분히 오를 수 있는 회사였다. 대성자원은 그후 대성산업에 흡수 합병되었다.



 내게 실패한 경험은 없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펀드매니저 시절부터 나를 잘 아는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투자자문을 구하곤 했는데 내가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대성자원주식을 매입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했다. 당시 주변사람들이 매입한 주식이 20만주에 이르는데 8만원에서 판 사람도 있지만 18만원까지 기다렸다가 매도한 사람들도 있어 모두들 큰 이득을 봤다.

 나는 그들에게 대성자원 주식을 매도한 금액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사라고 권했다. 장기적으로 삼성전자 주를 보유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1995년 9월에 17만6천원까지 올라갔던 삼성전자 주가가 서서히 하락하고 있었다. 다시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14만원에 샀다가 2만원 손해보고 12만원에 팔기도 했고, 11만원에 샀다가 7만원에 팔아 손해본 적도 있다. 2만원 짜리 대성자원 주식이 올라 삼성전자 주식을 산 것이므로 결과적으로는 손해가 아니지만 어쨌든 삼성전자 주식으로 인해 손해를 본 셈이다.

 1996년도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나라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정보통신 관련 주식의 전망을 밝게 보고 삼성전자 주식을 샀던 것인데 반도체가 호경기에서 불황기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1996년 6월 7만6천원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모두 매도했다.

 왜 반도체가 인기인지 묻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 앞으로는 디지털의 시대이다. 0과 1의 조합을 통해 모든 게 계산되고 처리되고 디스플레이 되는 디지털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가 명령을 내리면 실질적인 계산은 반도체가 계산하고 기억한다. 정보화와 통신혁명은 디지털과 맞물려 있으며 결국 반도체가 혁명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1996년도에 반도체 가격이 폭락한 것은 需給(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된 문제일 뿐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또 한 번의 실패는 1997년 3월에 매입한 한진주에서 발생했다. 2년 전부터 택배산업을 눈여겨보다가 전망이 좋다는 판단이 서서 1997년 3월에서 5월까지 1만4천원하는 한진주를 주변사람들에게 소개했다. 7월에 2만 3천원까지 올라갔으나 나는 더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팔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1997년 11월에 3천8백원까지 떨어졌다. 결국 1997년 12월, 9천원대에서 팔도록 권유했다. 한진은 당시 택배사업 과도한 투자를 한 상태인데 갑자기 외환위기가 오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대성자원주를 팔아 집을 마련하긴 했지만 나는 원래 집을 사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1996년에 주택을 구입한 것은 아내가 집은 꼭 있어야 한다고 우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산 것이다. 내가 집을 사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나라 집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과 전세로 사나 집을 갖고 있으나 효용가치는 똑같은데 비싼 돈을 주고 집을 사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억 짜리 집을 月貰(월세)로 환산하면 월 4백만원짜리 집이라는 결론이다. 하루에 13만3천원을 깔고 자는 셈이다. 당시 특급호텔의 하룻밤 숙박료가 9만원인데 많은 사람들이 매일 특급호텔보다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가격은 효용에 비례해야 하는데 똑같은 효용을 누리면서 전세보다 자기 집에 사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혹시 집값이 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투기심리와 함께 내 집은 있어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이 집값의 거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나는 당시 아파트 가격과 전세가격은 동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동산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크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직도 집값에 거품이 들어있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 반드시 거품이 걷힐 것으로 보인다.

 나는 석사도 아니고 더구나 외국유학을 한 적도 없다. 대단한 실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며, 생각을 많이 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1992년부터 나는 우리나라에 백만장자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환율이 8백50원 정도였는데 주변에 8억5천만원을 가진 부자가 너무 많았다. 3억 짜리 아파트 한 채, 예금 5천만원-1억, 월소득 2백만원(이자율로 따져 수익가치 2억)이면 백만장자 대열에 끼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백만장자라면 엄청난 부자이다. 미국 국민소득의 4분의 1도 안되면서 백만장자가 미국보다 더 많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재산을 달러로 환산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특히 부동산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예금과 수입도 환율 변동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결국 「부동산 비중이 너무 크고 달러 환율이 너무 낮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백만장자가 너무 많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富(부)는 부동산이 주를 이루지만 미국의 경우 소득이 주를 이룬다. 한마디로 거품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당시 나는 언젠가 한번쯤 교정작업이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백만장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소유욕은 정보통신 혁명 앞에서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이나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생활방식이 바뀌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많은 물건을 구입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교통이 편리하거나 백화점 가까이에 있는 집에서 살 필요가 없어진다. 인터넷 교육이 활성화되면 이미 무너지고 있는 8학군은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공기 좋고 한적한 교외에 살면서 삶의 질을 추구할 것이다. 도시 위주의 집값이 全국토적으로 평준화되어야 될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러한 판단에서 집을 사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외환위기가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집값이 너무 비싸고 상대적으로 달러가 너무 싸다는 생각에서 집값이 떨어지고 달러가 강해지면서 환율이 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7년 4월, 내가 가지고 있던 예금 가운데 3천4백만원을 달러로 예금했다. 당시 환율은 8백45원 정도였다. 원화를 달러로 예금하면 찾을 때 달러로 내주지는 않지만 달러로 환산해서 원화를 내준다.

나는 항상 가격 변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격 변수가 불균형을 조정해주고 자원을 재분배 해주기 때문이다. 임금이 높아지면 설비를 들여와서 고용을 줄이고, 임금이 낮아지면 직원채용을 늘리게 된다. 가격은 시장의 불균형을 배분해주는 중요한 변수이다.

 달러는 중요한 가격변수이다. 달러의 변화로 말미암아 원화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외환위기를 통해서 똑똑히 목격했다. 외환위기가 닥쳐오면서 달러가 오르고 원화가치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1997년 12월 초 1달러에 8백원대이던 원화가 1천3백40원으로 올랐다. 갖고 있던 예금을 찾으니 6천만원 가량이 되었다. 거기다가 내가 보유하고 있던 원화 예금 4천만원을 합쳐 내 수중에 1억원이 생겼다.



 나는 예금을 찾으면서 주식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가가 마구 떨어지는 시점이었지만 환율이 오르니 수출관련주가 좋을 것이고 금리가 높아지면 현금을 많이 보유한 기업의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1997년 12월 중순 내가 선택한 회사는 영원무역과 대덕산업이었다. 당시 영원무역주는 1만4천원, 대덕산업 주는 4만2천원이었다. 내가 갖고 있던 1억원과 신용거래 6천만 원을 합쳐 두 회사 주식 1억 6천만원 어치를 샀다.

 두 회사의 주식을 산 이유를 살펴보자. 영원무역은 스포츠웨어 전문업체로 전세계에 수출을 하고 있었는데 재무구조와 이익구조가 튼튼했다. 또 경영자의 성향이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쓸데없는데 투자를 하지 않는 회사였다. 대덕산업은 인쇄회로기판 생산업체로 초우량기업이었는데 현금을 4백60억원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경영자는 그야말로 장인정신을 갖고 오로지 한 길만 파서 그 분야의 일인자가 된 사람이었다. IMF 초기 주식가격이 마구 떨어지기 시작할 때 나는 과감하게 두 회사의 주식을 샀다.

 1998년 2월 초 영원무역을 3만3천2백원에, 대덕산업은 7만2천원에 팔았다. 당시 대부분의 주식 가격이 하락했지만 두 회사의 주가는 상승했다. 나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증권사에 6천만원을 갚고 2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내 수중에 3억원의 돈이 생긴 것이다.

 1998년 2월초, 우리나라는 IMF가 제시한 여러 가지 처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 처방을 보면서 나는 우리 경제가 위기를 통해 무엇인가를 얻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苦盡甘來(고진감래), IMF가 제시한 처방들은 한국경제에 커다란 이득을 남길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펀드매니저 시절 나는 우리나라 소액 주주들이 부담하는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주주인데 5-30%를 갖고 있는 대주주의 불합리한 투자 때문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수많은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봤던 것이다. IMF가 이러한 위험을 제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호지급보증을 없애는 것은 매우 잘된 일이었다. 만도기계는 우량기업이지만 대주주가 한라그룹에 지급보증을 서는 바람에 엉뚱하게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봤다. 상호지급보증만 없었다면 당연히 만도기계 소액주주들은 큰 이익을 얻었을 것이다. 삼성전자 소액주주들은 대주주의 개인적 취미 때문에 큰 피해를 봤다. 이건희 회장의 고집으로 삼성자동차를 설립하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IMF 이전의 주식시장에는 투자문화가 아니라 투기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IMF 이전에는 대주주인 회장은 이사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법적 소송에 대한 책임이 없었다. 대신 권한은 무한대였다. 그야말로 잘못된 지배구조였다. IMF 이후 대주주도 반드시 이사직함을 달아야 한다는 법이 생겼다. 그렇게 되면 대주주가 배당이익에 대해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장들의 대출비리가 드러나자 재산을 압류 당하고 처벌을 받는 것도 달라진 관행이었다. 기업들이 거액의 돈을 빌려 무분별하게 투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 社外(사외)이사제도 도입을 보면서 대주주들이 마음대로 전횡을 휘두를 수 없어, 소액주주들이 위험에서 해방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투명하고 부도덕한 지배구조가 서서히 개선되고 있었다. 1998년 1월과 2월 나는 우리나라에 新(신)주권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본격적으로 주식투자를 결심했다.



 또 하나 주식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부추긴 것은 바로 기업이익이 증가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아무리 新주권문화가 왔다고 해도 내가 투자하는 기업의 이익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IMF 관리체제 하에서 기업 이익이 증가할 거라고 판단한 이유는 우리나라 기업이익은 단기적으로 원 달러 환율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때문이다. 환율이 오르면 환차손 때문에 실적이 악화된다. 반대로 환율이 내리면 환차익 때문에 영업이 안되어도 명목 기업이익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1997년에 환율이 올라 기업 이익이 줄어들었지만 1998년에 상장기업은 환차익 때문에 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당시 환율이 1천6백원 선이었는데 환율이 떨어지면 분명히 환차익이 나서 기업이익은 증가할 거라는 판단이 섰다. 또 하나 금리가 엄청나게 높았지만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금리가 높으면 증권시장 돈이 은행으로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기업에 이익이 나서 자금 수요가 없으면 당연히 금리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1998년 초 금리가 25%였는데 결코 길게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금리하락은 2000년 기업이익에 플러스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 당시 나의 판단이었다



우리나라는 1998년 2월 주주보호시스템이 확립되었으며 2000년까지 기업이익이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내년 상반기까지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이미 4-5년 전부터 금리가 1%에 불과해도 주가가 오르지 않았다. 그것은 종신고용에다 정경유착 등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 일본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데 시스템은 우리나라가 더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미국은 왜 주가가 오르지 못하는가. 미국 경제는 함부로 예측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다만 미국은 7년간 장기 호황을 누려 인플레 위험이 크다. 기업의 비용이 증가하면서 이익 증가율이 둔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주가는 주주보호 시스템 확립과 기업 이익 증가의 두 축에 의해 결정된다.

 新주권문화가 왔고 시스템이 변했다. 소액주주도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게 됐다. 또 1998년은 환차익 때문에, 1999년도는 인건비 감소로 인해 기업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게다가 구조조정과 금리하락의 영향이 2000년까지 이익 증가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투자의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증권은 끝났다며 손해를 무릅쓰고 증권시장을 빠져나갈 때 나의 전재산인 3억원을 들고 객장을 찾았다.

 「기업이 최소 3년은 좋아지는데 과연 어떤 주식을 살 것인가? 기업이 좋아지면 주식거래량이 늘어날 것이고 거래대금이 많아지면 거래대금 변동에서 생기는 증권회사 수익이 늘어날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에서 증권주를 사기로 결심하고 2개월 동안 계속 시장을 살펴보았다. 일단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때부터 자신이 사려는 주식의 주가동향을 일단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생각끼리 싸움을 시키는 과정이다. 머리 속에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주식을 집어넣어 가동해 보는 것이다.

 주식을 사기 전에 경기와 기업분석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는 질문도 자주 받는다. 나는 거시변수에서 시작해서 기업 세부적인 내용을 분석하는 톱다운(top-down) 방식과 반대로 기업 세부적인 내용을 분석해서 거시 변수까지 살펴보는 버텀 업(buttom-up) 방식을 모두 사용한다. 또 개별변수가 기업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감안한다. 예컨데 환율과 반도체 값, 철강제 가격 등은 생산 요소의 비용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로 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이들 변수는 수시로 파악해야 한다.

나의 투자전략은 내재가치가 우량한 종목에 대한 적절한 매수시점 잡아 장기보유 하는 형태이다. 즉 앞으로 오를 것이라고 판단되는 주식을 사서 그 주식이 오를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는 것이다. 나 자신이 그 회사의 주주라는 관점에서 투자결정을 한다. 주식의 시세차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장래에 얼마나 많은 배당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가치를 두고 판단한다. 철저하게 원칙에 충실하라는 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저평가된 종목을 찾아서 1년이고 3년이고 보유하는 것이 바로 정석투자이다.



 1998년 3월 증권주를 사기로 결심하고 2개월 동안 지켜볼 때였다. 나는 보통주보다는 우선주에 관심이 많았다. 보통주는 의결권이 있고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는 대신 보통주보다 1%포인트의 배당을 더 받는다. 내게 왜 주식에 투자하느냐고 묻는다면 첫째 배당금을 받기 위해서이고 둘째 기업 내에 존재하는 주주몫에 대한 청구권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우선주가 싼 이유는 그 동안 배당을 잘 안 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익이 나면 대주주가 돈을 빼돌리거나 다른데 투자했던 것이다. 그러나 IMF를 거치면서 관행이 바뀌면 대주주도 배당을 요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보통주의 3분의 1 가격인 우선주가 훨씬 효용이 높아 질 것이다.

 배당관행이 정착되면 앞으로 우선주가 오를 것이라는 생각에서 1998년 3월에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대신증권 우선주 42만주를 6백50원에, 동양증권 우선주 8만주를 9백30원, 부국증권 우선주 2만주를 1천2백원에 사들였다. 주가는 바닥에서도 조금씩 움직이는데 3월부터 6월까지 가격이 낮아지면 계속 사들였다.

 내가 갖고 있는 3억원과 신용 거래 1억8천까지 총 4억8천만원 어치를 샀다. 중간에 주식이 올랐을 때 일부 처분하여 우선 1억8천만원을 갚았다. 1998년 12월 대신증권은 6백50원에서 1만2천3백원, 동양증권은 9백30원에서 9천6백원, 부국증권은 1천2백원에서 1만3백원으로 올랐다. 1998년 11월과 12월, 두 달에 걸쳐 주식을 팔았는데 매도 금액은 평균단가이다. 대신증권의 경우 1만6천1백원에 팔기도 하고 때로는 9천원에 팔기도 했다.

 1998년 12월이 주식을 팔아 정산을 해보니 모두 67억원이 되었다. 원금 3억원을 뺀다면 64억원의 이익이 난 것이다.

 내가 처음 살 때 3년 정도 지나 증권주가 1만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올랐다. 환율과 금리가 빨리 낮아졌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그만큼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증권우선주는 회사가 주주가 납입한 자본에서 연간 1백%의 수익이 났을 경우 연간 12%내의 배당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2-3년 후 배당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는데 그 시기가 앞당겨져 올 3월에 배당을 했다. 액면가 5천원의 12%는 6백원이므로 6백원에 주식을 산 사람은 매입가격만큼의 배당을 받은 셈이다.

 증권주를 판 다음 장기적으로 보유할 주식을 매입하기로 했다. 1998년 11월부터 증권주를 팔면서 다른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는데 11월과 12월에 걸쳐 매입한 주식은 삼성전자 우선주 1만주를 3만3천원에, 한진해운 보통주 10만주를 9천원에, 삼성증권 보통주 3만주를 1만7천원에, 한진 보통주 32만주를 1만3천2백원에 매입했다. 삼성전자 외에 다른 주식의 경우 보통주를 매입한 이유는 우선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왜 한진주를 32만3천주(지분율 5.12%), 42억7천만원어치나 매수했는지 궁금해한다. 나는 1995년부터 이 종목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한 번 권했다가 손해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손해보는 일은 없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주식을 직접 사기 훨씬 전에 이미 정해놓고 오랫동안 살펴보는 기간을 가진다. 이 회사는 앞으로 4-5년간 장기적인 성장성이 기대되는 회사였다. 구조조정을 통해 총비용의 38%에 달하는 인건비를 줄이고 있는 데다 당시 금리와 유가 하락 등으로 영업외 비용도 감소해 1년 내 주당순이익(EPS)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분석되었기 때문이다. 또 국내 기업들이 구조조정차원 에서 물류 부분을 앞다투어 아웃소싱(outsourcing, 외주가공) 하고 있어 한진이 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또 하나의 요인은 홈쇼핑의 호황이었다. 당시 케이블 텔레비전은 적자를 면치 못했는데 홈쇼핑만 잘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LG홈쇼핑과 39쇼핑을 통해 방안에서 물건을 구입한 사람이 있다면 분명 누군가가 배달을 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두 회사의 물건을 어디서 배달하는지 알아보았다. LG는 한진에서, 39쇼핑은 대한통운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인터넷 상거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물류회사가 잘되기 마련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것이 주식투자의 성공을 가져온다. 한진주를 산 것에 대해 혹시 경영권에 관심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가격이 떨어질 때마다 사다보니 그렇게 산 것 뿐이다.

 지난 1월27일 한진주 5.12%를 매입한 뒤 한진 사장님께 편지를 썼다. 내가 주식을 매입한 사실과 함께 불공정 거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가치투자를 했다는 것을 알리고 몇 가지 당부를 했다. 소액주주를 소중하게 여기고 계열사나 관계사와 투명한 거래를 해줄 것을 부탁했다. 내가 제의한 것은 딱 한가지. 주주총회에서 전문경영인에게 스톡옵션 제도를 도입해 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한진해운은 수출물량이 늘어나면 물동량이 증가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해운회사의 이익이 증가할 거라고 봤기 때문에 매입했다. 전세계 경제지도를 봤을 때 완제품을 만드는 나라는 아시아이고 원재료를 공급하는 회사는 남미 러시아 중동지역이다. 자본은 미국과 유럽이 공급한다.

 아시아에서 문제가 생기면 러시아가 힘들어 지고 결국 미국까지 힘들게 된다. 그러나 먼저 고통받은 나라는 먼저 일어나기 마련이다. 아시아가 먼저 고통받았기 때문에 먼저 일어날 것이고 한국은 바닥을 쳤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되면 물동량이 증가해 해운회사 쪽의 이익이 증가할 거라고 내다봤다. 또 앞에서 얘기한대로 전자상거래가 활발해지는 新유통문화에서는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에 아웃소싱 개념이 전혀 없었다. 해낼 능력이 없는 사업까지 하겠다고 나서서 문어발식 경영을 했는데 앞으로는 선택과 집중 전략에 의해 아웃소싱 문화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아웃소싱의 대표적 산업이 바로 물류업이다. 한진은 육상, 한진해운은 해상 운송을 담당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를 산 이유는 반도체 때문이다. 21세기는 정보통신 산업이 발달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기술을 갖고있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이다. 정보통신산업이 발달하면 반도체 수요는 당연히 증가하고 가격도 강세를 띠게 될 것이다.

 삼성증권은 증권사 가운데 최우량기업이라는 이유 때문에 선택했다. 기업수익이 증가하면 덤핑문제가 발생한다. 기업이익이 증가하면 증권회사의 수익도 늘어나고 몰려드는 사람도 많아진다. 증권회사도 자연히 많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쟁이 심해져 몇 개 회사는 퇴출되고 나머지 회사가 망한 기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생맥주집이 엄청난 인기를 끌자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00호프라는 이름의 집이 생겨났다. 호프집이 많이 생기면 당연히 덤핑으로 물건을 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다보면 가장 제품의 질이 좋고 서비스가 좋은 곳, 아주 돈이 많은 곳만 살아남게 된다.

 증권업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가장 경쟁력이 있고 나중에도 살아남을 회사로 삼성증권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매입한 것이다. IMF로 인해 전 산업이 고통을 겪었다. 고통을 겪는 가운데 살아남는 기업은 산업 내에서 비교우위를 가지는 것이다. 또 삼성증권의 경우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매입했다. 대신증권이 6백원에서 1만2천원까지 올랐을 때 삼성증권은 5천원에서 1만7천원으로 올랐을 뿐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오를 여지가 많다는 얘기가 된다.



 삼성증권과 한진해운 주식은 팔아서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는데 사용했고 지금 한진과 삼성전자 우선주를 갖고 있다. 경영권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목표가격에 이르면 두 회사의 주식도 매각할 것이다.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한 이상 나는 더 이상 주식투자를 할 수도 없다.

 대신 나의 회사를 키울 것이다. 3년 뒤 내 회사를 증권거래소를 통해 상장시킬 예정이다. 현재 에셋플러스에는 펀드매니저가 10명을 포함해 직원이 28명이다. 7월 14일날 개업했는데 9월3일 현재 보험회사, 은행, 상호신용금고 등 기관투자가들이 우리 회사를 믿고 6백50억원을 맡겼다. 45일 사이에 3백50억원의 이익을 내서 1천억원으로 자산이 늘어났다. 이 기간 동안 종합주가지수가 9백50선에서 9백10선으로 떨어졌지만 우리는 가치투자를 통해 자산을 늘인 것이다. 모회사에서 며칠 내로 3백억원을 맡기겠다고 예약한 상태이다.

 나는 10명의 펀드매니저를 잘 키워서 금융산업 선진화에 앞장서는 일군들로 만들고 싶다. 신입사원 교육은 특별한 게 없다. 1대1 토론을 벌이면서 가치에 관해 얘기하는 게 전부이다.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모양을 보는가, 신문기사와 사회현상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 등등 사고의 유연성을 길러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대화를 하는 것이 교육의 전부이다.

 우리 회사는 처음 돈을 맡을 때 1%를 관리보수로 받고 나머지는 성과보수를 받는다. 성과보수는 해약할 때나, 계약 1년 후 정산을 하여 종합주가지수를 초과한 초과수익의 25%를 받게 된다. 종합주가지지수가 정기예금금리보다 상승률이 낮을 경우 정기예금 금리 초과분의 25%를 성과수수료로 받게 된다.

 이제 내 돈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의 돈을 늘리는 일에서 보람을 찾는다. 불특정 다수를 위해 내 생각을 펼치고 좋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 좋은 회사에 투자해서 그 회사를 발전시키는 일에서 나는 기쁨을 얻고 싶다.

 상장되면 우리회사의 가치는 5천억원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한다. 내가 53%의 주식을 갖고 있으니 그때가 되면 나의 재산은 2천5백억원이 넘을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되겠느냐고 묻겠지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가치투자를 통해 우리 회사는 반드시 좋은 회사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내가 애초에 1억원을 가지고 있던 시점이 1997년 12월이다. 채 2년이 안된 시점에서 나는 실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염원하던 회사를 차렸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내가 주식 종목을 선택하는 것이 어려운 이론을 동원해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나는 어디가지나 상식 선에서 판단해서 주식을 샀을 뿐이다. 나는 1989년부터 10년간 주식시장을 떠난 적이 없고 누구보다도 생각을 많이 했다. 이렇게 수익을 올린 가장 큰 요인은 물론 생각이다. 또 하나 인내하는 것이다. 주식이 오를 때 그 가치를 측정하면서 최고의 가치라고 여길 때가지 기다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행여 떨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중간에 매도해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가치를 안다면 그런 우를 범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주식이 오를까요? 앞으로 어떤 주식에 투자하면 좋겠습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문제이다. 지금까지가 산업혁명의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지식과 정보혁명의 시대이다. 과거에는 철강, 석유, 화학 등이 주류산업이었다. 이러한 산업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땅과 공장이 필요했기 때문에 부동산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혁명에서는 사람과 지식이 필요하다. 트랜드가 바뀌고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가치와 효용을 만들어야만 가격이 높게 형성된다. 이제 부동산의 매력인 투자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기업 가운데서는 디자인과 서비스를 어떻게 더 가미하는가 하는 것을 주시해봐야 한다. 즉 연구를 거듭하여 지식을 접목시키는 기업이 우량기업이 될 것으로 본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만족스런 효용가치를 느끼는 제품들이 많다. 식기와 도자기를 예로 든다면 그 제품의 質(질)은 이미 충분히 좋아졌다. 만족스런 효용을 느끼는 제품은 이제 디자인이 관건이다. 결국 지식과 정보를 반영하여 생산하는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보통신 분야의 산업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속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그것과 관련된 기업의 주가가 오를 것으로 본다. 디지털과 관련된 장비를 만드는 회사,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디지털 서비스 통로를 제공하는 회사가 성장할 것이다. 그런 기본적인 생각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생각을 거듭하면 분명히 떠오르는 주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식은 투기 아닌가요. 과연 주식투자를 해야하나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많다. 예전의 주식은 분명 투기였다. 그러나 투기의 세계에서 투자의 세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 흐름에 참여하라고 권하고 싶다. 주식은 환금성이 좋고 수익성이 좋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분야이다. 부동산과 달리 언제든지 사고 팔 수가 있고 매도할 때 0.3%의 거래세를 제외한 다른 세금은 없으며 잘만 하면 정기예금 금리의 4-5배나 되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시장 참여는 하되 전문가 집단에게 의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뮤추얼펀드나 주식형 수익증권 등의 간접투자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전에는 기업들이 직접 투자를 했지만 이제는 투자자문회사에 맡긴다. 거대한 기업도 전문분야가 아니면 아웃소싱을 하고 있다. 기관투자가들도 전문가 집단에게 의뢰하는데 개인투자자들이 직접투자를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주식이 본업이 아니라면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간접투자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도 직장인들이 직접투자를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잘못된 일이다. 주식투자는 여가시간을 이용해 한가하게 할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 일에 전념해야할 직장인이 직접투자를 하려면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소비되는데 직장마다 주식투자 열풍이 분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선다.

 기자들은 나를 취재할 때면 대개 주식투자 10계명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그것은 개인투자가들에게 투자를 부추기는 일이다. 예를 들어 모든 국민이 주식투자에 매달린다면 그것은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많은 분들 중에 꼭 직접 투자를 하면서 경제감각을 익히고 싶은 분이 있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유자금의 10% 이내, 금액으로는 1천만원 이하의 자기 자본을 투자하되 시세차익을 노리지 말고 가치투자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빌려서까지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자신이 투자를 하더라도 우수한 영업사원의 조언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돈을 맡길 곳을 정하려면 최소한 50명에게 상담을 한 후 정해야 한다.

 어쨌거나 자신이 사고 파는 시점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가격을 찾지 말고 가치를 찾는 타이밍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반도체 값이 바닥이라면 삼성전자주를 살 시점이다. 파는 시점을 개인투자가들이 파악하기 어려운데 주가가 오르는 속도가 현저히 둔화되는 한계상승률에 이르렀다고 생각될 때가 바로 매도시점이다.

 또 처음에 살 때 내가 목표한 가격대가 됐더라도 기업 이익이 더 좋아질 수 있다. 그럴 때는 더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흐름을 볼 수 있어야만 이러한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 회사는 2억 이상의 자금만 투자자문을 받는 회사이다. 그러다보니 적은 돈을 맡기고 싶다는 분들의 의뢰도 많았다. 또 적은 돈을 운용하여 기업과 연결하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다. 그래서 기존 투신사와 펀드모집에 대한 논의를 해왔었다. 「강방천 펀드」를 운용하기로 거의 모든 게 성사단계에 왔을 때 투자자문회사를 운용하면서 펀드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내가 펀드를 만들어 소액 투자자의 돈을 받아들이려면 자산운용사를 설립해야 하는데 70억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현재 에셋플러스 투자자문의 증자와 직원채용을 통해 자산운용회사 설립 요건을 맞출 계획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강방천 펀드」를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펀드를 운용하려면 운용전문인력 5명을 고용해야 하는데 운용전문인력 제도라는 것이 문제가 많다. 1998년 하반기 뮤추얼펀드를 도입하면서 기존 투신사 펀드매니저들에게만 운용전문인력 자격증을 주었다. 증권사 펀드매니저들도 시험에 합격해야만 운용전문인력이 될 수 있다. 증권협회 2개월간 연수를 받고 시험을 쳐야 한다는데, 과연 연수를 시키는 사람들이 증권을 얼마나 아는가 하는 것도 문제이다. 나 역시 이 시험을 보기 위해 연수를 받아야 한다. 미국의 경우 조지 소로스 같은 사람도 자격증 없이 일하고 있다. 펀드를 운용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요건은 도덕적 철학을 가진 사람과 천부적인 소질, 창의적인 아이디어, 가치를 찾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경제사범, 불공정 거래자, 내부자 거래 등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만 빼고 누구나 자산운용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연수를 받고 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된다고 못박고 있다.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를 뽑는 것은 그 회사 사장의 몫이다. 그리고 고객들이 가장 큰 감시자이다. 문호는 개방하되 감독은 철저히 하여 소비자인 투자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어야 한다. 현재의 운용전문인력 제도는 소비자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돈의 여유가 있는 家計(가계)에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돈을 맡기면 기업들은 그 돈을 빌려서 사업을 한다. 가계자금이 예전에 은행 예금형태에서 주식과 채권으로 바뀌고 있으며 기업들도 부채를 정리하고 자기 자본으로 옮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이럴 때 중간에서 관리하는 기관들도 그에 걸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연초에 주식형 수익증권이 5조원이었는데 이제 44조원을 넘어섰다. 이 자금을 잘 운용해야 개인과 기업, 나아가서 국가가 큰 이익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수익증권을 운영하는 펀드매니저가 현재 50명에 불과하다. 아무리 훌륭한 매니저라고 해도 약 1조원을 관리하는 것은 무리다. 펀드매니저들이 일을 주체할 수가 없어 연구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게 되다보니 초우량주에만 투자를 하게 되고, 결국 초우량주의 가격이 가치 이상으로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금을 필요로 하는 우수 중·소형주를 돌아볼 시간이 없는 것이다.

 매니저들이 책임회피적 투자를 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행여 손해볼까봐 안전한 투자만 해 수익을 종합주가지수보다 높여야 한다는 수익률게임에 치중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지나친 규제로 펀드매니저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정부에서 유가증권 업무에 대해 좀더 신축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금융시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수의 고객이 가지고 있는 한정된 돈을 잘 운용해서 좋은 기업, 성장 가능한 기업에 투자해서 기업의 성장을 돕는 것이다. 고객과 기업 사이에서 매개가 되는 중간 지점인 자산운용기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한정된 고객의 돈을 전망이 없는 기업에 투자하면 고객이 손해보고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한정된 자원을 좋은 기업에 투자하여 좋은 효과가 나타나면 고객도 좋고 국가적으로도 큰 이익이다.

주식투자는 꼭 필요한 일이다. 기업이 증자를 했을 때 들어오는 자본은 고스란히 기업의 돈이다. 우량 기업이 필요한 시기에 안정적인 돈을 확보해 사업을 하면 그만큼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주식은 그 돈으로 수익을 내고 배당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주식을 산 투자가도 좋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개인은 투자를 해서 수익을 얻고 기업은 사업자금을 얻어 사업을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주식시장이 활성화되어야 마땅하다. 그 중간자적 역할을 잘 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구술정리 李根美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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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요약
- 고소할때는 경찰서보다는 검찰청에 가는게 훨씬 확실하다.
- 합의 굳이안해줘도 피해금액 받아낼 수 있다. 단, 이 과정에는 돈이 들어가므로 금액이 10만원 이하라면 추천하지 않는다.

본인 법과대학 휴학중이고 아버지 전직 검사 현직 변호사셔서 어느정도 알고있는한에서 풀어봄.

메이플은 사기가 정말 많음. 요새는 자기 신분 다까놓고도 사기치는 간큰놈들도 많음. 그런애들은 '고소'까지는 별로 안무서워함. 왜냐면 지인생 이미 조져졌으니 거 잡혀도 벌금얼마내거나 빵에몇달~1년 들어갔다나오면 된다고 생각하는애들임.

그런데, 이런애들이 무서워하는건 자기한데 돈을 요구하는거고 돈을 주지못할시에 자기가 더 큰 불이익을 받게되는건 희한하게 무서워함. 이제 이런애들 조지는방법 한번 깨작거려보겠음.

1. 고소를 할땐 경찰서말고 검찰청에 가라.

형사소송법에는 196조를 보면 - 검사는 범죄혐의가 있다고 사료될 경우 수사를 해야한다. - 라고 명시해놓고있음. 검사의 수사는 법적으로 강제하고있다는 말임. 그에 반해서 경찰은 수사를 해야한다는 '의무'가 없음. 이 말인즉슨 내가 메이플에서 사기당하고 경찰에 가져가도 얘네가 별거아니라고 판단해서 "내사종결"을 시켜버릴 수 있고 이 경우에는 검사에게 올라가지도 않기때문에 처벌자체가 없는경우가 있거나 "즉결심판"이라고 해서 처벌이 매우 약해지는 경우가 있다는것임.

본인 아는동생 사례를 말한다면, 그 동생 130만원 사기먹고 계정까지 날려버린 사건이있었음. 이 동생 처음에 경찰에신고했다가 전혀 진전이없어서 본인한테 접촉함. 내가 경찰에 왜 신고했냐고 엄청뭐라했는데 이미 늦은상황. 사기꾼 결국 사건 검찰송치되지도 못하고 즉결심판으로 벌금 15만원내고 끝났음. 돈? 돌려받지못했지. 민사소송으로 돌려받아야함.

참고로 경찰에 한번 신고들어가면 추후에 검찰에다가 신고한다해도 아무소용없음. 한번 수사한 사건은 재수사하지 않는다는 법이있음. (일사부재리의 원칙)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난 내주변사람들에게 고소를할거면 절대 경찰에하지말고 검찰에다가 하라고함. 아직 수사권조정이 된 상황이 아니기때문에 검찰은 수사권에있어서 매우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있음. 참고로 검찰에다가 고소못한다고 생각하는애들 있는데, 그냥 검찰민원실에 고소장 들고가거나 민원실직원보고 고소하러왔다하면 고소장 양식줌. 거기서 고소하는걸 '검찰청 직고소'라고 함. 누구든지 가능함.

2. 고소해서 처벌을받으면 지급명령을 걸어라.

검찰청 고소를하게되면 확실한증거가 충분할시에는 보통 3개월이내에 사기꾼잡힘. 잡혀서 처벌까지 받았으면 그 다음차례는 지급명령임.

지급명령은 참고로 상대방의 신상을 알고있어야함.

어? 근데 우리는 신상을 모를수도있는데? 상관없음. 법원에 지급명령건다고 하고 지급명령신청서 써서 내면 내가 상대신상 몰라서 쓰지 못한부분에 대해서 보충해오라고 명령이나옴. 그럼 그 법원의 공문을 들고 통신사가면 걔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동사무소에가면 걔 주소를 알려줌. 그렇게 신상을 알아내고 지급명령신청서에 쓰면 되는것임.

보통 지급명령은 상대방이 재판기록이 있고 그 재판기록에서 범죄사실이 있을시에는 왠만해서는 다 수용됨. 상대방이 반박할거리가 없기때문임.

3. 지급명령이 떨어지면 6개월간 존버

어짜피 줄놈은 주고 안줄놈은 안줌 이건그냥 딱 6개월만 존버타면됨. 왜냐면 이 이후에는 팝콘뜯기가 시작되기때문임.

4. 6개월을 존버탔으면 '채무불이행자명부등재신청'

이게 무엇이냐면 법원에다가 "쟤 내돈 안갚았으니 신용불량자 만들어주세요." 하는거임. 보통의 사기꾼은 이 상황까지오면 전부 GG침. 왜냐면 이때부터는 자기 통장이 막히기시작하거든. 통장을 사용할수가없다는거임. 내가 채무불이행자명부에서 없애버리기전까지는.

그리고나서 이때부턴 나한테 압류권한이 생김. 그럼 가장먼저 해야하는건 법원에서 상대방의 재산조회신청을함. 재산조회를 한 뒤 일단 통장부터 먼저 압류를 걸어버림. 예금이 채무보다 많을경우 통장만 압류걸면되고, 예금이 적을경우 통장이랑 기타 상대방 재산들 중 뭐든 압류를 걸어버릴수있음. 자동차가있다? 자동차까지 압류거는게 가능함.

사실 여기까지 오는경우는 매우드뭄. 보통은 지급명령에서 GG치고 좀 독한놈은 채무불이행자명부등재에서 GG쳐버림. 만약 그이상해도 버티는놈은 곧 자12321살할려는 애임.

만약 여기까지 버티는 의지가대단한놈이 있으면 채무에 대한 소멸시효는 10년임. 10년에 한번씩 법원찾아가서 채무불이행자명부등재를 해주면됨.

이상 사기꾼 인생 조져버리는 방법에 대하여 서술해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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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1 09:48 | 연구원

[아이투자]출처: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 500만원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7년 만에 40억원 이상으로 만든 사람이 있다. 대전에 사는 L씨(52-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86년1월 2000만원으로 처음 주식투자를 했다. 아무 주식이나 사도 올랐던 당시 호황 덕분으로 2년도 안돼 5억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회오리로 5억원을 모두 날리는 고통을 겪은 뒤 1998년6월부터 화려하게 재기했다. L씨가 겪은 주식투자의 부침과 그의 재테크 인생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자>

 

 

1. 현금의 힘, "50% 싸게 살 수 있다"

350만원짜리 장롱을 절반도 안되는 150만원(정가의 43%)에 살 수 있을까? 420만원짜리 소파를 200만원에 사고, 12만5000원짜리 구두를 6만원 안팎에 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부자들은 쉽게 해 낸다. 주식투자로 500만원으로 7년 만에 40억원 이상으로 만든 대전의 L씨는 가구나 가전제품, 옷 등을 살 때 ‘절반 가격’이 아니면 절대로 사지 않는다.

그의 ‘알뜰 구매’의 비결은 바로 ‘현찰 매수’다. 그는 “가구나 가전제품을 살 때는 월말의 저녁 때 현금을 들고 간다. 물건을 고른 뒤 흥정할 때 현찰로 계산한다고 말하고 무조건 50% 할인해달라고 한다.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고 펄쩍 뛰지만 ‘싫으면 관두라’라면서 문을 열고 나오면 ‘왜 그러시냐’면서 100% 절반 값에 팔겠다고 한다”고 밝혔다. 현찰이 50% 할인이라는 괴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서도 신용카드 하나 달랑 들고 100만원이 넘는 고가 가구나 가전제품을 사러 간다. 돈이 있어도 은행 예금에 넣은 뒤 굳이 신용카드를 쓰려고 한다. 은행 정기예금 이자가 세금 빼면 연2.8%에 불과하고, 신용카드를 써서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를 받는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카드를 쓰면 씀씀이가 헤퍼지는 것을 감안하면 미련한 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백화점에 가서 ‘비싼’ 옷이나 구두를 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가 ‘과소비 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정가의 50% 아래 가격으로 물건을 사기 때문에 정작 큰 돈은 들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백화점 고가 상품을 싸게 사는 비법은 바로 10~20% 할인해 파는 상품권과 백화점의 정기세일을 활용해 단골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두를 산다고 해보자. 그는 애용하는 상품권 할인점에 가서(때로는 전화로 가져오라고 해서) 현찰로 상품권(백화점 상품권이나 구두 상품권)을 100만원어치 산다. 이때 할인율은 20% 안팎. 이 상품권으로 백화점 세일 기간에 구두를 사면 적게는 10%, 많게는 20% 정도 할인을 받는다. 100만원어치 사면 사례로 10만정도의 상품권을 사례로 되돌려 준다. 결과적으로 40~50% 할인 가격으로 구두를 살 수 있는 셈이다.

그는 “12만5000원짜리 구두를 6만원 안팎의 절반 가격으로 여러 켤레 사서 친척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사고 싶은 것을 싼값에 살 수 있어 즐겁고,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어 줄 수 있어 기쁘다. 백화점에 단골이 돼서 다음에 물건을 살 때 사은품을 많이 받을 수도 있다. 세심하게 쇼핑을 하면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비법을 알려주어도 활용하지 않는다”며 “이런 방법이 공개돼 다른 사람들이 모두 활용하면 내가 이용할 기회가 줄어들지 모르지만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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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전 L씨의 투자일지②..주식과의 인연맺기

‘이제는 주식투자할 때다.’

1986년 1월, 신문들은 이런 제목의 기사를 통해 개인투자자들에게 주식투자를 권유했다. 1985년 9월, 플라자협정 이후 ‘3저 호황’으로 주가가 천정부지로 상승하기 시작할 때였다. 이때부터 불붙기 시작한 증시는 종합주가지수가 1989년4월1일 1007.77까지 올라 사상 처음으로 ‘주가 4자리수 시대’가 열릴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당시 증권회사 객장에서는 ‘시세판을 향해 볼펜을 던져 맞는 종목은 무조건 사도 돈번다’는 우스개가 유행어로 될 정도였다.

L씨가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도 1986년 1월이었다. “당시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주식투자할 때’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7000만원 정도의 여유돈이 있어서 어떻게 운용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주식투자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7000만원이면 엄청나게 큰 돈이다. 그때 대전의 주공아파트 17평짜리를 사는데 650만~700만원이면 충분했던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큰 돈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그가 어떻게 7000만원을 모았는지에 대해선 나중에 설명하겠다. 미리 밝혀 둘 것은 상속을 한푼도 받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노력해서 번 돈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주식투자를 하기로 마음먹고 모 증권회사 지점을 찾아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증권회사 객장을 찾은 그는 발을 들여놓은 순간 깜짝 놀랐다. 직원들이 큰 소리로 “어서 오십시오”라고 외쳤는데, 난생처음으로 그런 ‘환대’를 받아봤기 때문이었다.

창구 여직원에게 주식투자를 시작해보려고 한다고 했더니 차장님 한분에게 안내해 주었다. “주식투자는 처음입니까?” “예” “얼마 정도 투자하실 계획이십니까?” “한 5000만원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 그 차장은 깜짝 놀라서 똥그래진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그 차장이 “젊은 아줌마가 배포도 크게 웬 5000만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한 동안 말을 잊었던 그 차장은 “처음에는 시험 삼아 500만원으로 시작하시지요?”라고 권했다.

하지만 재테크라고 하면 일가견이 있다고 자신하는 그였다. “째쩨하게 무슨 500만원. 요즘 증시도 된다고 떠드는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하는 투자라서 그 차장의 말도 일리가 있겠다고 느껴 2000만원으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2000만원을 넣고 계좌를 만든 뒤 LG증권과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을 절반씩 샀다. 당시는 금융 무역 건설 등 이른바 ‘트로이카 주식’이 증시를 이끌던 시대. 시대 흐름을 타야 한다는 생각으로 증권과 은행주를 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따블’이 났다. 그렇게 붙기 시작한 돈은 1년6개월 정도 지나자 5억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2000만원을 1년6개월만에 5억원으로 불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다음에 그 비결을 소개한다.

 

 

3. 대전 L씨의 주식투자 성공 10대 전략<상>

대전 L씨의 투자일지③, "사고 싶은 충동을 참고 아는 주식에만 투자한다"

'주가가 오르는 비싼 주식만 산다' ‘(사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아는 주식에만 투자한다’ ‘대박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남들과 거꾸로 청개구리처럼 투자한다' ….

2000만원으로 1년반면에 5억원을 만든 대전 L씨의 투자전략은 색다를 게 별로 없다. 누구나 다 아는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진리’일 뿐이다. 하지만 L씨가 다른 개미(개인 소액투자자)와 다른 점은 이런 평범한 진리를 머리로만 알고 입으로만 되뇌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군자(君子)는 행위로서 말하고 소인(小人)은 세치 혀로써 말한다”는 옛 성현의 가르침처럼, 실천의 중요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참여정부 출범이후 ‘말만 있고 행동은 없다’는 ‘NATO(No Action Talk Only)'보다는 작더라도 실제로 행동에 나서는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구호를 뜻하는 ‘쉬벌레스(Shibboleth)’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전략1=사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L씨는 주식 매매를 자주 하지 않는다. 한달에 한번 하면 잦은 것이고, 1년에 6번 정도 하는 때도 있다. 올해도 지난 1월 포스코를 사고 팔고, 3월에 삼성전자를 매매한 것으로 25%의 수익을 냈다.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의결하던 3월12일 오전(탄핵의결 전) 삼성전자를 53만원에 샀다.

탄핵 의결로 주가가 급락했지만 팔지 하고 있다가 사상 처음으로 60만원을 넘어선 4월7일 59만원에 팔았다. 그는 “60만원에 팔겠다고 생각하고 샀는데 너무 빠르게 올라 어깨에서 판다는 생각으로 매도했다. 그 뒤 장중에 62만2000원까지 오르기는 했으나 단말기를 꺼놓고 쳐다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주식을 한 번 판 뒤에는 한달 정도 시세판을 보지 말고 새로운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있어야 주식투자에서 성공한다”고 말했다. 우리 증시격언의 ‘현금을 3일 이상 갖고 있으면 성공한다’는 말보다 훨씬 더 인내하는 것이다.

전략2=아는 주식에만 투자한다.
L씨는 삼성전자를 판 뒤 쉬고 있는 동안, 아는 사람으로부터 ‘(주)LG를 한번 사보라’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곧 잊어버렸다. 나중에 (주)LG주가가 많이 올랐지만 그는 그다지 속상해 하지 않았다. “모르는 주식에 투자하면 돈벌 확률과 잃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는 주식에 투자하면 승률이 훨씬 높다. 돈 벌 수 있는 쉽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길이 있는데 왜 굳이 어렵고 불확실한 길을 가겠느냐?”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도 LG를 샀으면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었을텐데라며 다시 묻자 “지금까지 LG에 투자한 적이 한번도 없다. 앞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해본 뒤 투자 리스트에 올리는 것을 검토해보겠다”면서 사겠다는 대답은 피했다.

전략3=오르는 비싼 주식에만 투자한다.
아는 주식에만 투자하는 L씨의 전략은 주가가 오르는 비싼 주식에만 투자하는 전략과 그대로 연결된다. 그가 사고파는 주식은 삼성전자 SK텔레콤 삼성전기 삼성SDI 롯데칠성 롯데삼강 현대자동차 LG전자 국민은행 신한지주 포스코 등이다.

그는 “SK텔레콤이 액면분할을 하기 직전에 SK텔레콤을 사라고 친구와 주위 사람들에게 권고했으나 ‘그렇게 비싼 주식을 어떻게 사느냐’는 대답만 들었다”며 “비싼 주식을 살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있어야 주식투자에서 이긴다”고 강조했다.

전략4=대박이 없다는 것을 안다.
L씨는 “그동안 주식투자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은 외환위기와 ‘9-11테러’ 같은 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그렇게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위기가 없을 것이며 있어서도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식을 살 때 목표수익률을 10~20%로 잡고 있다”며 “이익이 10%면 은행 예금의 3배 이상 되는데도 개인투자자들은 그다지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낮게’ 수익률을 잡은 그는 지난해 60% 이상의 높은 수익률을 냈다. 올해도 이미 25%를 올렸다. L씨는 “앞으로 주가가 많이 빠지면 투자할 것이지만 현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이미 많은 수익을 낸 만큼 무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유를 부렸다.

전략5=남들과 반대로 청개구리처럼 한다.
그는 객장에 손님이 2~3명밖에 없어 썰렁할 때 주식을 산다. 반면 객장에 손님이 넘쳐나 아줌마 등 뒤에서 애가 울어 제끼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식 사달라고 할 때는 주식을 내다 판다. ‘9-11테러’ 때도 다른 투자자들이 공포에 질려 주식을 헐값에 내다팔 때 조용히 주식을 샀다.

L씨는 “신문에서 주식이 대폭락해 투자자들이 자살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면 주식을 사고, 주가가 폭등했다는 기사가 주요기사로 다루어지면 주식을 판다”며 “주식투자는 철저히 대중과 반대로 하는 청개구리 심뽀를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4. 대전 L씨의 주식투자 성공 10대전략<하>

대전 L씨의 투자일지④ "여고졸업생이지만 주식투자에 꿀릴 것 하나도 없다"

대전의 L씨는 고등학교(××여고)만 나왔다. 이는 주식투자에 성공하는데 ‘학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는 “아무리 아는 게 많아도 소용없다. 질러야 한다고 판단될 때 과감하게 지를 수 있는 결단력과 실천력이 있어야 주식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면 돈벌 수 있다는 것을 되풀이해서 말해줘도 소귀에 경 읽기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실천하지도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전략6=절대로 남의 말은 듣지도, 맡기지도 않는다.
L씨는 2000만원으로 5억원을 만 든 뒤 5억원을(주위에 아는 사람 7000만원과 함께 5억7000만원, 이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별도로 소개할 예정임) 모 지점장에게 맡겼다가 ‘깡통’을 찬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5억7000만원이 고작 30만원으로 쪼그라드는 게 꿈이 아닌 생시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겪었다.

그는 “그 일이 있은 뒤부터 절대로 남의 말은 듣지도, 맡기지도 않는 철칙(鐵則)을 세워두었다”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철칙은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그가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주요 증권회사 투자전략팀장과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고, 증권방송을 보면서 증시흐름을 놓치지 않고 체크한다. 귀와 마음을 활짝 열어 정보를 듬뿍 받아들이되,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나름대로 소화시켜 의사결정에 참고를 하는 것이다.

전략7=외국인을 따라 한다. L씨의 10가지 전략 중 가장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다. 그는 “외국인이 사기 시작할 때 따라 매수했다가 외국인이 매도하기 시작하면 파는 ‘외국인 따라하기’가 외국인 영향력이 큰 요즘 가장 지키기 쉬우면서도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외국인을 따라 하다 보니 그가 주로 매매하는 종목은 삼성전자 포스코 LG전자 국민은행 등 업종 대표주이다. 이런 주식들에 투자하다 보니 물려도 크게 물리지 않으며,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보너스도 얻는다.

그는 “외국인이 사고파는 종목은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수출 대표주와 내수시장에서도 외국 기업과 경쟁해 높은 이익을 내는 업종 대표주”라며 “외국인이 어떻게 주식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을 보여주고 있는데 개인들은 그 정답을 애써 외면하고 다른 곳에서 틀린 답을 찾으려다 손해를 본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략8=좋은 패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다.
20세기 최고의 투자자로 평가받고 있는 워렌 버핏은 ‘주식투자를 3진 아웃 없는 야구’로 설명한다. 야구에서는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볼을 3번 때리지 않고 그냥 서 있으면 3진 아웃당한다. 하지만 주식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공(높은 수익률을 내 줄 것으로 확신하는 종목)이 들어올 때까지 아무리 기다려도 3진 아웃되지 않는다.

L씨도 “시간은 내 편”이라고 강조한다. 좋은 주식이 나타날 때까지 주식을 사라는 유혹을 끝끝내 뿌리치고, 기다린다. 그렇게 해서 산 주식의 주가가 오르면 목표가격에 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증시 상황이 갑자기 나빠져 주가가 떨어지면 손절매를 하고 다시 기다린다. ‘강태공 전략’을 취하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고파는 데이트레이딩은 전혀 하지 않는다.

전략9=신용-선물-옵션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L씨는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안다. 선물-옵션을 한번도 투자해보지 않은 그는 “선물-옵션은 어려워 똑똑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다. 여고밖에 나오지 않고 머리도 그다지 좋지도 않은데 남 좋은 일 시켜줄 것도 아닌데 무엇하러 선물-옵션에 손을 대느냐”고 잘라 말한다.

신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신용이란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것인데, 빚에는 만기가 있다. 돈을 갚아야 하는 날이 되면 주식을 팔기 싫어도 억지로 팔아야 하기 때문에 이익을 충분히 누릴 수 없다. 또 만약 손해가 나면 주가하락에 따른 손실과 지급이자로 손실이 커진다”며 “돈을 빌려서는 절대로 투자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전략10=이익은 챙긴다.
L씨는 지난해 60% 수익을 올린데 이어 올해도 벌써 25%의 높은 수익률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주식투자 원금은 7억~10억원 정도. 절대로 10억원을 넘기지 않는다. 그는 “이익이 나면 원금만 남기고 인출해 국채를 사두었다가 돈이 많이 모이면 아파트를 산다”고 밝혔다.

이는 주식에서 번 돈 5억원을 모두 맡겼다가 한꺼번에 날린 과거의 쓰라린 경험에 따른 것. ‘숲 속에 있는 새 10마리보다 손안에 있는 1마리 새가 더 소중하다’는 격언을 그는 철저히 지킴으로써 외환위기와 같은 뜻하지 않은 폭락장이 오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종자돈은 안전하게 보존시키고 있는 것이다.

 

 

5. "돈 있어야 사람대접", 처녀 때부터 종잣돈 모아

L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20살 때부터 이재에 눈을 떴다. 첫 월급을 받은 때부터 전체의 3분의 2는 무조건 저금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월급이 1만5000원이었습니다. 이중 5000원으로 생활하고 1만원은 저금했습니다. 친구를 만나면 돈을 써야 했기 때문에 가급적 모임을 피했습니다. 연애는 물론 하지 않았구요.”

그는 은행에 예금했다가 10만원이 되면 찾아서 육촌언니에게 맡겼다. “당시 사채(私債) 시장에서 금리는 월4~5부나 됐습니다. 육촌언니가 서울에서 집 장사를 했는데 항상 돈이 필요했습니다. 처음 10만원을 모으기가 어려웠지 일단 10만원을 월4~5부의 높은 금리로 맡기자 그 뒤부터 50만원 100만원 300만원 등으로 급속히 늘었습니다.”

"5년 동안 거지처럼 모아 결혼할 때 내집을 사서 살림 시작"

L씨는 5년 동안 이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충남 소도시에서 집(단독주택)을 사서 결혼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이 많고 친구들과 어울려 가고 싶은 곳도 많은 20살부터 25살의 처녀 시절은 돈 버는 사이에 훌쩍 지나갔다. (그는 자신이 재테크에는 일가견이 있고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신랑은 가난하더라도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사람을 선호했다. 그의 결혼에 얽힌 에피소드 등에 대해서도 다음에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걸어서 출퇴근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집에서 직장까지 거리가 버스 정류장 6개였습니다. 걷기에는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목표한 돈을 모을 때까지 이를 악물었습니다. 어머니와 언니가 그렇게 억척을 떨며 돈 모으는 것을 보고 ‘또순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L씨가 이처럼 돈 모으는데 억척을 떤 것은 “돈이 있어야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집이 비교적 부유했습니다. 머슴이 7~8명이 있을 정도로 논밭이 많았고, 방앗간 4개와 큰 과수원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군(郡)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지요. 할아버지가 그 지방 향교의 전교를 하셨고 아버지 어머니가 효자-효부 상을 받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나이 어린 나에게도 깍듯이 예의를 차릴 정도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특별대우’는 그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친구에게 많은 돈을 빌려줬다가 모두 떼이고 말았습니다. 오빠도 상대를 졸업한 뒤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했고요. 논밭을 팔고 머슴을 내보내고 방앗간과 과수원도 팔아야 하는 등 집안이 급속도로 기울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사람 인심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돈이 있어야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돈이 있어야 사람 대접 받고 좋은 신랑을 만날 수 있다"는 목표 세우고 악착같이 모아

L씨가 이렇게 억척스럽게 돈을 모은 이유는 또 있다.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미인도 아닌데 좋은 데 시집가려면 멋쟁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멋쟁이가 되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 5년 동안 집 한 채 살 정도의 돈을 모은 뒤부터는 본격적으로 멋쟁이가 되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매월 한번씩 서울 명동에 가서 최신 패션으로 옷을 맞춰 입었다. 직장과 거리에서 그는 튀는 패션으로 ‘멋쟁이’로 통할 정도였다. 아무리 5년 동안 돈을 모았다고 해도 지방 소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명동 패션으로 치장하려면 돈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명동 ‘부띠끄’에 가서 옷을 맞춰 입으려면 몇 개월 치 월급이 필요할 정도였다.

여기서도 그의 ‘재테크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동대문 시장의 포목점에 가서 원단을 도매 값으로 끊어 명동 부띠끄에 가서 옷을 맞췄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띠끄에서 직접 옷을 맞추는 것보다 50%이상 싸게 할 수 있었습니다.”

 

 

6. "재테크에도 궁합이 있다"..부동산에는 인연없어

“그 때 땅을 샀으면 지금은 인생이 바뀌었을 겁니다.”

L씨는 1987년 중반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주식투자로 번 5억원 가운데 2억원을 빼내 땅을 사자는 생각을 했다. “당시 대전 변두리 지역의 땅(야산 등) 값은 평당 7000~8000원 정도였습니다. 길게 보면 부동산을 사 두는 게 수익률이 높고 안전한 투자라고 생각해 땅을 사두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재테크에도 궁합이 있는 법이었다. 주식투자를 귀신처럼 잘한 그에게 부동산 투자는 인연이 없었던 것 같다. “땅을 사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펄쩍 뛰었습니다. 부인이 투기꾼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되면 잘 나가고 있는 직장에서도 쫓겨날 것이라는 게 반대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테크는 내가 더 낫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남편 몰래 땅을 사려고 며칠 동안 복덕방을 찾아가 땅을 보러 다녔다. 그런데 궁합이 맞지 않는 일은 어차피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았다.

남편 반대와 복덕방 아저씨 잘못 만나 땅투자 못해 수백억원 벌 기회 날려...

“복덕방 아저씨와 땅을 보러 다니는데 모두 산꼭대기에 있는 땅만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아줌마(당시 30대 중반)가 땅을 산다고 하니까 (깔보고서) 잘 팔리지 않는 땅을 억지로 떠넘겨 바가지 씌우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복덕방 아저씨도 잘 못 만난 것을 보니 땅을 사지 말라는 뜻이구나 하고 생각해 땅 사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지금 그 땅의 가격이 200~300배나 올랐다. “그 때 남편 말을 어기고, 아니꼬운 복덕방 아저씨를 무시하고 땅을 샀더라면 인생이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역시 재테크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결단과 실천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되새기곤 합니다.”

게다가 L씨는 그 땅을 사지 않은 돈과 주식투자에서 번 돈 및 이웃집 새댁의 돈을 합한 5억7000만원을 남편의 친구인 ××증권 ××× 지점장에게 맡겼다가 깡통을 차고 고작 30만원만 건진 뼈저린 아픔을 겪었다(이 사연은 나중에 소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는 그 일에 대해 그다지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아쉽기는 하지만 그게 다 그렇게 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5억7000만원을 날린 뒤 500만원으로 다시 시작해 날린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번 것에 대해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밝혔다.

부동산과는 궁합 안맞는 듯, 주식투자에 전념하며 번 돈으로 어려운 이웃 돕기 앞장

그렇다고 L씨가 부동산과 아주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에 소개했듯이 그는 결혼할 때 집(단독주택)을 ‘혼수품’으로 장만했을 정도로 부동산 투자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35평 아파트를 살 때도 이런 재테크 방법을 적용했다. “당시 시가는 1억3000만원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시세대로 다 주고 사는 것은 재테크 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복덕방에 얘기해 둬 급매물로 나오는 것만 소개해달라고 해서 시가보다 2000만원(15%) 가량 싸게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아파트의 시가는 2억1000만원 정도다.

L씨는 지금 사는 아파트 외에 한 채가 더 있다. 아들이 결혼하면 살림을 내주기 위한 것이다. 또 둘째 아들을 위해서도 아파트를 한 채 더 살 계획이다.

그는 35평보다 더 큰 집을 사는 것에 대해 손사래를 친다. “집이 크면 청소하기가 어렵고 여러 가지 비용이 들어갑니다. 청소를 위해 파출부를 부르는데 돈이 들고, 전기료 수도료 가스료가 더 비쌉니다. 이런 비용은 한번 지불하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왜 어렵게 번 돈을 그렇게 헤프게 씁니까? 그럴 돈이 있으면 주변에 못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훨씬 낫습니다.”(그가 드러나지 않게 남을 돕고 있는 것에 대해선 나중에 “돼지가 되지 말라”는 주제로 소개하겠다)

 

 

7. '용한 지점장'에 맡겨 5.7억원 '깡통' 아픔

‘믿는 도끼에 발 등 찍힌다’는 속담이 있다. 너무 잘 알고 익숙해 진 것에 대해선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얼토당토않은 엉터리 같은 일을 당할 때 쓰는 말이다.

L씨는 이 속담이 뜻하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운명의 시간이 외환위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1997년 4월말, 남편이 출근하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진 한마디가 그를 한동안 회복불능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말았다.

“친구 중에 ××증권 ××지점장이 있는데 주식투자를 아주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군. 이제 주식투자 한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 친구한테 5000만원만 보내서 맡겨보지 그래?”

종합주가지수가 1994년11월 1100선을 넘어선 뒤 2년 넘게 줄곧 하락해 주식투자를 귀신처럼 잘 하던 L씨도 상당히 고전하던 때였다.

L씨는 “맡기기는요, 주식투자는 스스로의 책임과 판단에 따라 스스로 해야지요.”라고 웃으며 가볍게 받아넘겼다. 하지만 주식투자를 해서 5억원 이상 벌고 난 뒤에는 주식투자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몇 년 전부터 당뇨병 증세가 나타나 주식투자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증상이 더 악화될 우려도 있었다.

잘 한다는 증권사 지점장에 5억7000만원 맡겨 5개월만에 30만원만 남는 깡통

‘그래, 이제는 잘 하는 지점장에게 맡기고 건강을 챙기면서 즐겁게 살자’는 생각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L씨는 ‘그렇게 소문이 자자한 지점장에게 이왕 맡길 바에는 쩨쩨하게 5000만원만 맡기지 말고 5억원을 보내볼까’라고 생각하며 옆집의 새댁에게 “이제 주식투자를 직접하지 않고 잘 하는 지점장에게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평소에 자신을 어머니처럼 믿고 따르던 옆집 새댁은 자기 돈도 함께 맡겨 불려 달라며 7000만원을 주었다.

그는 한달쯤 고민하다가 자기 돈 5억원과 옆집 새댁 돈 7000만원을 합해 5억7000만원을 ××지점장에게 보냈다. 1997년 6월초였다. 물론 남편에게는 5000만원만 보냈다고 얘기했고, 그 지점장에게도 남편이 물으면 5000만원만 보내왔다고 대답해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하지만 그해 7월, 태국이 외환위기에 휩싸이고 기아자동차가 쓰러지면서 한국 경제도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종합주가지수도 ‘600선이 쌍바닥에 철판바닥이어서 조만간 반등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과 달리 상승은 약하고 하락은 많은 약세장이 이어졌다.

L씨는 느낌이 좋지 않아 3번에 걸쳐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주식을 모두 팔고 현금화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지점장은 그 때마다 “이제 바닥인데 지금 팔면 엄청난 손해”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며 주식을 팔지 않았다.

그리고선 1997년11월24일, 한국은 마침에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구제자금을 신청하면서 외환위기의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600선에서 등락하던 종합주가는 순식간에 400선 아래로 수직 낙하했다. 그의 계좌는 깡통으로 바뀌어 남은 돈은 고작 30만원이었다.

L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 돈 5억원이야 내 잘못으로 날렸으니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옆집 새댁 얼굴을 떠올리니 앞날이 캄캄했다. 남편이 알면 왜 5000만원만 보내랬더니 5억원이나 보냈고, 옆집 사람까지 끌어들였느냐며 추궁당하고 이혼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옆집 새댁돈도 함께 맡겼다 깡통 차

일단 남편 모르게 수습에 나섰다. 옆집 새댁을 만나 “사정이 이렇게 됐으니 내가 매월 100만원씩 줄테니 자신의 남편이 알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투자신탁회사에는 매월 100만원씩 납입하면 5년 뒤에 8300만원이 되는 적립식 상품이 있었다. 가서 그 통장을 만들어 오면 대신 넣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새댁은 그냥 매월 100만원씩 달라고 했다.

당시 남편 월급은 140만~150만원이었다. 이 가운데 100만원을 새댁에게 주고 나머지로 생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불어 닥친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일요일 오전, 늦은 아침을 마치고 남편이 모처럼 낮잠을 자겠다면서 안방에 들어간 지 10분도 안돼서 초인종이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옆집 새댁과 신랑이 쳐들어온 것이다.

남편은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두 집안을 풍지박살을 내냐”며 벼락같이 화를 냈다. 결혼한지 20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노여움이었다. 찬바람이 휭휭 불었다.

하지만 L씨는 워낙 저지른 죄가 큰 탓으로 아무 말도 못하고 남편의 처분에 맡겼다. 10여일 쯤 끙끙 앓던 남편은 “앞으로 두번 다시 이런 일을 하면 갈라서겠다"며 “앞으로는 잘 살아보자”고 했다.

옆집 새댁에게는 절반을 물어주기로 하고 어렵사리 ‘합의’를 보았다. 평소에 그렇게 가깝게 지냈던 옆집 새댁이 그렇게 난리를 친 것이 너무 서운했지만 세상인심이 그런 것이구나 하며 속으로 삭혔다.

그렇게 상처가 아물어갈 무렵, L씨는 남편에게 “도저히 이대로는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1000만원만 더 해달라”고 부탁했다. “옆집 새댁에게 1000만원이라도 더 주어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절대 남을 믿고 맡기지 말자’는 다짐을 하면서 새로운 출발의 결의를 다졌다.

 

8. '점과 꿈'.."7년간 800배 수익→이제는 쉴 때"

“앞으로 7년 동안 돈이 물밀 듯이 들어올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이혼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 인생이 땅바닥이고 이혼 위기에 처해 있으며 길거리에 나앉을 운세다. 그렇지만 이혼하지 않으면 운세는 술술 풀릴 것이다.”

L씨는 ×××지점장에게 5억7000만원을 맡겼다가 깡통을 차고 ‘이혼위기’에 몰려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점(占)을 보러 갔다. 매일 매일 죄인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지내는데 어느날 친구가 와서 위로로 “근처에 아주 용한 점쟁이가 있는데 한번 보러 가자”고 권유한데 따른 것. ‘이렇게 망가진 판에 웬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나빠지기야 하겠느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따라 나섰다.

그런데…. 은행을 다니다가 역술을 공부해서 역술원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는다던 젊은 ‘점쟁이’는 뜻밖의 말을 했다. “앞으로 7년 동안 돈이 물밀 듯이 들어 온다”고. ‘지금 이혼을 당할지가 코앞에 닥친 일인데 이혼 당하지 않을 방법이나 알려주지 않고…’

힘없이 “왜 이렇게 인생이 꼬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시할아버지가 심술을 부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시할아버지가 왜 나한테 이렇게 심하게 심술을 부리시냐”고 되물었다. “시아버지가 매우 효자였는데도 시할아버지가 며느리(시어머니)를 매우 미워했다.
시누이는 시할아버지 제사를 잘 모셔 아주 잘 사는데 당신은 시할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해서 그렇다. 앞으로 제사를 잘 모시고 부적을 써 줄테니 시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태워라”라는 답이 돌아왔다.

점이 예언한 대박.."이혼 위기 넘기면 7년 동안 돈이 밀물처럼 들어올 것"

L씨는 하지만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 비싼 부적을 어떻게 사느냐며 복채(5000원)만 주고 나왔다. 복채를 얼마 내야 하느냐고 하자 알아서 달라고 해서 그때 가진 돈이 그것밖에 없어서 5000원만 주었다고 한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있는 것을 톡톡 털어 준 복채 덕분이었을까? 며칠을 고민하던 남편이 “이제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고 그냥 살자”고 했다. 새로운 출발이었다. 그리고 외환위기로 주가가 폭락했던 1998년 6월. 종합주가지수가 320까지 폭락했을 때 500만원으로 다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앞에서 소개한 그대로였다. 500만원은 7년이 지난 현재 40억원 이상으로 불어나 있다. 어렵게 사는 이웃들을 돕는데 쓴 돈을 합하면 더 많이 벌었을 것이다. 그 점쟁이의 말이 옳았는지, 아니면 그 때 주가가 원래 많이 올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돈이 밀물처럼 벌렸다.

“하루에 1억원 안팎을 벌 때가 많았고 한 번은 1억3000만원을 벌기까지 했습니다. 밀물이 아니라 해일이라고 할 정도였지요.”

상황이 이처럼 바뀌자 사람의 마음도 변했다. 7000만원을 잃어 난리를 쳤던 옆집 새댁은 가끔 새벽에 전화해서 흐느껴 운다고 한다. “어머니처럼 믿으며 친하게 지냈는데, 아줌마한테 너무 심하게 해서 병(당뇨)이 더 악화된 것 같다”며 뉘우친다는 것.

며칠 전에는 떡을 해서 집으로 찾아와 꼭 끌어안고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며 “앞으로 자주 찾아 뵙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요즘은 거의 아픈 과거 이전의 좋은 관계를 회복하는 중이다.

남편도 “당신을 만나 내가 사람 노릇을 하며 산다”고 고마워한단다. 신혼 초에 남편이 월급 거의 대부분을 시댁에 갔다 주어도 이렇다할 불만을 하지 않았고, 요즘도 남편이 직장 동료들에게 가끔 저녁을 대접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처녀 때 절실히 느꼈던 “돈이 있어야 사람 노릇을 하고 대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꿈이 보내주는 경계.."코스닥에서 돈 벌 수 있다는 느낌이 있지만 자제"

L씨는 현재 주식을 한주도 갖고 있지 않다. 지난 4월7일 삼성전자 주가가 60만원을 넘어서던 날 59만원에 판 뒤 주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3월말부터 코스닥의 IT주식들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것을 보고 코스닥에 들어가는 것을 고려했으나 지금은 유보상태다.

“1999년말에 거래소 종목을 모두 팔고 2000년 1월에 코스닥 종목을 사서 이익을 많이 봤습니다. 지금도 거래소는 당분간 쉬고 코스닥이 갈 것이라는 느낌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식투자를 (가급적) 하지 않고 쉴 생각입니다.”

코스닥 주식을 사면 돈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가 코수닥 주식매수를 유보한 것은 최근 잇따라 꾼 꿈 때문이다. “최근에 돈이 많이 들어 있는 지갑을 잃어버리고, 남편이 아들에게 사준 아반테 승용차를 끌고 나가 티코로 바꾼 꿈을 꾸었습니다.

또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는 분이 내가 집안을 도둑맞았다며 혼을 놓고 우는 꿈을 꿨다고 말해 주면서 조심하라고 얘기했습니다. 7년 동안 돈이 물밀듯이 들어올 것이라고 하던 점을 본게 1998년 6월이었습니다. 만7년이 되려면 2달도 안남았습니다. 7년마다 돌아오는 운이 마무리단계에 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주식투자에 그 어느 때보다 조심할 생각입니다.”

점과 꿈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시사하는 점을 믿고 좋은 것에 대해선 과감하게 실천하고,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리미리 조심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L씨처럼 크게 성공하는 사람의 살아가는 지혜다.

 

 

 

9. "돼지가 되지 마라".."번만큼 베풀어야 더 번다"

대전 L씨의 별명은 ‘일본 아줌마’다. 전기 한등, 수돗물 한 방울도 아낄 정도로 억척스럽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는 그다지 아까워하지 않는 그를 보고 남편이 지어준 것이다. 그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돈만 챙기는 구두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L씨의 좌우명 가운데 하나는 ‘돼지가 되지 마라’는 것이다. 그는 “사소한 것에는 ‘또순이’처럼 알뜰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아껴서 모은 돈을 쌓아 두지만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 사람은 먹을 것만 찾아 꿀꿀대는 돼지와 진배없다.

주위의 못사는 사람들에게 베풀며 사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강조한다. ‘부(富)는 똥과 같아서 한 곳에 쌓아놓으면 썩어 냄새가 진동하지만 널리 골고루 나누면 농작물을 키우는 것처럼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키운다’는 격언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십일조는 내지 않지만 달걀 라면 쌀 및 학자금 등 어려운 이웃 도와

그는 달걀이나 라면을 한판이나 한 상자를 사는 때가 거의 없다. 8판, 10판, 10상자를 산다. 근처에 있는 할인점에 가서 이렇게 사면 무슨 장사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것이다. 4만5000원 하는 20kg 짜리 쌀을 사서 근처에서 장사하고 있는 노점상들에게 주기도 한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어렵게 애를 키우면서 교육하는 경우에는 학자금도 대준다.

L씨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교회에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 십일조를 내 봐야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쓰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합하면 십일조가 되도록 노력합니다. 십일조라는 말이 성경에 나와 있으면 지키겠지만, 신약성서 어디를 봐도 10계에 십일조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제가 그냥 개인적으로 도와주는 것과 교회에 헌금하는 것을 합하면 거의 십일조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남을 도와주는 것을 하나님도 이해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교회에서 들으면 화를 낼 소리이지만, 그의 말은 거침이 없다. “남을 도와주면 스스로가 즐겁습니다. 아까운 것이 아니라, 떳떳합니다. 하지만 욕심 때문에 많이 도와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고 미안할 뿐입니다.”

전기 수도 가스는 끔찍히 아껴 별명이 '일본 아줌마'

L씨를 ‘일본 아줌마’라고 ‘놀리는’ 그의 남편도 남 도와주기를 좋아한다. “남편은 아버지(시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36세의 젊은 홀어머니와 형님 밑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공부를 잘해서 중학교 때부터 장학금을 받으면서 어렵게 공부해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 뒤 6년 동안 받은 월급을 모아 형님에게 집을 지어주고, 그 뒤 1년 동안 모은 돈은 여동생 결혼자금으로 썼을 정도입니다.”

시골에서 (다른 형제자매보다) 공부를 잘해 어렵게 대학을 다녀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알 것이다. ‘나 때문에 형이나 동생, 누나와 여동생이 고등학교 대학교 갈 꿈을 포기하고 일찍 생활전선에 나섰다. 내가 대학에 졸업해서 취직하면 가족의 생계는 내가 떠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하루라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L씨의 남편의 경우가 이와 똑같다. 남편의 형님도 공부를 잘 하셨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의였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동생에게 대학교 진학을 양보하고, 농사일을 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그것마저 시기한 탓인지, L씨가 결혼한 지 2년 반쯤 지난 뒤 시아주버니께서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남편은 술 한 잔 제대로 못 마시고, 학생들에게 ‘단벌 신사’라는 별명을 들으면서 형수와 조카 4남매의 뒷바라지를 도맡았다.

“남편은 결혼한 지 10년 동안 집에 돈 갖고 온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많이 울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면 그게 다 운이 7년 동안 돌아서 많은 돈을 벌게 해준 밑천으로 작용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10. 성공한 5가지 이유..의지와 준비, 실천력

‘50대 초반의 아들 둘을 둔 여고 졸업한 전업 주부 아줌마.’

단돈 500만원으로 7년 동안 800배가 넘는 40억원 이상으로 불린 대전 L씨는 매우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그의 경력과 외모 등은 매일 출퇴근길에서 마주치는 옆집 아줌마와 똑같다.

그런 L씨가 주식투자를 잘 해서 큰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개미(소액 개인투자자)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신출귀몰하는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대박의 환상’을 버리고 냉정하게 자신이 정한 투자원칙을 지키면 돈은 저절로 벌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큰돈 버는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잘 될 싹은 떡잎부터 다르다고 한다. 사람도 사회에 처음 발디딜 때 어떤 준비를 하느냐로 평생이 좌우된다. 어떤 직업을 택하고, 어느 직장에서 시작하느냐에 따라 5년, 10년, 20년 뒤의 인생이 달라진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어느 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말이다.

대전 L씨도 몇 가지 눈에 띄는 독특한 점이 있다.

부자 되겠다는 의지=첫째, 그는 부자가 되겠다는 의지가 그 누구보다 강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군 부자’였던 집안이 급속도로 기울어지면서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돈이 있어야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말 뿐이 아닌 철저한 준비=둘째, 부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했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돈쓰고 돌아다닐 시절인 스무 살에서 스물다섯 살까지 5년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친구를 만나지 않아 ‘외톨이’가 됐고, 연애는 돈 모은 뒤에 근사하게 하자는 생각으로 꾹 참았다. 먹을 것, 입을 것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은 대부분 가난한 이유가 있다”고 단언한다. “자신이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쓰는 사람은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 돈 버는 것보다 돈 쓰는 것을 먼저 배우기 때문이다. 외상(신용카드)으로 외식을 자주하고 비싼 자동차를 사는 사람은 평생 그럴듯한 내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전세와 임대아파트를 전전한다”는 것이다.

톡톡 튀기=세째, 부자될 준비가 끝난 뒤부터는 뭇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기 위해 톡톡 튀는 옷차림으로 화려한 변신을 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을 믿고 최신 유행 패션으로 몸을 꾸몄다. “싼 옷을 걸치기가 싫었습니다. 돈을 어느 정도 모아 앞으로도 돈 버는데 자신이 생기자 이제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시골(지방 중소도시) 처녀가 결혼을 잘 하려면 촌티를 내지 않고 서울 멋쟁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실천력=네째,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실천력이 강했다. 그는 신랑감으로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하고 직장도 튼튼한 의사나 대학교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중학교 선생님인 남편과 결혼한 것도 좋은 대학을 나왔고 처음 만났을 때 외모가 훤칠하고 인상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결혼한 뒤 남편에게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교수가 되도록 자신이 (돈 벌어) 학비를 대면 교수 사모님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돈 버는 일이야 지금이나 그 때나 자신 있었거든요.”

하지만 ‘교수 사모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남편이 “선생님으로 만족한다. 대학원 보낼 돈이 있으면 (대학원 다닌 것으로 생각할테니) 나에게 달라. 어려운 살림에 대학 등록금과 하숙비를 대준 형님께 갖다 드렸으면 좋겠다”면서 대학원 가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운명에 거역하지 않는 유연성=다섯째,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는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여 내편으로 삼는 유연성이 있었다.

L씨는 정형외과 의사와 결혼할 뻔했다고 한다. 인물이 귀공자처럼 훤칠했고 그가 원하던 의사였다. 하지만 한 가지 흠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사고로 다리를 다쳐 절룩거리는 것이었다. 선을 본 뒤 네번 만나자 약혼하자고 해서 결혼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부모님과 오빠 동생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꼭 결혼하고 싶었으나 ‘내 배필이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그는 1997년말 외환위기 때 5억7000만원을 날렸을 때도 ‘운명이려니’하고 받아들였다. 2개월 이상 스트레스를 받아 혈당치가 위험 수준까지 올라가자 ‘이러다 큰일 나겠다’고 생각해 마음을 다잡았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치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 소털처럼 많은 앞날을 준비하자고 생각을 다르게 하자 인생도 밝은 쪽으로 바뀌었다.

 

 

11. "사고 싶을 때 참아야 주식투자 성공"

주식투자의 귀재인 L씨가 가장 강조하는 말은 “사고 싶을 때 매수하는 것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4월7일 삼성전자를 59만원에 판 뒤 아직까지 주식을 사지 않고 있다.

“28일 오전에 포스코를 사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단기적으로 많이 빠져 반등이 나올 것을 예상한데다 실제로 소폭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 경제가 어렵다고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보도를 생각하고 꾹 참았습니다.” 28일 포스코를 샀으면 29일 엄청난 손해를 봤을 것이다.

“29일에도 종합주가가 20포인트 정도 하락하면 사볼 생각으로 개장 전에 돈을 MMF에서 증권계좌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더 떨어질 것 같아 손이 나가지 않아(그는 HTS로 주문을 내기 때문에 클릭을 해야 함) 오전 11시쯤 다시 MMF에 넣으라고 전화했습니다. 종합주가가 860선까지 떨어지면 단기 매수를 고려해볼 생각입니다.”

그는 “주식을 사서 먹을 때의 기쁨보다 현금을 갖고 있는데 주가가 떨어질 때 느끼는 기쁨이 더 클 때가 많다”며 “현찰을 갖고 있으면 주가가 많이 떨어졌을 때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만큼 섣불리 나서기보다 주가가 충분히 떨어졌을 때까지 참고, 참고, 참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참고, 참고, 참아야 주식투자에서 돈 번다

그의 이런 참을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결혼한 뒤 10년 가까이 이렇다할 말 한마디 못하고 참고 참으며 지낸 덕분이다. 그는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이라는 속담을 실제로 지켰다고 한다.

“결혼하고 처음 3년은 입을 막고 아무 말 하지 않았고, 그 다음 3년은 눈을 가리고 거슬리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다음 3년은 아예 귀까지 막고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진짜 식구로 인정해 주더군요.”

L씨가 이렇게 10년 동안 참을 인(忍)을 마음에 새기며 산 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남편이 월급을 거의 대부분 시어머니와 형님 댁에 갖다 준 것이다. “남편에게 가끔 애들에게 자장면이라도 사주어야지 월급을 모두 시댁에 갖다 주면 어떻게 하느냐며 잔소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씨도 안 먹히는 말이었습니다.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다른 하나는 시어머니의 ‘질투(?)’였다. “시어머니께서 집에 오시면 남편과 나 사이에서 주무시곤 했습니다. 결혼한 지 27년 동안 시어머니와 살갑게 지내지 못했고 내내 무서워했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살 바에야 이혼하자’는 생각이 가끔 들었지만 ‘내가 남편하고 사는 거지 시어머니와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10년 동안의 ‘3-3-3년 인(忍)’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그는 비교적 젊을 때부터 당뇨가 생겼다. “혈액형이 O형이어서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다 보니 속병이 생긴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그런 사실에 대해 그다지 원망하지 않는다.

10년 동안의 인내, 시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이혼 위기도 넘겨..남은 인생은 탄탄대로

“시어머니께서 올해 초에 10만원을 보내셨습니다. “너처럼 착한 애가 없다”시면서 “이 돈 갖고 병원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미워한다고만 느꼈는데 이제야 겨우 사람대접 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했던 마음고생이 오히려 인생에 도움이 됐구나하고 느꼈습니다.”

L씨는 지금까지 2번의 이혼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지난 7회에서 소개했던 것으로 남편 친구인 ×××지점장에게 5억7000만원을 맡겼다가 ‘깡통’을 찼을 때였다. 다른 한번은 결혼하고 10년 동안 살던 지방 중소도시를 떠나 대전으로 이사한 직후인 1985년말이었다.

“대전으로 이사할 때 그전에 살던 집을 판 돈(1250만원)으로 대전에서 집을 사려고 했습니다. 당시 17평짜리 주공아파트 가격이 650만~700만원 정도여서 충분히 살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재테크에 일가견이 있지 않습니까? 처음 가보는 대전의 사정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일단 전세를 살다가 6개월 정도 지난 뒤 집을 사겠다는 계획을 짰습니다. 전세는 450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손위 동서가 찾아와 그 돈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800만원 정도 빚이 있는데 그 돈으로 갚겠다는 것이었다. 남편도 주라고 했다. “이 돈은 내꺼니까 못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남편의 말을 한번도 어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깜짝 놀라더군요. 말싸움이 대판 벌어졌지요.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더군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러자고 했습니다.”

L씨는 “부부 사이에 말싸움이 일어나면 그동안 쌓였던 감정까지 가세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럴 때는 두 사람이 서로 번갈아가며 한가지 씩 참아야 합니다. 참아야 돈도 벌 수 있고 인생도 풍요로워집니다. 기분대로, 감정대로 사는 것은 한번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을 내팽겨치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옵니다.”라고 강조한다.

 

 

12. "주가 폭락은 좋은 주식 싸게 살 기회"


L씨는 주가가 오르는 비싼 주식에만 투자한다. 이런 주식들은 외국인들이 많이 거래하기 때문에 ‘낙폭 과대 저가대형주’보다 더 많이 오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국민은행 삼성SDI 등 고가 우량주들은 좋은 주식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기 때문에 종목 분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주식들이 떨어졌을 때 샀다가 오르면 파는 것만 반복해도 1년에 50%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쉽고 안전한 길이 있는데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종목들을 쫓아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개인들이 이른바 ‘대박주’를 찾아 루머에 휩쓸리기 때문에 돈을 잃는다”며 “외국인들이 정답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그것을 베끼지 않고 굳이 오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시간과 정력 낭비인 동시에 돈도 잃는 미련한 짓”이라고 지적한다.

검증된 우량주만 거래, 주가 폭락할 때는 큰 돈 벌 기회가 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흥분된다

“외국인들이 팔 때는 그냥 쉬면서 사태 추이를 봅니다. 주가라는 게 하락한다고 한없이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외국인 매도가 끝나고 다시 사기 시작할 때 많이 떨어진 우량주는 다시 상승합니다. 그때 사서 어느 정도 수익을 내서 팔면 됩니다. 따지고 보면 주식투자는 아주 쉽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가급적 주식 얘기를 하지 않는다.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그게 다 그 사람 복의 한계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이 200만원에서 오르내리던 1999년 11월, 주위 사람들에게 SK텔레콤을 사라고 얘기했습니다. 액면분할 얘기가 나올 때였지요. 한결같은 반응은 그렇게 비싼 주식을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때 SK텔레콤을 사서 액면분할 이후에 30만원(분할전 300만원)이 넘어 팔아 50% 수익을 냈습니다. 돈 벌 수 있는 길이 훤히 보여 얘기해줘도 듣지 않을 때는 가끔 얘기를 듣지 않는 것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합니다.”

L씨는 이른바 전문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용하다는 ×××지점장에게 5억7000만원을 맡겼다가 ‘깡통’을 찬 뒤 스스로의 ‘감(感)’가 판단에 따라 주식투자를 한다. 그가 주식을 사고 파는 원칙은 ‘남과 거꾸로 하는 청개구리가 되라’는 것이다.

“주가가 많이 올라 객장에 아이 업은 아줌마가 등장하기 시작할 때 주식을 사서는 돈을 벌기보다 잃을 위험이 큽니다. 주가가 많이 빠져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주식을 헐값에 내다팔 때는 거꾸로 주식을 살 수 있는 용기와 베팅할 수 있는 실천력이 필요합니다. 남들 뒤를 쫓아가서는 돈 버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할 수 있는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들어 외국인 매도로 우량주 주가가 많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이런 주식을 싼값에 살 수 있는 기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소나기는 피하고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말아야 하지만, 결국 칼은 땅에 떨어지고 소나기는 얼마 안가 그치게 마련입니다. 주식시장도 자연 섭리를 따르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진다고 겁먹지 말고 오른다고 흥분해서는 안됩니다.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사고 싶은 충동을 참고, 팔아야 하는 두려움을 떨칠 수 있어야 합니다."

개별 종목을 사고 팔 때도 마찬가지다. “매수한 주식이 모처럼 상한가 행진을 할 때도 냉정하게 판단해야 손해 보지 않고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통상 중소형주들이 상한가 행진을 시작할 때는 거래량이 매우 적습니다. 하지만 상한가를 3~5번 치면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상한가 매수잔량이 수백만주 쌓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더 오를 것이라는 미련을 버리고 과감하게 팔아야 합니다. 거래량이 는다는 것은 그동안 매집했던 큰손들이 판다는 뜻이며, 주가는 조만간 하한가 행진으로 바뀔 것입니다.”

연50% 이상의 수익을 내지만 수수료 아껴 남 도와주기 위해 HTS 통해 거래

주식투자라면 자신있는 그는 주식 매매를 HTS(홈트레이딩시스템)에서만 한다. “거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적은 수수료율 차이가 많은 수수료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요즘은 거래를 거의 하지 않지만 많이 할 때는 한달에 수수료 차이가 수백만원이나 납니다. 어차피 증권회사 직원들 조언을 듣는 것도 아닌데 굳이 비싼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지요. 그럴 돈이 있으면 아껴서 어려운 사람 돕는 게 훨씬 나은 일입니다.”

L씨의 주식투자 경력은 이제 19년째다. 어지간한 펀드매니저들보다 훨씬 오랫동안 주식시장에서 격전을 치룬 노장(老將)이다. 그의 주식투자 실력을 급수로 따진다면 입신(入神)의 단계인 9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승부의 세계를 초월한 신의 경지로 삶과 죽음, 주식과 돈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수준인 셈이다.

“7년 전 점쟁이 말대로 올 6월부터는 주식투자에 매우 조심할 것입니다. 최근에 돈지갑을 잃고 집이 도둑맞는 꿈을 꾸는 것도 주식투자를 자제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식투자를 하느라 악화됐던 당뇨와 무릎관절을 고치는데 중점을 두면서 주식투자는 1년에 2~3번, 주가가 많이 떨어졌을 때만 할 생각입니다.”

그는 최근 1주일 동안 몸무게가 1kg 빠지고 혈당도 440~460에서 195로 떨어졌다고 한다. “매일 저녁 9시부터 10시40분까지 집 앞 학교 운동장을 20바퀴 걸어서 돕니다. 우연히 만나 할머니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걸으니까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컴퓨터를 켜지도 않고 주식투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까 아주 편안합니다.”

“주식투자를 할 때는 이런저런 스트레스 때문에 밤 11시에도 야식을 먹어 순식간에 4kg가 늘었습니다. 당연히 혈당치가 급격히 높아졌고 관절 상황도 나빠졌지요. 요즘은 밤 9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으니까 병원 가는 것도 매주에서 3주에 한번으로 줄었고요. 관절 치료를 위한 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됐습니다.”<끝>

에필로그
대전 L씨에 대한 시리즈가 게재되는 동안 수많은 독자들께서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L씨의 연락처와 ‘점집’ 연락처를 문의했습니다. 인천의 황씨, 서울 일원동의 60대 할머니, 용인의 이씨, 현대모비스의 김씨, 강릉의 박씨 등등…. 독자 여러분들의 뜨거운 호응에 감사드립니다. 점집 연락처는 메일과 전화로 몇 분에게 알려드렸지만, L씨 연락처는 본인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알려드리지 못했습니다. 혜량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워렌 버핏처럼 유명한 펀드매니저도 아닌데 L씨의 투자일지를 12회에 걸쳐 장기적 연재한 것은 L씨처럼 평범한 보통사람도 충분히 주식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박’의 환상을 버리고, 검증된 우량 주식들을, 증시 격언에 따라 매매하면 연30~50%의 수익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것을 L씨는 보여줍니다.

이번 시리즈가 독자 여러분들의 성공투자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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