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심리 기제 중 하나인 毕竟(비징:필경)에 대한 분석글

중한사전 毕竟 bijing
부사 드디어. 필경. 결국.

중일사전(事物がたとえどのようであってもその本質は)畢竟,結局のところ,何といっても.
(일이 만약 어떻게 되더라도 본질은) 필경, 종국에는, 뭐라 하든간에

국어사전 필경 1 畢竟
부사 끝장에 가서는
☞거의 사어가 됐지만 내가 떠올린 뉘양스나 의미는 '필시 연유가 있을터' 90~100에가까운 '반드시'에 상응하는 확신인 반면, '필경 연유가 있을터' 50에 가까운 반신반의적 추측. '드디어'같은 의미 하나도 없음. '끝장에가서는' 이란 의미도 뭐 옛날 문헌에는 있었다는데 '필경 장원급제로구나(마침내)'보다는 '필경 장원급제하리라(추측적 확신) 느낌. 사극에서조차 결국, 마침내 의미로 쓰질 않음.



1년 전(수정됨)
드디어 毕竟이 나왔군요. 2020.07.07일
毕竟이 한국 심리문화에서는 없어요.
알고보면, 굳이 좋은 표현은 아니고, 중국인의 심리적 습관인 셈인데
중국은 땅이크므로, 인간이 자연이나 사회를 컨트롤하기엔 한계가 있어서
현실의 한계를 인정해버리는 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어떠한 사회적 한계에 부딪혔을때 , 그냥 그대로 순응했던 역사를 살펴볼수있는데
이 부분은 루쉰도 굉장히 답답해서 돌아버릴뻔했다는건, 대부분 다 아실껍니다.
오죽했으면 꽃길을 버리고 돌아와서 글을 썼을까요

근데 한국은 상당히 반대죠.
비록 조선시대가 끝나가면서 생긴 현상이긴 하지만, 계급투쟁에 적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떠한 사회적 한계가 있다고 해서 마냥 현실을 인정하기보단, 똥고집이 꽤 쎕니다.
이런걸 '집단 무의식'이라 하는데. 다시말해
毕竟은 중국인의 집단 무의식에서 형성된 단어라
그 집단 무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인한테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 당연히 모든 한국인에게 적용되진 않겠죠.
성격중에 유독 환경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毕竟이 밥먹듯이 사용하기에 좋은 먹잇감이 될수가 있어요.

문장으로 예를 들어봅니다
咱毕竟不是鸟类,飞不上天空 우리 인간은 조류가 아닌 (한계에 처해 있으므로), 하늘을 날수없다
이 말을 라이트형제가 들었다고 가정해봅시다.
멱살잡고 흥분했을지도 모르죠.
과학혁명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럽인들에게는 하찮게 보일 생각입니다.
그 당시 유럽인들에게 毕竟이라는 집단무의식은 없을껍니다
그러나, 중세기 암흑시대때는 신에 억눌려 살았기때문에
이때의 집단무의식은 毕竟의 심리가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죠.

종합정리하면.
毕竟의 키워드는 '현실인정'이라는 '집단무의식'입니다.
영상에서 나왔던 "상황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어기", "어쩔수 없다는 어기"
여기서 어기라고 하는 애매한 말은, 다시말해 인간의 감정 혹은 심리구조란 뜻이죠.
합치면, "자신이 처한 환경(현실)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것이 아니고, 순응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지하는 심리"인 것입니다.

어떠신가요? 이래도 毕竟을 쓰고 싶은가요?
毕竟을 잘못쓰면 아래처럼 됩니다
16,17살 짜리들이 사회에서 온갖 범죄를 다 저질러도
他们毕竟是小孩子,能不能通融一下?
걔들 어쨋거나(현실인정) 어린애들이잖아, 좀 봐줄수 없나?
이처럼, 현실인정의 毕竟이 잘못쓰이면, 잘못된 환경이나 시스템을 타파하지 못하면서 구습에 얽매이게 되고
그러면 또 집단으로 수구적이게 되고, 상황을 피하려고만 하고, 또 그로인해 온갖 부정부패들이 생기게 되죠.


답댓글
중국에서 살아보며 느낀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교육탓인가 했었는데 문화 역사적 환경탓도 있었군요. 중국인들이 没办法(방법이 없다)를 자주 쓰는 것도 같은 이유인것 같아요. 우리 한국인들은 没办法 보다는 找办法(방법을 찾다)가 더 익숙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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