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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가 아니라 친문이죠" - 노무현 친구(?) 문재인

노무현 친구 원툴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있다.
안하겠다는 사람을 민주당이 떠밀어서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국회의원도 흔한 지자체 커리어도 없으면서 당황스러웠지만 박근혜를 뽑을 순 없었기에 찍었지만 실패. 이명박이 죽을 썼고 새누리당 여론이 바닥이었음에도 국민을 민주당 자판기로 본 결과다. 세월호 의혹으로 당선했으나 세월호를 규명한건 없었다.

세월호

당선전
문재인 정부의 세월호 종합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국 ‘아무 말 대잔치’였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그는 최소한의 사과나 유감 표명조차 없이 고향으로 가버렸다. 괜히 ‘기만의 세월’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를 ‘세월호 대통령’이라 불렀지만 결코 세월호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었다. 4.16 가족과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진상규명을 완수하라고 한겨울에 청와대 분수대에서 여러 달 노숙 농성까지 했으나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나와서 만류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사람이 먼저다’는 말뿐이었다.

노숙 농성을 마치면서 유가족들은 삭발식까지 했다. 틀림없이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문재인은 임기 마지막에 박근혜를 사면하기까지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즉각적으로 규탄 성명을 냈다.
문재인 정권 기만의 세월, 로고시안 240402


일간베스트 (일베) 폐쇄 방치

http://webarchives.pa.go.kr/19th/www.president.go.kr/petitions/113699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사이트 폐쇄를 요청합니다 > 대한민국 청와대

나라를 나라답게, 국민과 함께 갑니다.

webarchives.pa.go.kr



노무현대통령의 인신모독성 비방과 중상모략의 본거지 일베 폐쇄와 관련해 23만명의 청원이 있었으나 문재인 정부는 가능하다고 답변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임기말까지 일베는 폐쇄되지 않았다.


http://webarchives.pa.go.kr/19th/www.president.go.kr/petitions/113699




문 의원이 인용한 이 시는 반대로 디시인사이드와 일베를 오가는 한 네티즌이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를 인용해 만든 자작시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SNS를 통해 게시물이 퍼지자 해당 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누리꾼은 디시인사이드와 일베에 각각 자신의 자작시임을 인정하는 글을 올렸다.

이 사실을 확인한 대다수의 누리꾼들은 문 의원에게 해당글을 삭제할 것을 요청했고, 이에 문 의원은 “제가 올린 시는 인터넷 카페에 체코어와 번역이 함께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시가 조작되거나 번역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있네요. 체코어를 아시는 분은 한번 살펴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글을 남겼다. 그러나 함께 적힌 체코어 역시 이 글을 쓴 네티즌이 지난 2월 한국어와 함께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페이스북에 ‘일베’ 조작시 게재 논란
입력 2014-05-28 07:58:56 헤럴드경제



노무현 친구

—노무현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인데, 지금의 친노와는 꽤 거리가 있습니다.

  “친노는 언론이 붙인 이름 아닙니까? 그게 친노무현이 아니라 친문(문재인)이죠. 친노 중에 노무현 어려울 때 도와주거나 함께한 사람 한 명이라도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일 친한 친구’라 했고, 노무현 정권의 첫 민정수석이며 이후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지냈는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첫 민정수석, 그게 제일 문제였다는 겁니다. 노무현 정권이 왜 실패했습니까. 첫 청와대 인사에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노무현을 대통령 만들겠다고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미래를 그려 온 사람들을 옆에 두지 못하고, 막차 탄 사람들을 데려다 놓는 바람에 모든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어요.”

“이강철은 여러 이유로 대통령이 깊이 신뢰하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근데 세 번째 모임을 하던 날, 문재인이 떡하니 나타난 겁니다. 당선자가 문재인을 데려와서 ‘부산에서 활동한 문재인 변호사를 올라오라 해서 이 모임에 정규 멤버로 참석토록 했다’고 말하더군요. 나는 문재인 실물을 그날 처음 봤어요. 몇 년 전부터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선거기간에도 본 적이 없고 사진으로만 얼굴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겠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대통령이 그렇게 몇 번이나 도와달라고 할 때 모른 척하고, 심지어 대통령이 되더라도 절대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던 사람이 당선되고 나니까 딱 나타난 겁니다. 이중적 태도라는 생각이 안 들겠어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대통령한테 ‘이 모임 더 하면 언론에 노출될 것 같다, 비선 논란이 생길 수 있으니 이 모임은 그만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버렸습니다. 그 후 모임은 없었습니다. 명분은 그랬지만 솔직히 내 사심(私心)이 있었던 거죠. 그런 사람과 함께 앉아서 국사를 논의하기 싫었던 겁니다.”

"4월에 노무현이 대선후보가 되면서 인터뷰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묻는 질문에 부산에서 같이 일해 온 문재인 변호사라고 답했고, 그때부터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의 일거수일투족을 언론이 주목하던 시기니까요. 사실 나는 그때도 별로 인식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같이 변호사 사무실을 했던 친한 사이고 경선에서 좀 도와달라고 여러 번 얘기했는데 계속 거절했던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노 후보가 문재인을 내보내자고 하더군요. 어차피 안 될 거라면 이기택, 신상우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내보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이) 거절했군요.

  “단순히 거절했으면 그렇게 기분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람 설득하러 갔던 캠프 후배가 이렇게 전하더군요. ‘제발 나한테 그런 소리 좀 하지 마라, 난 정치에 관심 없다, 변호사 하게 좀 놔 둬라, 노무현이 대통령 돼도 그 근처에 얼씬도 안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말입니다. 노무현이 대통령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때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던 노무현의 흔들림과 아픔은 옆에서 본 사람으로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문 대표는 (대선 2개월 전인) 10월에야 선대위에 참여했죠.

  “그때 우리가 겪은 어려움만 해도 책 여러 권 나올 겁니다. 4월에 경선에 이겨서 대선후보가 됐는데 당이 선대위를 10월에야 구성한 겁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비선이 이랬다저랬다 하는데, 당 조직이 안 만들어지는데 어떻게 합니까. 측근들이 움직여야죠. 동교동계는 후보직 내놓으라고 난리인 데다 당에서는 후보실 여직원 월급도 알아서 내라고 하는 지경이었습니다. 우리 캠프 사람들이 그렇게 주변에 조금이라도 도와달라고 부탁하다 번번이 거절당하고 유리걸식(流離乞食)하는 동안 문재인, 이호철은 그냥 변호사, 여행사 하게 나 좀 내버려두라고 했답니다. 10월 돼서 당 선대위가 발족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그 두 명이 이름 올린 겁니다. 말 그대로 막차 탄 거죠. 그나마 막차라도 타 줘서 고맙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얼굴을 보진 못했습니다.”

  —그 두 분은 정권 초기 요직에 임명됐죠.(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민정1비서관)

  “노 대통령이 그렇게 캠프에서 고생해 놓고도 비캠프 출신들을 중요 자리에 앉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그때 여당 후보였던 만큼 예선(경선)이 본선(대선)만큼 중요했고 그렇게 경선 좀 도와달라고 해도 꿈쩍도 않던 사람들인데 말이죠. 이강철은 지금도 문재인 얘기만 하면 육두문자를 날리곤 합니다. 캠프 출신들이 문재인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다른 사람들은 상상 못할 겁니다.

  —어려울 때 외면했다면 그럴 만도 하겠군요.

  “아닙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나라종금 사건으로 구치소에 100일간 있다가 2003년 4월에 나왔어요. 나와 보니 당이 깨져 열린우리당이 생기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는 배신자라며 인기가 바닥인 상황이었죠. 2004년 4월이 17대 총선이니까 당이 총선준비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이 상태로는 지지를 얻기 어려운 상황인 겁니다. 청와대에 들어가서 대통령한테 얘길 했어요. 청와대나 정부에서 인지도와 인기 있는 사람들을 총선에 내보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1년 가까이 벼슬살이 했으면 은혜도 입었고 이제 보은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대상에 문재인 민정수석이 있었나요.

  “문재인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수석, 이창동 문광부장관, 강금실 법무부장관 네 명은 꼭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이 살아야 대통령도 살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때 내가 당에서 맡았던 직책이 ‘정무조정위원장’이었어요. 관료들 등 떠밀어서 출마하게 하는 역할이라 관료들은 내 전화 피하면서 ‘저승사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걸 다들 아니까 그런 자리에 앉힌 거죠. 근데 4명 출마를 요청하고 며칠 후에 대통령 전화가 온 겁니다. 내가 말했던 넷 다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요. 대통령이 임명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부탁하는데 모른 척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내가 기자들 앞에서 ‘가빈사양처 국난사명상(家貧思良妻 國亂思名相·집안이 어려우면 어진 아내가 생각나고 나라가 혼란하면 훌륭한 재상을 그리게 된다)’이라며 네 명을 사정없이 비난한 겁니다.”

—당시 기자들 앞에서 문재인 수석을 특히 심하게 비판했던데요.

  “대통령 어려울 때 대통령 뜻에 좀 따르라고 강조했습니다. 근데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까. 그때 문재인 수석이 사표를 내길래 대통령은 그래 이제 결심했나 보다, 나를 위해 출마하나 보다 하고 사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건강상 사유 운운하더니 네팔로 트레킹을 간 겁니다. 대통령이 피눈물을 흘리는 시점에 측근이라는 사람이 해외로 트레킹이라니요. 정말 기가 막혀서 입이 안 다물어지더군요. 그런 사람이 친노라고요. 정말 그때 생각만 하면….”

  그는 이 얘기를 하며 잠시 침을 삼키고 말을 멈췄다. 당시 17대 총선을 앞두고 그는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 ‘DJ를 배신한 배신자’라며 지지율이 5%대로 바닥을 칠 때 수도권 출마를 포기하고 광주 출마를 선언했다.

  —선거 때마다 문재인 차출론이 있었잖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 전까지 총선, 지방선거, 재·보궐선거 때마다 문재인에게 제안을 했어요. 민주당이 아무리 영남에서 약세여도 노무현 주변인물인 송인배, 이봉수 이런 사람들이 야당후보로 총선 출마해서 거물급인 박희태, 김태호와 몇백 표 차이로 선전하곤 했잖습니까. 김정길 후보가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해서 45% 득표했죠. 전부 다 노무현 생각대로 문재인이 나갔으면 이기는 선거였습니다. 근데 끝까지 거절하고 안 나간 거예요.”

  —문재인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입니다.

  “《운명》(문재인 대표 자서전)이라는 책 봤죠. 운명이 뭡니까. 노무현 서거가 자기 성공할 운명입니까. 노무현 동정론 업고 정치에 나선 인물이잖아요. 성공할 수 있었던 노무현 정권에 기여는커녕 역행한 인물입니다. 그럼 그대로 조용히 있든가. 당 대표라고 당을 저렇게 사분오열 만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호남 민심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어떻습니까.

  “호남사람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호남을 머슴 취급하고 있는 것에 대해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어떤 모습을 보입니까. ‘너희들(호남)은 어차피 우리 표’라며 신경도 안 쓰고 있지 않습니까. 호남사람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을 영남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호남에서 인기가 없는 것도 문재인 대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사람이 자초한 겁니다. 문 대표 스스로 호남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그 사람이 호남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원인이 뭘까요. 그 사람 자서전(《운명》)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6·25 때 부친이 부산으로 피란 와서 양말공장을 했는데 호남사람들이 양말값을 떼어먹고 도망가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는 얘기가 있어요. 읽으면서 실소가 나왔습니다. 전쟁 직후 호남지역에서 부산으로 가려면 기차도 차도 없었고 배 타고 열 시간이 넘는 시절이었습니다. 호남사람들이 거기까지 가서 사기치고 다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어떤 호남사람이 그랬다고 해도 그게 야당 후보로 대통령 나가겠다는 사람이 할 얘깁니까. 그 책 읽고 충격받은 호남사람들 많습니다.”

  —요즘 친노라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어떻습니까.

  “그들이 만날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48% 얻었으니까 이번 대선에서 2%만 더 얻으면 된다고. 48%는 이미 자기네 것이고 2%만 선거운동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한테도 ‘도와달라, 2%만 메워 주시라’는 제안이 종종 오곤 합니다. 정말 착각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지난 대선 당시 MB(이명박) 정권 인기도 바닥이었고, 헌정사상 유례 없던 여성 후보에, 이른바 독재자의 딸을 상대로 48%밖에 못 얻은 걸 부끄러워해야죠. 김두관이나 다른 사람 나갔으면 60% 이상 얻었을 건데 후보 잘못 나가서 졌다는 사실을 왜 인정을 못합니까.”

  —당 운영도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당연하죠. 친노 패권주의의 폐해는 심각합니다. 당내에서 자기들 입맛에 조금만 안 맞으면 어마어마하게 공격하고 흔들지 않습니까. 대표적인 예가 박영선 전 원내대표입니다. 원내대표로 선출됐으면 협상 재량권을 줘야지 협상해 오면 흔들고, 다시 협상해 오면 또 흔들고 이러니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문재인 아니라 그 세력 중 누가 대표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당 제대로 운영도 못하고 호남 민심도 못 잡고….”

  —현 야당이 호남 민심을 잡지 못하면 앞으로도 힘들겠군요.

  “노무현이 왜 대통령이 됐는지 아십니까. 영남 출신임에도 3당합당 따라가지 않고 DJ에게 남은 데 대해 호남사람들은 노무현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호남에서 김대중 대통령보다도 더 높은 투표율과 지지율을 얻었어요. 전통적으로 지지기반이 호남인 야당은 호남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면 대권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호남지역뿐만이 아니라 수도권에 있는 호남사람들 민심까지 포함하는 겁니다. 문재인은 대선에서 호남에서도 적극적인 지지를 못 얻었고 야당 강세 지역인 경기도에서도 졌어요.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텃밭이 없고 곳간이 빈 당입니다.”
"노무현 정권이 실패한 이유는 첫 人事 때문" 노무현-문재인 秘話-노무현정부 창업공신', '원조 친노' 염동연 전 열린우리당 의원 회고록 출간
월간조선 2015년 7월호


노무현 전대통령의 변호인

이인규 "'무능했던 변호인' 문재인, 盧주검 위에서 대통령 돼"
송고2023-03-16 20:13 연합뉴스

"변호인 문재인의 무능이 비극을 막지 못해"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원인의 상당 부분을 변호인으로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 탓으로 돌렸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이 저서 '운명'에서 '검찰이 박 회장의 진술 말고는 아무 증거가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썼던 점을 지적했다.

이 전 부장은 "검찰 수사 기록을 보지도 못했고, 검찰을 접촉해 수사 내용을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며 의견서 한 장 낸 적이 없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변호인으로서 문 전 대통령이 검찰을 찾아와 솔직한 검찰의 입장을 묻고 증거관계에 대한 대화를 통해 사실을 정리해 나갔더라면 노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는 변호를 맡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전 부장은 문 전 대통령이 "노무현의 주검 위에 거짓의 제단을 만들어 대통령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슬픔과 원망과 죄책감을 부추기는 의식(운명 책 발간)을 통해 검찰을 악마화하고 지지자들을 선동했다"며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지요 친구인 노무현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한 것"이라고 기술했다.

당시 진보 성향의 언론과 민주당 정치인을 향해선 "노 전 대통령이 생을 마감하자 돌변했다"며 "검찰에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렸고, '노무현 정신'을 입에 올리며 앞다투어 상주 코스프레 대열에 합류했다"고 했다.
노무현 수사검사 이인규 회고록 -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국회의원 문재인

공약이행률 16%·법안통과 0건, 문재인 대통령 잘 할까?
입력   2017.02.14 15:45
수정   2017.02.15 11:29 미디어오늘

의정활동성적 최하위, 법안 통과 0건
머니투데이 the300·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가 19대 국회의원 의정활동에 대해 종합평가한 결과를 보면 19대 국회 문재인 의원의 의정활동 성적은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문 전 대표는 19대 국회 4년 동안 4건의 법안만을 대표발의했다. 19대 국회에서 의원 1인당 평균 법안발의는 47.7건이다. 문 전 대표는 다른 의원들에 비해 10분의1도 안 되는 비율로 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문 전 대표가 발의(대표발의·1인발의)한 법안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 ‘부담금관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4가지인데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특히 문 전 대표는 2014년 6월 기존 상임위(기재위)에서 “국방과 안보의 중요성을 느꼈다”며 국방위로 옮겼다. 당시 차기 대권을 위해 안보이미지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후 실제 국방관련 대표발의한 법안은 없었다.

19대 의원들은 1인당 12.5건의 법안을 처리했다. 문 전 대표가 대표발의한 법안 중 통과된 법안은 단 한건도 없다. 법안통과가 0건인 의원은 문 전 대표를 포함해 총 291명 의원 중 8명뿐이다.

문 전 대표의 상임위 출석률 역시 61.7%에 불과했다. 법안발의·통과 및 출석률과 같은 성실도, 다면평가 등을 종합한 문 대표의 점수는 29.3점으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30.7점)보다도 낮았다. 본회의 출석률 271위, 상임위 출석률 283위, 법안대표발의 284위 등 문 전 대표의 성적은 민주당 최하점에 해당한다.

당 대표 문재인
당 대표로서 문재인의 성적은 어땠을까? 그가 대표로 있던 시절 치른 선거는 모두 패배했다. 2015년 4월29일 재·보궐선거 직전에 ‘성완종 리스트’가 터졌다. 당시 여당에겐 악재였지만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전통적인 야당 텃밭인 광주와 27년간 야당만 당선됐던 서울 관악을에서도 패배하는 등 4곳 중 단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물론 패배 원인이 문 전 대표의 리더십 뿐 아니라 오래된 야당 내부 분열 탓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같은해 2월 전당대회에서 문 전 대표는 “이번에 당 대표가 안 되어도, 당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도,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도 그 다음 제 역할은 없다”고 말했다. 취임 후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야당 대표로선 처음으로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을 인정해 당내 저항을 받아온 문재인 체제가 두 달 만에 위기를 맞았다. 같은해 7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표가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63%나 나왔다.

노무현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여유 인물, 인물 철학이 없었다.
오마이뉴스 09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