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 GPT로 긁어온게 분명한 짤
AI 환각아닐까
총 6명이 실존인물인지 알아보자.
1. 得能佳吉 토쿠노 카키치 (1884년 4월 3일~1964년 6월 19일)

토쿠노 요시키치가 아니라 카키치가 맞다. 한자는 맞는데 발음이 틀림.
1909 년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 을 졸업. 같은 해 11월 문관고등시험행정과시험 에 합격. 내무성 에 입성해 경시청 경부가 된다.
이후 오카야마현 시보, 경시청 경시 , 야마가타현 경찰 부장 , 시가현 경찰 부장 , 대만 총독부 경시 겸 동부 경찰관 및 사옥관 연습 소장, 척식국 서기관 , 내무 서기관, 홋카이도 청 서기관·내무 부장 등을 역임.
https://ja.wikipedia.org/wiki/%E5%BE%97%E8%83%BD%E4%BD%B3%E5%90%89

秘 二三六-二 / 八月九日 決裁
비(기밀) 제236-2호 / 8월 9일 결재
大正十年八월 六日
다이쇼 10년(1921년) 8월 6일
拓殖局長 川村竹治
척식국장 카와무라 타케지
內閣總理大臣 原 敬 殿
내각총리대신 하라 타카시 귀하
滿鮮ニ於ケル拓殖狀況竝ニ在支邦人發展ノ狀況視察ノ爲支那、關東州及朝鮮ヘ出張ヲ致度此段及內申候也
만주와 조선에서의 척식(식민지 개척) 상황 및 중국 체류 일본인의 발전 상황을 시찰하기 위하여 중국, 관동주 및 조선으로 출장을 가고자 이에 내신(보고)함.
追而出張期間ハ往復日數共五十日ト豫定シ其旅費ハ當局內國旅費及外國旅費ヨリ支弁ノ筈ニ有之候
추후 출장 기간은 왕복 일수 포함 50일로 예정하며, 그 여비는 당국의 국내 여비 및 외국 여비에서 지불할 것임.
記 기록
拓殖局書記官 得能佳吉
척식국 서기관 토쿠노 카키치
支那、關東州及朝鮮ヘ出張ヲ命ス
중국, 관동주 및 조선 출장을 명함.
拓殖局屬 藤井唐三 / 拓殖局屬 平野芳文
척식국 소속 후지이 도조 / 척식국 소속 히라노 요시후미
支那ヘ出張ヲ命ス
중국 출장을 명함.
*척식국 : 일본식민지 통치사무・감독 외、남만주철도・동양척식의업무감독、해외이민사무 등을 담당한 일본의 국가기관
/척식국 서기관 토쿠노 카키치 외 2명 중국 관동주와 조선 출장의 건(1921)

拓秘第一九八五號
척비(척식국 기밀) 제1985호
大正十一年十월 四日
다이쇼 11년(1922년) 10월 4일
內閣總理大臣男爵加藤友三郎殿
내각총리대신 남작 카토 토모사부로 귀하
拓殖局長赤池濃
척식국장 아카이케 아츠시
內申 (내부 보고) 朝鮮ニ於ケル拓殖狀況視察ノ爲常務ノ後ヲ免シ今次出張ヲ設クル條左ノ通願發令致度及內申候也
조선에서의 척식(식민지 개척) 상황을 시찰하기 위하여, 통상 업무를 면하고 이번 출장을 수행하고자 아래와 같이 발령을 요청하며 내신함.
記 기록
拓殖局事務官 得能佳吉
척식국 사무관 토쿠노 카키치
朝鮮へ出張ヲ命ス
조선 출장을 명함.
往復共三十日間ノ豫定
번역: 왕복 포함 30일간의 예정.
拓殖局
/척식국 서기관 토쿠노 카키치 조선 출장의 건(1922)
2. 得能繁男 토쿠노 시게오 (1892년 11월)
1919년 7월에 동경 제국대학 농학부를 졸업.
1919년 9월에 후쿠오카현 기사技師가 됨. 1920년 12월에 기후현 기사가 됨. 1926년 9월에 총독부 평안북도 기사에 임명이 되어 토지개량부 수리과에서 근무를 함. 동년 12월에 수원고등농림학교 강사, 1932년 7월에 농림국 수리과 근무가 되어 1935년에 이름.

기사技師란?
〘 명사 〙
① 구제관청의 기술관 중 하나 . 기술상을 다루는 고등관*, 또는 고등관 대우의 것. 기관.
[초출의 실례] “기사는 주임으로 하고 기수는 판임으로 한다”(출전:기술 관봉 급령(메이지 31년)(1898) 산조)
*고등관 : 고급관료. 구 제도로, 관사의 등급 의 하나. 판임관(장관) 위에 위치한다. 친임관(일왕 어명으로 등용한 관료) 외에 9등으로 나누어 친임관 및 1· 2등 을 칙임관 , 3등 이하를 주임관 으로 했다.
https://kotobank.jp/word/%E6%8A%80%E5%B8%AB-473467
技師(ギシ)とは? 意味や使い方 - コトバンク
デジタル大辞泉 - 技師の用語解説 - 1 機械・土木建築などの専門技術をもち、職業とする人。エンジニア。2 技官ぎかんの旧称。[類語]技手・技術者・技工・エンジニア
kotobank.jp

지방기사 종6위 토쿠노 시게오
임명 조선총독부도지사
서함 고등관 5등
우측의 사항을 삼가 아룁니다
다이쇼 15년/1926년 9월 14일
조선총독 자작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부 토쿠노 시게오 외 4명 칙임관 대우의건(1926)


조선의 농업 토목 사업의 추세(朝鮮に於ける農業土木事業の趨勢)-토쿠노 시게오
II. 조선의 농업
조선에서의 농업은 예로부터 기본 산업이었으며, 광공업의 발전이 눈부신 현재에도 여전히 그 주축으로서 한반도 총 생산액의 약 4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소화 15년=1940년 기준). 농산물 중 쌀은 왕좌의 자리에 위치하며, 이 쌀 수확의 증감이나 품질의 우열은 농가 개별 경제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실로 제국(일본) 식량의 수급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최근 특히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1940년 당시 조선 농업의 현황을 간략히 기술하자면, 전체 경지 면적은 약 493만 정보(町步)입니다. 그중 논(水田)은 약 177만 정보, 밭(田)은 약 316만 정보로 육지 전체 면적의 약 2할을 차지합니다. 농가 1호당 평균 경지 면적은 논 5단 8무보(畝步), 밭 1정(町) 4무보를 합쳐 총 1정 6단 2무보입니다.
즉, 조선 농가의 경지 면적은 일본 본토(내지)의 1호당 평균 면적인 1정 7무보에 비해 결코 좁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된 정치(秕政)의 결과로 토지는 황폐해지고 지력은 일반적으로 쇠퇴하여, 단위 면적당 생산력은 일본 본토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토지 개량이나 자급 비료의 증산 등을 통해 지력을 배양·증진하고 생산 증가를 확보하는 것이 조선 농업의 근본적인 방책입니다.

XI. 장래의 전망
현재 실시 중인 사업은 대략 앞서 서술한 바와 같으나, 향후 토지 개량 사업의 목표가 될 각종 사업에 대해 개관하면, 현재와 같은 보조(지원)가 이루어질 경우 대체로 다음과 같은 면적을 전망할 수 있다. 이들이 가급적 속히 실시됨으로써 진정으로 조선이 명실공히 제국(일본)의 곡창이 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XII. 결언
이상은 조선에서의 토지 개량 사업의 개요이다. 우리 황국(일본)의 이념을 팔굉(八紘, 온 세상)에 드높이고자 하는 대동아전쟁의 완수를 위해서도, 국민의 발전을 위해서도 식량 증산은 현재 및 장래에 반드시 달성해야 할 주요 시책이다.
특히 (조선)반도는 미산지대(쌀 생산 지대)로서 이미 국토 계획상으로도 책정되어 있는바, 더욱 한층의 비약을 위해 각 방면의 준비에 빈틈이 없기를 기하는 바이다.
(원고 수리: 소화 18년(1943년) 7월 12일)
3. 得能憲正 토쿠노 켄세이
해당인물 없음.
得能正憲의 환각.
4. 得能要 토쿠노 카나메
1907년 11월 5일: 통신사무원 임명
1908년 6월 17일: 통감부 통신수(通信手)로 임명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 통신서기보 임명
1912년 ~ 1917년: 조선총독부 체신서기보에서 체신서기로 승진 (우편, 전신, 전화 업무를 담당)
1926년 10월 19일: 진해우편국장 임명
1928년 5월 25일: 원산우편국 우편과장 임명
1930년 3월 24일: 서대문우편국장 임명
1931년 6월 4일: 평양우편국 우편과장 임명
1933년 3월 22일: 경성(서울)우편국 우편과장(및 통상우편과장) 임명
1934년 9월 1일: 통영우편국장 임명
1935년 3월 26일: 조선총독부 체신부사무관(遞信副事務官) 임명
고등관 7등(高等官七等) : 일반 관리에서 고위 관리인 '고등관'으로 승격
1935년 3월 27일: 본인요청에 의해 본관 면직 (명예퇴직)
1935년 3월 27일: 온양우편소장 임명

5. 得能正憲 토쿠노 마사노리 (1889 3월)
1915년 3월: 도쿄상선학교 항해과를 졸업함. 졸업과 동시에 갑종 2등 항해사 자격을 취득함.
1915년 12월: 일청기선주식회사(日淸汽船會社)의 해기원이 됨.
1919년 2월: 퇴사하여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洲鐵道株式會社)에 입사함.
1920년 9월: 남만주철도주식회사 퇴사.
1920년 2월: 총독부 체신국 기수(技手)에 임명되어 조선으로 건너감. 해원양성소(海員養成所 선원양성소) 근무를 명받음.
1930년 11월: 체신기사(遞信技師)로 승진하여 체신국(지금 우체국의 전신) 해사과海事課에서 근무함.
1931년 1월: 총독부 해원심판소 이사관을 겸임하여 1935년에 이름.

6. 得能正太郎 토쿠노 쇼타로
해당인물 없음.
동명의 만화가 환각.
요약
1. 6명중 2명 환각 4명 실존인물
2. 토쿠노 카키치 : 대만총독부 경찰공무원
토쿠노 시게오 : 조선총독부 농림공무원
토쿠노 카나메 : 조선총독부 체신공무원
토쿠노 마사노리 : 조선총독부 체신공무원&해원심판소 이사관
매우 뜻밖에 사실
得能通昌 토쿠노 미치마사 ( 1852년 2월 14일 ~1913년 5월 14일 )

메이지 에서 다이쇼 초기의 대장(현 재무성) 관료 , 정치가. 인쇄 국장 , 귀족원(상원의원, 현 참의원) 칙선의원(일왕이 임명한 입법의원) , 금계간 사후.
사쓰마 번사(번주의 가신) 토쿠노 료스케(초대 인쇄국장, 초대 대장기감(현 재무성))의 장남으로서 가고시마에서 태어나 1869년에 상경해 영학(영어와 영미권 학문•문화전반을 공부하는 학문) 을 배웠다. 1874년 육군성 에 들어가 신호사관으로서 대만 출병에 종군했다. 그 후, 도쿄 부속 으로서 교육 행정을 담당하고, 아이치현 에 전임해 권업과(현 환경과)에 근무했다. 이어 내무성 으로 돌아가 지리국에 근무하고 나중에 효고현 지리과장이 되었다.
1883년 대장성(현 재무부) 인쇄국장이었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대장성 권소서기관으로 승진하여 인쇄국 근무가 되었다 . 대장성 삼등기사, 동 인쇄국 사무 차장, 동 사무장, 동 인쇄 국장, 내각 인쇄 국장을 역임했다.
1906년 1월 7일, 귀족원 의원에게 칙선(왕명 선출)되어, 사망할 때까지 재임했다.

二十六日。 詔曰: "日本國內閣書記官長柴田家門, 特敍勳一等; 統計局長花房直三郞、印刷局長得能通昌、大藏省煙草專賣局長仁尾惟茂、農商務省農務局長酒句常明, 竝特敍勳二等, 各賜太極章;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일본국 내각 서기관장 시바타 가몬〔柴田家門〕을 특별히 훈 1등에 서훈하고, 통계국장 하나부사 나오사부로〔花房直三郞〕, 인쇄국장 토쿠노 미치마사〔得能通昌〕, 대장성 연초전매국장 니노 다다시게〔仁尾惟茂〕, 농상무성 농무국장 슈코 아키마케〔酒句常明〕는 모두 특별히 훈 2등에 서훈하고 각각 태극장을 하사하라.
/고종실록47권, 고종 43년 8월 26일 陽曆(1906)

셋째딸 토쿠노 유리의 사위가 테라우치 히사이치.

테라우치 히사이치의 부친은 테라우치 마사타케.
그 유명한 초대 조선총독이다.
•한일합병 주도
•토지조사사업: 기한 내에 신고되지 않거나 대대로 소유했으나 증명문서가 없던 많은 토지를 총독부가 몰수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겨 친일파나 일본인 지주들에게 헐값으로 불하하여, 기존의 지주와 소작인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더욱 용이하게 하였다.
->동양척식회사를 통해 멀쩡한 땅 빼앗아서 일본인 주기
다만 토쿠노 유리는 21살에 요절, 테라우치 히사이치는 사별 후 재혼하여 육군대신, 대만총사령관, 북지나방면군사령관, 남방군총사령관 등 2차세계대전 일본군 요직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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