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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족치욕사) 영가의 난, 정강의 변, 토목의 변, 경술의 변

마루님 2022. 10. 5. 20:46

영가의 난(永嘉之亂)은 중국 서진 말기에, 회제(懐帝)의 연호였던 영가(永嘉 307년~312년) 때 서진의 수도를 흉노족이 차지한 사건.

산서성을 중심을 다스리고 있던 흉노왕 유연은 팔왕의 난 때, 성도왕 사마영이 유연에게 공물을 주고 도움을 요청하여 사마영에게 군사 원조를 해주고 있었으나 304년 사마영을 공격한 후 좌국성(左國城;현재 산시성 리스현(山西省 離石縣)을 본거지로 삼고, 대선우(大單于)의 지위에 앉았다. 또한 당시 한족들은 유연을 한나라 성씨인 유씨로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유연은 흉노족 앞에서는 대선우 한족들 앞에서는 한왕(漢王)으로 칭해 한왕으로 불렸다. (이 나라는 후에 조(趙)로 이름을 바꾼다) 그 후 산시성 남부로 세력을 확장해, 갈족의 석륵과 함께 허베이성과 산둥성도 정복하였고 많은 한족들을 노예로 삼거나 학살하였다.


정강의 변(靖康之變)이란 1126년 송나라가 여진족의 금나라에 패하고, 중국 사상 정치적 중심지였던 화북을 잃어버리며, 금 태종에 의해 황제 휘종과 흠종이 금나라에 사로잡힌 사건을 말한다. 정강(靖康)은 당시 북송의 연호다. 금 태종은 휘종과 흠종의 황후와 모친들 그리고 후궁들을 금나라 기방으로 강제로 보냈고 한족들은 휘종과 흠종의 부인과 모친들을 기생이 되어 여진족들에게 희롱당하는 치욕을 겪게 되었다.


토목의 변(土木之變) 또는 토목보의 변(土木堡之變)은 명나라 정통제 14년(1449년)에 발생한 명나라와 몽골 부족을 통일한 되르벤 오이라트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영종은 친정을 하다가 오이라트의 포로로 잡혀 중국 역사상 야전에서 포로로 잡힌 유일한 황제로 기록되었다. 토목보는 현재 장가구 화이라이 현 토목진이다.


경술의 변(庚戌之變)은 명 세종(世宗) 가정(嘉靖) 29년(1550) 6월, 알탄 칸이 이끄는 우익몽골(右翼蒙古)이 명으로 진공한 사건이다. 사건은 세종 가정제(嘉靖帝)가 몽골과의 무역을 거절하면서, 오르도스 일대에 분봉되었던 몽골 투메드부(土默特部) 수령이자 다얀 칸(達延汗)의 자손인 알탄 칸(俺答汗)이 전쟁을 일으켰다. 알탄 칸은 명나라에 말 무역과 와시(교역 시장)을 열어줄 것을 여러 번 명나라에 요구했지만, 가정제는 이를 거절했다. 이 전쟁에서 대동(大同)에서 명나라 수도 북경(北京)까지 곧바로 쳐들어오면서 주변의 것들을 모두 불살라버렸다. 이때가 경술년(庚戌年)에 해당하므로 '경술지변(庚戌之變)'이라 한다.