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삼국시대에도 언어가 통했던 한국, 메이지시대 본섬 내에서도 언어가 안통했던 일본
각자의 방언을 있을지언정 말은 통했다던 고구려-백제-신라.
내물왕 18년 ‘백제왕이 글을 보내 말하기를[百濟王移書曰]’, ‘우리 왕이 ‘대답해 말하기를[答曰]’, 눌지왕 34년 ‘고구려 사자가 와서 말로 통고하기를[使來告曰]’, 고구려 장수왕 12년 신라의 사신을 ‘왕이 특별히 두텁게 위로했다.[王勞慰之特厚]’, 백제 개로왕 21년 고구려 승려 도림이 ‘문 앞에서 고하기를[詣王門告曰]’, ‘왕을 모시고 앉아 조용히 말하기를[從容曰]’ 등은 표현 방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상의 기록들을 보면 삼국 간에 어느 정도 의사표현이 자유스러웠을 것이라 짐작된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 표준어를 제정하기 까지 언어가 제각각이었고 라디오 방송이 보급되면서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혹가이도는 원래 일본이 아니라 아이누 원주민이 살고 있어 빼더라도, 본섬내에서만 해도 충분히 교류할 수 있으나 각 영주끼리 협상할때도 언어가 통하지 않아 소통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여기까진 나도 알고 있던 내용인데 일본인끼리 얘기하다 이 얘기가 나왔는데 언어의 기능이 2가지 있는제 첫번째 소통의 도구. 두번째 소통 단절을 위해서. 말이 안통하면 정보가 차단되니까 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정치적으로 내전이 끊임없이 있던 나라니까 사고체계가 다르다 라는걸. 뭐 일본뿐 아니라 필리핀과 다른나라에서도 지근거리임에도 소통이 안되었는 나라 있었다고 함.
이말 들으니까 영주하에 백성들이 '번'이라는 영주의 구역안에 거주지가 정해져있고 그 '번'을 이사는 커녕 이동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토쿄와 가까운 이바라키도 사투리가 심한게 언어가 교류하기는 커녕 단절됨. 이동을 막은게 신분이동의 자유를 박탈하기위해 라고 생각했는데 정보차단의 이유도 있었겠다.
우연히 호사카 유-지 교수님 글 읽다가,
"사무라이 문화는 정보전을 중시한다. 상대에 대해 엄청나게 정보를 모은 후 철저히 준비해 싸움에 임한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실도 왜곡한다. 그런데 선비문화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 상대를 무시해 버린다.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https://topclass.chosun.com/mobile/board/view.asp?catecode=L&tnu=20051010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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